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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백제의 지명 2〈고려사(高麗史) 기준〉

by 쥐눈이 2023. 6. 30.

전라도(全羅道) 1

전라도는 본래 백제의 땅이니 의자왕(義慈王) 19년에 신라 태종왕이 당의 소정방과 더불어 백제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이 땅을 차지하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두 주() 도독부(都督府)로 나누었다. 진성왕(眞聖王) 5년에 서면도통(西面都統) 견훤(甄萱)이 옛 땅을 다 틀어쥐고 후백제왕이라 일컬었다.

고려 태조 19년 태조 왕건이 직접 정벌에 나서 견훤을 이겼다. 성종 14년 전주(全州), 영주(瀛州), 순주(淳州), 마주(馬州)등은 강남도(江南道)로 만들었고 나주(羅州), 광주(光州), 정주(靜州), 승주(昇州), 패주(貝州), 담주(潭州), 낭주(朗州) 등은 해양도(海陽道)로 만들었다. 현종 9년 이들을 합쳐 전라도를 만들었다. 영목(領牧)이 둘이요 부()가 둘이요 군()이 열여덟이요 현()이 여든둘이다.

全羅道本百濟之地義慈王十九年新羅太宗王與唐將蘇定方滅百濟遂倂其地景德王分爲全武二州都督府眞聖王五年西面都統甄萱悉據舊地稱後百濟王太祖十九年親征克之成宗十四年以全州瀛州淳州馬州等州縣爲江南道羅州光州靜州昇州貝州潭州朗州等州縣爲海陽道顯宗九年合爲全羅道領牧二府二郡十八縣八十二

전주목(全州牧)

전주목(全州牧)은 본디 백제의 완산(完山)이다. 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하고 비자화(比自火)라고도 하였다.

백제 27대 위덕왕(威德王) 원년에 완산주(完山州)를 만들었다가 11년에 주()를 폐하였다. 신라 진흥왕 16년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고 26년에 주를 폐지하였다. 신문왕 4년에 다시 완산주(完山州)를 두고 경덕왕 15년에 다시 전주(全州)라고도 일컬었다. 뒤에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세웠는데 태조 왕건이 이를 쳐 내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바꾸었다가 태조 23년에 도로 전주로 하였다. 고려 성종 12년에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安撫使)라 칭하고 14년에 십이주(十二州)의 절도사(節度使)를 둘 때 순의군(順義軍)이라 호칭하여 강남도(江南道)에 소속시켰다. 고려 현종 9년 승안남대도호부(陞安南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현종 13년에 다시 전주(全州)라 이름하였다.

공민왕 4, 원나라 사신 야사부화(埜思不花)를 가두었다는 이유로 부곡(部曲)으로 강등되었다. 공민왕 5, 완산부(完山府)로 회복되었다. 성종(成宗)이 완산(莞山)이라는 별칭을 정하였고 또한 견성(甄城)이라는 별칭이 있다. 신창진(新倉津)이 있다.

全州牧本百濟完山,〈一云比斯伐一云比自火。〉威德王元年爲完山州十一年州廢義慈王十九年新羅與唐將蘇定方滅百濟遂有其地眞興王十六年改今名二十六年州廢神文王四年復置完山州景德王十五年又稱全州後甄萱立都於州太祖滅之改安南都護府二十三年還爲全州成宗十二年稱承化節度安撫使十四年置十二州節度使號順義軍屬江南道顯宗九年陞安南大都護府十三年又名全州恭愍王四年以囚元使埜思不花降爲部曲五年復爲完山府別號莞山,〈成廟所定。〉又號甄城有新倉津

금마군(金馬郡 전북 익산) : 본디 마한국(馬韓國) 뒤에 기씨조선(箕氏朝鮮) 왕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의 난을 피하여 바다를 떠다니다 남쪽으로 가서 한() 땅에 이르러 나라를 열고서 마한(馬韓)이라 호칭하였다.백제 시조 온조왕(溫祖王)이 이를 아울렀다. 이후로 금마저(金馬渚)라 불렀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고려가 다른 곳에 소속시키기에 이르렀었는데 충혜왕(忠惠王 재위: 1330~1332,1339~1344)이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복위된 5, 원순제(元順帝) 기황후(奇皇后) 어머니 이행검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익주(益州)로 승격되었다.

