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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태왕비 이야기

by 쥐눈이 2024. 11. 2.

*부여 추상왕과 추년왕에 대한 신화는 고구려 동명왕의 탄생 신화와 닮았다. “하백의 딸, 한줄기 강한 햇빛에 의한 잉태, 세수대야(또는 알 모양)를 닮은 태반, 그리고 하느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이야기 골격은 당시에 자리 잡았던 하나의 틀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이야기 틀이 퍼져나간 범위를 알 수 있다면 부여와 고구려의 문화권을 어림잡는 데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래에 태왕비 이야기에서 하백의 따님이 인간 세상에 나가 살려고 하다가 강신령이 벌을 주어 천 오리의 빛나는 새카만 머리카락을 강물에 짓눌려 두었고, 하백의 따님 요구대로, 부여의 추상왕이 온 힘으로 바위 돌을 들어 천 오리 머리카락을 한 오리도 다치게 하지 않고서 머리채를 보존해 주었다.”는 내용은 모계 사회에서 한 여인이 거느렸던 천 개의 마을이나 씨족을 상징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들면서 단군신화와도 조금 닮아서 환웅이 그 이끈 무리 3천은 각 사람이 아닌 마을이나 씨족 단위는 아니었을까, 환웅 역시 여성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으로도 번져나갔다.

 

태왕비 이야기

집안시 압록강변의 우무산 밑에는 2층집 높이의 정자 안에 통돌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비석에는 손바닥만큼씩 큰 비석문 글자들이 1800여자나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이 비를 태왕비석이라고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호태왕이라는 임금이 이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에 있는 이야기는 호태왕 12대 이전의 조상들에 관한 전설이다.

그때 장백산의 북녘에는 부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나라 임금은 추상왕이라 불렀다. 추상왕은 무예에 능할뿐만아니라 백성들을 사랑하여 명망이 높았다. 한데 왕비를 하나만 둔다고 선포한 국왕은 공교롭게도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 부여국에는 자고로 국왕이 나이 40이 되도록 아들을 두지 못하면 절로 임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법이 있다. 그리하여 추상왕은 대낮에도 눈만 감으면 아들이 헛보이고 밤에도 잠만 들면 아들 보는 꿈을 꾸게 되였다. 국왕과 왕비는 물론 나라 백성들도 이를 두고 근심에 싸였다.

그해의 섣달 그믐날 밤, 궁궐 안에는 노래 소리 이미 멎고 궁녀들도 보이지 않았다. 추상왕과 왕비는 술상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문득 끄당기는 사람이 있어 국왕은 저도 모르게 따라 나갔다. 그 사람을 따라 어느 강변에 갔는데 무언가 번쩍하더니 그 사람은 오간데 없어졌다. 이에 괴상한 감을 느낀 추상왕은 사방을 자세히 훑어보니 삼면에는 기묘한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었다. 동쪽 산은 머리를 남쪽에 꼬리를 북쪽에 둔 룡 같고 서쪽 산은 모양이 비슷한 자매봉 일곱 개가 있는데 하늘의 북두칠성 같고 북쪽 산은 구름우로 치솟아 허리에 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남쪽은 탁 트였는데 푸르른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추상왕은 이 세 산의 품속에서 흐르는 큰 강줄기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강 가운데 큰 함지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보아하니 큰 함지 속에는 살결이 검고 실팍한 갓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애는 발버둥 치며 응아, 응아 - 울어대고 있었다. 나무 함지가 소용돌이 물에 휩쓸려 잠길 찰나 추상왕은 신도 벗지 못하고 물에 뛰여들어갔다. 물이 가슴팍에 오는데 손을 내밀어 급급히 함지를 잡으려다 그만 함지가 뒤없어(뒤엎어)지는지라 - 하고 소리치며 꿈속에서 깨어났다. 깨고 보니 실은, 손에 든 술잔이 떨어져 깨졌다.

국왕을 극진히 돌봐드리는 왕비는 제가 애기를 낳지 못하여 국왕께 가져다주는 심리고통을 잘 알고 국왕더러 왕비를 다시 맞아들이라고 몇 번 말하였다. 지어는 자결하는 것으로 국왕이 다시 왕비를 맞게 하려 했으나 국왕은 말 듣지 않았다. 술이 과하여 정신 잃은 국왕을 본 왕비는 국왕을 꼭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국왕은 왕비의 눈물을 닦아주고 부축하면서 침대에 올랐다.

추상왕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들 수 없어 장밤 생각을 굴렸다.

