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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4

신라의 지명 4 〈고려사(高麗史) 기준〉 상주목(尙州牧) ○상주목(尙州牧) : 본래 사벌국(沙伐國) 신라 첨해왕(沾解王) 때 이곳을 취하여 주(州)를 만들었다. 법흥왕 때 상주(上州)라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진흥왕 때 주를 폐하고서 상락군(上洛郡)을 만들었다. 신문왕 때 주(州)를 만들었다. 경덕왕 때 상주(尙州)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라 하였다. 고려 태조 23년(940년) 다시 고쳐 상주(尙州)라 하고 그 뒤에 다시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바꾸었다. 성종이 정한 상락(上洛)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또한 상산(商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담에 전해지기를 “주(州) 북쪽 임하촌(林下村)의 태(太) 성을 가진 사람이 적을 잡는 데 공이 있어서 그 촌(村)을 승격시켜 영순현(永順縣 경북 문경시 영순면)을 만들었다고.. 2023. 7. 26.
신라의 지명 3 〈고려사(高麗史) 기준〉 진주목(晉州牧) ○진주목(晉州牧) :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 〈일명 거타(居陁)이다.〉 신라 문무왕 2년에 이곳을 취하여 주(州)를 설치하였다. 신문왕 4년(684년) 거타주(居陁州)를 나누어 청주총관(菁州摠官)을 두었다. 경덕왕 때 강주(康州)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청주(菁州)라 하였다. 고려 태조 때 다시 강주(康州)로 바꾸었다. 성종 2년(983년)에 12목(牧)을 처음 둘 때 이 주(州)도 그중 하나였다. 14년 12주(州) 절도사(節度使)를 둘 때 진주정해군(晉州定海軍)이라 부르고 산남도(山南道)에 소속시켰다. 현종 3년(1012년) 기존 것을 폐하고 안무사(安撫使)로 만들었다. 9년 목(牧)으로 정하니 8목(牧)의 하나였다. 성종이 정한 진강(晉康)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고 또한 청주.. 2023. 7. 24.
신라의 지명 2 〈고려사(高麗史) 기준〉 금주(金州 김해) ○금주(金州) : 본래 가락국(駕洛國) 신라 유리왕(儒理王) 18년, 가락국의 장아도칸(長我刀干), 여도칸(汝刀干), 피도칸(彼刀干) 등 아홉 사람이 그 백성들을 이끌고 냇물에서 몸을 씻고 나쁜 기운을 없애는 푸닥거리 끝에 음복을 하고(稧飮) 있는데 멀리 구지봉(龜旨峯)을 바라보노라니 남다른 소리와 기운(聲氣)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한 금합(金榼)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 안에 금빛 알이 있어, 둥근 것이 해 바퀴와 같았다. 아홉 사람이 절을 하며 신성하게 여기고 받들어 아도칸(我刀干) 집에 두었다. 다음날 아홉 사람이 다 모여 금합을 열어 보니 어떤 한 동자가 껍질을 가르고 태어났는데 나이가 15세요 용모가 빼어나게 컸다. 무리가 모두 절을 하고 축하하며 예를 다 하였다. 동.. 2023. 7. 21.
신라의 지명 1 〈고려사(高麗史) 기준〉 경상도(慶尙道) ○경상도는 삼한(三韓) 시대에 진한(辰韓)이고 삼국(三國) 시대에 신라(新羅)이다. 고려 태조에 이르러 신라, 백제를 아우르고 동남도 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경주(慶州)에 사(司)를 두었다. 성종 14년(955년) 이 땅을 나누어 열 군데 도(道)를 만들었으니 상주(尙州)가 관리하는 곳은 영남도(嶺南道)라 하고 경주(慶州)와 금주(金州 경상남도 김해시)가 관리하는 곳은 영동도(嶺東道)라 하고 진주가 관리하는 곳은 산남도(山南道)라 하였다. 예종 원년(1106년)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일컬었다. 명종 원년(1171년)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협주도(晉陜州道) 둘로 나누었다. 16년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으로 바꾸었다. 고종 46년(1259년)에 화(和) 등(登), 정(定),.. 2023.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