미륵산석성(彌勒山石城)이 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말이 기준왕(箕準王)이 처음으로 축조하여서 기준성(箕準城)이라고 한다.’ 하였다.

또한 기자조선 마지막 왕 무강(武康)과 그의 비 무덤이 있다. 민간에서 말통대왕릉(末通大王陵)’이라 부른다. 일설에 백제 무왕(武王)이 젊었을 때 이름이 서동(薯童)이라 한다.

金馬郡本馬韓國。〈後朝鮮王箕準避衛滿之亂浮海而南至韓地開國號馬韓。〉百濟始祖溫祖王幷之自後號金馬渚新羅景德王改今名至高麗來屬, 忠惠王後五年以元順帝奇皇后外鄕陞爲益州有彌勒山石城。〈諺傳箕準始築故謂之箕準城。〉又有後朝鮮武康王及妃陵。〈俗號末通大王陵一云百濟武王小名薯童。〉

낭산현(朗山縣) : 백제의 알야산현(閼也山縣)

朗山縣本百濟閼也山縣新羅景德王改名野山爲金馬郡領縣高麗更今名來屬恭讓王三年以礪良監務來兼신라 경덕왕 때 야산(野山)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금마군(金馬郡)의 소속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공양왕 3년 여량감무(礪良監務)가 이 땅을 함께 담당하게 하였다.

옥야현(沃野縣 전북 이리시) : 백제의 소력지현(所力只縣)

沃野縣本百濟所力只縣.

진안현(鎭安縣) : 백제의 난진아현(難珍阿縣) 월량현(月良縣)이라고도 한다.

마이산(馬耳山)이 있다. 신라 때 서다산(西多山)이라 일컫고 소사(小祀 작은 규모의 제사)의 예를 행하였다.

鎭安縣本百濟難珍阿縣,〈一云月良縣。〉 有馬耳山。〈新羅稱西多山載小祀。〉

우주현(()州縣) 완주군 봉동읍 삼례읍, 익산시 왕궁면 일대) : 백제의 우소저현(于召渚縣)

紆州縣本百濟于召渚縣,〈一作汚。〉

고산현(高山縣 완주군 고산면 운주면 경천면 동상면 일대) : 백제의 고산현(高山縣) 난등량(難等良)이라고도 하였다.

高山縣本百濟高山縣. 一云難等良。〉

운제현(雲梯縣 완주군 운주면 화산면 일대) : 백제의 지벌지현(只伐只縣) 지실지(只失只)라고도 하였다.

雲梯縣本百濟只伐只縣. 一云只失只。〉

마령현(馬靈縣 진안군 마령면 부귀면 일대) : 백제의 마돌현(馬突縣) 마진(馬珍) 또는 마등량(馬等良)이라고도 하였다.

馬靈縣本百濟馬突縣. 一云馬珍一云馬等良。〉

여량현(礪良()익산시 여산면 낭산면 망성면 일대) : 백제의 지량초현(只良肖縣)

礪良縣一作陽。〉本百濟只良肖縣.

이성현(利城縣 김제시 청하면 일대) : 백제의 내리아현(乃利阿縣)

이성현(伊城縣 전주시 화전면 성덕면 원동면 등, 완주군 이서면 일대)은 백제의 두이현(豆伊縣) 왕무(往武)라고도 하였다.

신라 때 두성(杜城)이란 이름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利城縣本百濟乃利阿縣. 伊城縣本百濟豆伊縣,〈一云往武。〉新羅景德王改名杜城來屬高麗改今名仍屬

함열현(咸悅縣 익산시 함열읍 함라면 웅포면 성당면 일대) : 백제의 감물아현(甘勿阿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고 임피군(臨陂郡)이 거느리는 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다른 곳에 소속시켰다. 고려 명종(明宗) 6년에 감무(監務 작은 현에 둔 관리)를 두었다. 함라(咸羅)라는 다른 호칭이 있다. 충숙왕(忠肅王) 8, ()의 도내산은소(道乃山銀所) 사람 백안부개(伯顔夫介)가 원나라에서 있으면서 본국에 대한 공을 만들어 그 소()를 승격시켜 용안현(龍安縣)으로 하였다. 공양왕(恭讓王) 3년에 전주(全州)에 속한 풍저현(豐儲縣)을 용안현에 주었다.

