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개벽 원시(開闢原始) 1-7
시학편(始學篇) : 인황(人皇) 아홉 머리(사람)는 형제들이 각각 삼백 년을 유지하였는데 산천과 토지의 형세에 의지하며 구주(九州)를 가말아서 각기 그 한 지방을 차지하고 내처 지역으로 나누었다.
始學篇 : 人皇九頭,兄弟各三百嵗, 依山川土地之勢, 裁度為九州, 各居其一方, 因是而區别.
둔갑개산도(遁甲開山圖) : 인황(人皇)은 형마산(刑馬山) 제지(提地)의 땅에서 생겨났다.
*형마산 제지 땅 : 위수(渭水)가 지나가는 맥적구(麥積區) 백양향(伯陽鄉)이라고 한다.
遁甲開山圖 : 人皇生於刑馬山提地之國.
춘추명력서(春秋命厯序) : 인황씨는 나는 사슴 여섯 마리를 타고서 삼백 년 동안 다스렸다.
春秋命厯序 : 人皇氏駕六蜚鹿, 政三百嵗.
상서선기령(尚書璇璣鈴) : 인황씨 아홉 머리(頭, 사람)는 여섯 깃(六羽)을 몰고 구름 수레(雲車)를 타고서 곡구(谷口)에서 나와 세상을 구주(九州)로 나누었다.
尚書璇璣鈴 : 人皇氏九頭, 駕六羽, 乗雲車, 出谷口, 分九州
문자(文子) : 고대의 제왕인 구황(九皇)의 제도에 군주가 헛되이 왕 자리를 점유하지 않았고 신하는 헛되이 귀한 계급을 차지하지 않았다. 계급은 존비를 나타내는 명호로 스스로 관리나 백성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지위라는 것에 의해 받는 봉토가 없어도 이쁨을 받고 녹봉을 받아 그 맡겨 준 바에 부응하여 천지(天人)와 더불어 한데 어우러져 맺어 거둘 뿐이었으니, 취하고 따져서 정하고 심사하는 방법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진의 박사(秦博士)가 “옛날에 천황과 지황과 태황(泰皇)이 있었으니 태황이 가장 귀하였다.” 하니, 태황(泰皇)은 곧 인황(人皇)이고 또한 구황(九皇)이라고도 호칭하였다.〉
文子 : 九皇之制, 主不虚王, 臣不虚貴. 階級尊卑名號, 自居吏民, 於次者無國, 厯寵厯録, 副其所付授, 與天人參相結連, 鉤考之具不備也. 〈秦博士稱 “古有天皇地皇泰皇, 泰皇最貴.” 即人皇也, 亦號九皇.〉
*또한 구황(九皇)은 북두구성(北斗九星)으로, 북두구성은 북두칠성과 왼쪽의 좌보(左輔)와 오른쪽의 우필(右弼)을 함께 묶어 부르는 이름이라 한다.
*역총역록(歴寵歴録)에 대한 또 다른 해석 : 역록(歴録)은 휘황한 문장(文章)의 모습이다. ‘歴寵歴録’은 총애와 영화를 내리 거친 것이 화려하기가 이와 같다는 말이다. 모시전(毛詩傳)에 “목(楘)은 화려하고 부신 모양이다(歴録).” 하니 소(疏)에 “수레의 채가 쉽사리 꺾여질까 염려하여 가죽으로 이를 묶고 이참에 장식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歴録,文章之貎. 言更歴寵榮, 華煥如此. 毛詩傳曰 : “楘, 歴録也.” 《疏》 : “恐易折,以皮束之,因以爲飾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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