(방금 있은 꿈을 보아 하느님이 나에게 왕자를 보내주려고 하니 때를 놓치지 말아야지. 한데 천하에는 강물이 천만갈래로 흐르니 어데 가서 그 강물과 나무 함지를 찾을 수 있겠나. 옳지 부여국 이것에는 사방 몇천 리 다 벌판이니 꿈속의 그곳엔 삼면 다 산으로 둘러있지 않는가. 여기서 강물은 다 얕아 밑바닥이 보이나 그곳의 강물은 깊지 않은가. 듣자니 백두산을 넘어가면 맑고 푸른 큰 강이 있다던데 혹시 그곳이 아닐가?)

이튿날은 정월 초하루라 문무관원들이 추상왕을 찾아 설맞이 인사를 올리는데 추상왕은 남쪽으로 가서 사냥을 하고 유람을 하겠다고 대신들에게 말했다. 왕비와 대신들이 앞에 나서서 말렸으니 추상왕은 전례 없이 고집을 부렸다.

추상왕은 심복 세 사람만 거느리고 좋은 말을 타고 좋은 활을 차고 채찍을 휘두르며 남쪽으로 달리는데 잠간 사이에 까마아득하게 멀리 달렸다.

그들은 말잔등에서 먹고 말잔등에서 자기도 하며 밤낮없이 남쪽으로 달렸다. 그들은 천갈래의 물을 건너고 만여개의 산을 넘어 어느 날 말 안장같은 한 산마루에 올라 멀리 내다보았다.

바라보니 큰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강물은 금방 물속에서 나온 숫오리의 깃마냥 푸르디 푸르렀다. 아마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압록강일게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눈에 익은 곳이라 꿈에 왔던 곳이 틀림없었다. 과연 동쪽엔 룡산이 있고 서쪽엔 칠성산이 있고 북쪽엔 우무산이 있었다. 추상왕이 기뻐 말 엉치에 채찍을 안기자 말은 화살같이 강변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무 함지를 찾을 수 없고 어린애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울적한 심정으로 눈물이 그렁해진 추상왕은 강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평생에 선덕을 쌓아왔건만 보응이 이렇단 말인가?!

바로 이때 멀지않은 곳에서 녀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였다. 이곳엔 사방 백 리 인가라곤 없는데 어찌 사람의 울음소리가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울음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한 장발처녀가 얼굴을 싸쥐고 우는 것이였다. 추상왕은 말에서 내려 그 녀인을 일으켜주었다. 보아하니 까만 눈에 박씨 이발(희고 가지런한 이빨), 붉은 입술, 날씬한 키, 정말 미인이였다. 추상왕은 룡포자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물었다.

, 무슨 일로 하여 그리도 슬피 우느냐?

저의 머리카락이 물속 바위에 짓눌려있사오니 제발 살려주옵소서.

처녀는 이렇게 대답하며 국왕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절을 했다. 그래서 처녀의 머리태를 살펴보니 과연 길이 십 장이 넘는 광채 뿜는 새까만 머리카락 한끝이 바위 밑에 물려있었다.

추상왕이 큰 칼을 뽑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뭉텅 잘라버리려 하는데 그녀는 급급히 추상왕의 손목을 잡으며 사정했다.

추상왕이 큰 칼을 뽑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뭉텅 잘라버리려 하는데 그녀는 급급히 추상왕의 손목을 잡으며 사정했다.

안되옵니다. 저의 머리카락은 많지도 적지도 않고 딱 천 오리인데 매 오리마다 저의 목숨과 이어져 있사와요. 한 오리라도 끊으면 전 끝장이옵니다.

추상왕은 세 하인에게 령을 내려 물속의 그 큰 바위를 들어 옮기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바위돌은 움쩍도 안했다.

보아하니 내가 친히 나설수밖에 없구나.

추상왕이 룡포를 벗고 물속에 들어가 평생의 힘을 다 내여 -하고 힘을 쓰자 바위돌이 버쩍 들렸다. 순간 처녀는 얼른 머리채를 빼냈다. 추상왕은 물속에서 나왔다. 온몸은 얼어 입술은 새파래졌다. 그녀는 강변에 불을 놓아 추상왕의 몸을 녹여주고 물속의 큰 고기를 몇 마리를 잡아다 불에 구워 대접하였다.

추상왕이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말잔등에 올라앉아 떠나려고 하는데 처녀는 말 앞을 막아서며

절 살려주사와요!하고 또 애걸했다.

, 내가 할 일이 뭐 또 있느냐?

그러자 처녀는 입을 열었다.

어르신님은 모를 거옵니다. 전 본래 하백의 딸이온데 인간 세상에 나가 살려 한다고 강신령이 벌을 주어 머리채를 짓눌리우게 되었나이다. 만약 어르신님이 절 데려가지 않으면 소녀는 또 그들한테 붙잡히게 되옵니다.

그래, 그럼 어데 갈 예산이냐?

소녀는 어르신님이 부여국의 국왕이란 것을 알고 있사와요. 소녀는 궁녀가 되어 국왕님의 은혜를 갚으려 하나이다.