咸悅縣本百濟甘勿阿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臨陂郡領縣高麗初來屬明宗六年置監務別號咸羅

忠肅王八年縣之道乃山銀所人伯顔夫介在元有功於本國陞所爲龍安縣恭讓王三年以全州屬縣豐儲與之。〉

남원부(南原府)

남원부(南原府) : 백제의 고룡군(古龍郡)

후한(後漢) 건안(建安) 중에 대방군(帶方郡)으로 만들었다. 조조의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南帶方郡)으로 만들었다. 신라가 백제를 차지하였을 때 당 고종(高宗)이 유인궤(劉仁軌)에게 조서를 내려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史)로 삼았다. 신라 신문왕 4년에 소경(小京)을 두었고 경덕왕 16년에 남원소경(南原小京)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에 부()로 바꾸었다. 충선왕(忠宣王) 2년에 대방군(帶方郡)으로 복원하였고 뒤에 남원군(南原郡)으로 바꾸었다. 공민왕 9년에 부()로 승격시켰다. 용성(龍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지리산이 있는데 지리(地理), 또는 두류(頭流), 방장(方丈)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남악(南嶽)으로 삼아서 중사(中祀)로 갖출 예를 높이었는데 고려가 그대로 따랐다. 순자진(鶉子津)이 있다.

南原府本百濟古龍郡後漢建安中爲帶方郡曹魏時爲南帶方郡新羅幷百濟唐高宗詔劉仁軌檢校帶方州刺史神文王四年置小京景德王十六年改南原小京太祖二十三年改爲府忠宣王二年復爲帶方郡後改爲南原郡恭愍王九年陞爲府別號龍城有智異山。〈一云地理一云頭流一云方丈新羅爲南嶽躋中祀高麗仍之。〉有鶉子津

임실군(任實郡) : 백제의 임실군(任實郡)

任實郡本百濟任實郡.

순창군(淳昌郡) : 백제의 도실군(道實郡)

신라 때 순화군(淳化郡)이라 고쳤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현()으로 만들어 다른 곳과 합쳤다. 충숙왕(忠肅王) 원년에 승국통(僧國統) 정오(丁午)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 옥천(玉川) 또는 오산(烏山)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淳昌郡本百濟道實郡新羅景德王改爲淳化郡高麗更今名爲縣來屬忠肅王元年以僧國統丁午鄕陞知郡事別號玉川又烏山

장계현(長溪縣 장수군 장계 계남 계북면 일대) : 백제의 백해군(伯海()또는 백이군)

신라 때 벽계군(壁溪郡)이라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長溪縣本百濟伯海郡,〈一作伊。〉新羅景德王改爲壁溪郡高麗更今名

적성현((/)城縣 순창군 적성면 일대) : 백제의 력평현(礫坪縣)

赤城縣一作磧又作硳。〉本百濟礫坪縣.

거령현(()寧縣 남원 오수 일대) : 백제의 거사물현(居斯勿縣)

신라 때 청웅(靑雄)이라 이름을 고쳤고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居寧縣一作巨。〉本百濟居斯勿縣新羅景德王改名靑雄爲任實郡領縣高麗更今名來屬

구고현(九皐縣 임실군 청웅면 일대) : 백제의 돌평현(堗坪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순화군(淳化郡) 소속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고 다른 행정구역과 합쳤다. 공민왕 3년에 원나라 사신이 된 구고현 사람 임몽고부화(林蒙古不花)가 나라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군()으로 승격시켰다.

九皐縣本百濟堗坪縣,〈一作淚。〉新羅景德王改今名爲淳化郡領縣高麗初來屬恭愍王三年以縣人元使林蒙古不花有功於國陞爲郡

장수현(長水縣) : 백제의 우평현(雨坪縣)

長水縣本百濟雨坪縣.

운봉현(雲峯縣) : 신라의 무산현(毋山縣) 아영성(阿英城) 또는 아막성(阿莫城)이라도고 하였다.

요해처로 팔량고개(八良峴)가 있다.

雲峯縣本新羅毋山縣,〈或云阿英城或云阿莫城。〉要害處有八良峴

구례현(求禮縣) :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

봉성(鳳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요해처로 잔수진(潺水津), 미초률고개(未草栗峴)가 있는데 모두 구례현에서부터 순천 땅을 가리키고 있다.

