헌원황제전《軒轅黃帝傳》28
제(帝)가 소유한 천하를 버리고자 하여 “나는 천하를 제 스스로 있게 하여 너그럽게 한다는 말을 들었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나는 천하를 수고롭게 한 지 오래되었다. 원포(元圃)에서 천자를 그만두고서 ‘참나’로 돌아가고자 한다.” 황제가 봉선례(封禪禮)를 닦아 거행하여 마치고 수산(首山)에서 구리를 캐서 형산(荊山) 아래에서 구정(九鼎)을 주조하여 태일(太一)을 구주(九州)로 형상화하였다. 이 세발솥 정(鼎)은 정신과 형체의 정수이다. 길조를 알고 흉조를 알며 생존을 알고 멸망을 알며 공기처럼 가벼울 수 있고 태산처럼 무거울 수 있으며 그칠 때 그칠 수 있고 행동할 때 행동할 수 있으며 불을 사르지 않아도 끓고 물을 붓지 않아도 저절로 찰랑거리며 그 안에서 다섯 가지 맛이 생기니 참으로 신령한 물건이었다.
帝欲棄天下,曰:「吾聞在宥(自在寬宥)天下,不聞理天下。我勞天下久矣,將息駕於元圃以返吾真矣。」
黃帝修舉封禪禮畢,采首山之銅,將鑄九鼎於荊山之下,以象太一於九州。是鼎,神質之精也。知吉知凶,知存知亡,能輕能重,能息能行,不灼而沸,不汲自滿,中生五味,真神物也。
황제가 정제한 구정단(九鼎丹)을 먹고 연단(煉丹)을 완성한 뒤에서야 큰아들에게 법을 전수하였다. 이 도는 지극히 중요하여 맹세로써 아들을 다짐시켰다. 제(帝)가 중경(中經)에 기록해 놓은 책을 구의산(九疑山) 동쪽에 감추어 두고 그곳을 위우(委羽)라고 불렀다. 무늬 진 옥으로 책을 입히고 넓적하고 편편한 돌로 덮어 두었다. 그 책은 금을 대쪽처럼 만들어 옥으로 글자를 만들어 넣었는데 황제가 남긴 예언서였다. 제(帝)가 또 차고 있던 영보오부진문(靈寶五符真文)을 금으로 만든 대쪽 한 통에 적어 넣고 완위산(宛委山)에 감추어 두었다.
黃帝煉九鼎丹服之,逮至煉丹成後,以法傳於元子。此道至重,盟以誡之。帝以中經所紀藏於九疑山東,號委羽。承以文玉,覆以盤石。其書金簡玉字,黃帝之遺讖也。帝又以所佩靈寶五符真文書金簡一通,藏於宛委之山。
제(帝)가 예전에 금으로 그릇을 주조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 교훈적인 글을 새겨 두었다. 상고시대의 문자를 써서 연월을 기록하였고 더러 시(詞)를 새겨 두었다. 이때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고 신인(神人)이 모여드는 일이 있었다.
帝嘗以金鑄器,皆有銘,題上古之字,以記年月,或有詞也。時有薰風至、神人集。
황제가 세상을 떠날(厭代) 의지를 굳히자 쓰던 관(冠)과 칼(劍)과 패옥(佩玉)과 신발(舄)을 정호(鼎湖)의 지극히 험준한 곳인 곤륜대(崑崙台)에 남기고 그 아래쪽에 관사를 세웠다.
成厭代之志,即留冠劍佩舄於鼎湖極峻處崑崙台上,立館其下。時馬師皇善醫馬,有通神之妙。忽有龍下於庭伏地張口。
이때 마사황(馬師皇)은 훌륭한 말의 의사로 신통한 신묘함이 있었다. 느닷없이 어떤 용이 뜨락에 내려와 땅에 엎드려 입을 크게 벌렸다. 사황(師皇)이 이를 보고 “이 용은 병이 들어 나의 치료를 원하는 것이다.” 하고 이에 사황(師皇)이 침을 꺼내어 용의 입 위아래에 놓고서 소젖에 감초를 넣고 달여 이를 입에 넣어주었다. 용이 차도가 있자 사황(師皇)이 이 용을 타고 신선이 되어 떠났다.