추상왕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마흔에 가까워가건만 왕자가 없어 왕 자리라도 지키기 어려운데 어쨌든 처녀를 구하고 보자.

그리하여 추상왕은 그녀의 새까만 머리채를 걷어주고 한 하인의 말을 넘겨주어 같이 온 길을 따라 부여국으로 돌아왔다.

하백의 딸은 부여국에 온 후 예쁘고 총명하고 부지런하여 인차 추상왕과 왕비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 궁내에서는 뜻하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음탕한 녀인이라고 남몰래 간통하여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대노한 국왕은 그녀를 궁전에 불러들여 질문했다. 이에 하백의 딸 - 소녀는 고개를 숙여 땅에 대고

소녀는 죽어 마땅합니다. 국왕님, 목숨만 제발 살려주십사와요.하고 말했다. 물어보니 과연 그러한지라 화가 동한 추상왕은 대성질호했다.

이 천한 년, 천리길을 불문하고 너 한목숨 건져주었는데 그래 감히 궁법을 어긴단 달이냐!

이에 하백의 딸 하염없이 흐느끼면서 하소했다.

은혜로운 왕님, 왕님의 은정은 바다보다 깊어 소녀는 입궁한 그날부터 종일 왕님을 보살펴주었사온데 어찌 감히 그런...

추상왕은 주먹으로 상을 탕- 치며 을러멨다.

바른 소리 못할가! 어떤 자식과 간통했느냐?

소녀는 궁전에 들어온 후 날마다 몸가짐에 주의했사온데 어찌 감히 간통하겠나이까! 한데 날마다 한낮이 되면 한줄기의 강한 해빛이 소녀의 몸을 비치군 했사와요. 집안 구석에 숨어있어도 빛은 지붕을 뚫고 들어와 비쳤나이다. 한 반달이나 그러하더니 소녀는 저도 모르게 잉태하게 됐나이다.

하지만 국왕은 모든걸 다 믿을 수 없어 궁녀들에게 그녀를 잘 감시하라고 령을 내렸다.

여덟 달이 지난 후 하백의 딸은 1년 두 달 만에 세수대야만한 괴상한 태를 낳았다. 그 괴태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하백의 딸은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를 지키던 한 궁녀가 괴상한 태를 추상왕과 왕비께 보였다. 왕비는 보자마자 피 흐르는 살덩이를 얼른 무인지경에 내던져 승냥의 밥이 되게 하라고 했다. 사흘이 지난 후 그걸 지켜보던 사람이 돌아와서 말하는데 그걸 해치기는커녕 둘러싸고 보호해주더라는 것이였다.

추상왕은그것을 말구유에 던져 말이 먹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말도 풀만 먹기 그것을 다치지도 않았다.

추상왕은 이에 놀라 후궁에 가져다 놓고 보검을 꺼내 조심스레 피덩이 살껍질을 뱄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그 속에서 검실검실하고 실팍한 어린애가 나왔다. 얼굴을 들여다보니 어쩐지 면목이 있어 생각하니 꿈에 구해주려던 바로 그 애와 같았다.

추상왕은 이에 급급히 애기를 두 손에 받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이 나를 구원하고 우리 부여를 구원해 보낸 아들이로다!라고 했다.

이때에야 추상왕은 자기가 꿈속에서 나무함지 속의 애를 본 것과 자기가 압록강변에 가서 그 애를 찾던 사연을 왕비에게 이실직고했다.

추상왕과 왕비는 기뻐하며 그 애를 왕자로 삼고 추년왕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애를 낳은 딸을 명당자리를 찾아 안장해주었다.

추년왕은 무럭무럭 자라 다섯 살엔 말 탈 줄 알고 열 살엔 무예에 출중해졌으며 백성들에 대해선 인자하였다.

추상왕이 세상 뜬 후 그는 왕위를 물려받았다. 왕위에 오른 추년왕은 추상왕의 유언을 지키고 자기의 생모 하백의 딸을 잊을 수 없어 부여국의 서울을 남쪽으로 옮겨갔다. 남쪽엔 압록강이 흐르고 동쪽엔 룡산, 서쪽엔 칠성산, 북쪽엔 우무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곳으로 서울을 옮겨 국호를 새로 정하였다.

그 후 추년왕이 세상을 뜨고 그의 20대 자손인 호태왕이 집정할 때 번영했는데 호태왕은 개국선왕을 기념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압록강물 속의 그 큰 바위를 끌어 옮겨다가 태왕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새겨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태왕비의 전설이다.

구술자: 리택홍 / 수집지점: 집안시 / 수집시간: 19848

출처 : 료녕성 흑룡강성 채록 민담집 중에서 (연변대학교 조선문학 연구소) (연세 국학총서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