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날을 잡아 돌아갈 곳을 점을 쳐 신선으로 올라갈 날을 잡았다. 무오(戊午)에 과연 어떤 용이 날아오더니 수염을 늘어뜨리며 내려와 황제를 맞이하였다. 황제가 마침내 용에 올라타니 벗 중에 자식이 없는 사람과 신료 등 따라 올라간 사람들이 72명이었다. 소신(小臣) 중에 용의 등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 수염을 잡았지만 뽑히어져 황제의 활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소신(小臣)들은 그 활과 용 수염을 부여안고서 울부짖으며 통곡하니 활은 이 일로 해서 오호(烏號)라 불리었다. 세발솥을 주조한 땅은 뒤에 정호(鼎湖)라고 하였다.
師皇視之,曰:「此龍病,求我醫也。」師皇乃引鍼於龍口上下,以牛乳煎甘草灌之。龍愈,師皇乘此龍仙去。黃帝聞之,自擇日卜還宅,昇仙之日得。戊午果有龍來,垂胡髯下迎。黃帝乃乘龍,與友人無為子及臣僚等從上者七十二人。小臣不得上者將龍髯拔陊及帝之弓。小臣抱其弓與龍髯號泣,弓因曰烏號。鑄鼎之地後曰鼎湖。
○재유(在宥)
장자 재유(莊子·在宥)에 “천하를 제 스스로 있게 하여 너그럽게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제 스스로 있게 하는(在) 것은 세상 사람들이 제 본성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너그럽게 하는(宥) 것은 세상 사람들이 제 가진 덕(德)을 변질시킬까 두려워서이다.” 하였다.
《莊子·在宥》:“聞在宥天下,不聞治天下也。在之也者,恐天下之淫其性也;宥之也者,恐天下之遷其德也。”
*장자 주(注)에 곽상(郭象)이 “너그러워 제 스스로 있게 한다면 다스려지고 다스리려고 한다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정직하면 방탕해짐이 없고 그렇게 되면 부여받은 본성이 잘못됨이 없어서, 위정자라면 좋아하고 싫어함 때문에 사람들을 망치게 하지 않는다. 위정자란 티를 냄이 없을(無爲) 수 없어서, 위정자가 티를 내고 정치를 하면 백성들은 모두 이를 따르고 그 결과로 위정자는 좋고 싫음에 유혹되어 집착하고, 백성들은 본성이 더럽혀지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성왕(聖王)을 고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정치에서의 능력을 귀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가 티 내지 않고 물(物)의 주체적 행위에 맡기는 사람이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하였다.
郭象注:“宥使自在則治,治之則亂也。人之生也直,莫之蕩,則性命不過,欲惡不爽。在上者不能無爲,上之所爲而民皆赴之,故有誘慕好欲而民性淫矣。故所貴聖王者,非貴其能治也,貴其無爲而任物之自爲也。”
*우언(寓言)에 “여러 현성(賢聖)이 물(物)에 맡기어서 제 스스로 있게 하여 너그럽게 하는 것은 곧 천하가 깨끗하고 고요한 것이다. 예컨대 교육 방법을 세워서 만민을 다스려 물(物)이 그 본성을 잃지 않게 하니 백락(伯樂)이 말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하였다.
《疏》寓言云,聞諸賢聖任物,自在寬宥,即天下清謐;若立教以馭蒼生,物失其性,如伯樂治馬也。
또 주(注)에 “무위(無爲)란 공손히 손을 맞잡고 묵묵히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각각 그 스스로 주체적 행위에 맡기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타고난 본성은 편안해진다.” 하였다.
《注》 無爲者,非拱默之謂也,直各任其自爲,則性命安矣。
○태일(太一)은 또한 천일(天一), 태을(太乙), 북진(北辰), 태극성(北極星)이라고도 불리는데 북극성(北斗)에 가까워 하늘에서는 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뭇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 태일(太一)은 하늘의 중심이 되어 뭇별들이 받들어 보호하는 모습이라 ‘천제(天帝)’라고 추앙되었다고 한다.
○오월춘추(吳越春秋)에 “우(禹)임금이 황제중경(黃帝中經)을 톺아보는데, ‘구의산(九疑山) 위 동남쪽에 완위(宛委)라 불리는 곳인데 무늬 진 옥을 입혀서 넓적하고 편편한 돌을 덮어놓았다. 그 책은 금을 대쪽처럼 만들어 옥으로 글자를 만들어 넣었다.’라는 성인이 기록한 내용을 보고서 우임금이 거처로 돌아가 3일 동안 재계하고 돌을 열어 책을 가졌다.” 하였다. <우임금이 이 책을 읽고서 물을 다스리는 데에 대한 이치를 터득하였다고 한다.>
《吳越春秋》曰:禹案《黃帝中經》,見聖人所記曰:在乎九疑上東南,號曰宛委,承以文玉,覆以盤石,其書金簡玉字。禹乃退齋三日發石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