求禮縣本百濟仇次禮縣別號鳳城要害處有潺水津未草栗峴皆自縣指順天境

고부군(古阜郡)

고부군(古阜郡) : 백제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古阜郡本百濟古沙夫里郡.

보안현(保安縣 부안군 보안 줄포 주산면 일대) : 백제의 흔량매현(欣良買縣)

신라 때 희안(喜安)이란 이름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낭주(浪州)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변산(邊山)이 있고 위도(猬島)가 있다.

保安縣本百濟欣良買縣新羅景德王改名喜安來屬高麗更今名仍屬. 別號浪州有邊山有猬島

부령현(扶寧縣 부안군) : 백제의 개화현(皆火縣)

扶寧縣本百濟皆火縣.

정읍현(井邑縣) : 백제의 정촌현(井村縣)

井邑縣本百濟井村縣

대산군(大山郡 정읍시 신태인읍 감곡면 옹동면 산외면 산내면 칠보면 일대) : 백제의 대시산군(大尸山郡)

大山郡本百濟大尸山郡

인의현(仁義縣) : 백제의 빈굴현(賓屈縣) 부성현(賦城縣)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때 무성(武城)이란 이름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仁義縣本百濟賓屈縣,〈一云賦城縣。〉新羅景德王改名武城爲大山郡領縣高麗更今名

상질현(尙質縣 고창군 흥덕면 성내면 신림면 일대) : 백제의 상칠현(上柒縣)

尙質縣本百濟上柒縣.

고창현(高敞縣) :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高敞縣本百濟毛良夫里縣

임피현(臨陂縣 군산시 임피면 서수면 대야면 개정면 등 일대)

임피현(臨陂縣) : 백제의 시산군(屎山郡) 흔문(忻文) 또는 소도(所島), 실오출(失烏出), 피산(陂山)이라고도 하였다.

취성(鷲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臨陂縣本百濟屎山郡,〈一云忻文一云所島一云失烏出一云陂山。〉 別號鷲城

회미현(澮尾縣 군산시 회현면)

澮尾縣本百濟夫夫里縣.

부윤현(富潤縣 김제시 성덕면 일대) : 백제의 무근촌현(武斤村縣)

신라 때 무읍(武邑)이란 이름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富潤縣本百濟武斤村縣新羅景德王改名武邑爲金堤郡領縣高麗更今名.

옥구현(沃溝縣 군산시 옥구읍 일대) :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

沃溝縣本百濟馬西良縣.

만경현(萬頃縣 김제시 만경읍 청하면 진봉면 공덕면 성덕면 일대) : 백제의 두내산현(豆乃山縣)

萬頃縣本百濟豆乃山縣.

진례현(進禮縣 충남 금산)

진례현(進禮縣) : 백제의 진내군(進乃郡) 진잉을현(進仍乙縣)이라고도 하였다.

進禮縣本百濟進乃郡,〈一云進仍乙縣。〉新羅景德王改爲進禮郡高麗降爲縣令官신라 경덕왕 때 진례군(進禮郡)이라 고쳤다가 고려 때 현령관(縣令官)으로 강등하였다. 충렬왕 31년에 이 고장 사람 김신(金侁)이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요양행성참정(遼陽行省參政)이 되어 나라에 공을 두었다는 이유로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시켰다.

忠烈王三十一年以縣人金侁仕元爲遼陽行省參政有功於國陞知錦州事

부리현(富利縣 충남 금산) :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 부시이(富尸伊)라고도 하였다.

신라 때 이성현(伊城縣)이라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富利縣本百濟豆尸伊縣,〈一云富尸伊。〉新羅景德王改爲伊城縣來屬高麗更今名.

청거현(淸渠縣 전북 진안군 용담면 주천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일대) : 백제의 물거현(勿居縣)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다른 곳과 합쳤다. 고려가 이를 따랐다가 충선왕 5년에 용담현(龍潭縣)으로 바꾸고 영()을 두었다. 옥천(玉川)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淸渠縣本百濟勿居縣新羅景德王更今名來屬高麗因之忠宣王五年改爲龍潭縣置令別號玉川

주계현(朱溪縣 전북 무주) : 백제의 적천현(赤川縣)

신라 경덕왕 때 단천(丹川)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다른 곳과 합쳤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소속은 그대로 하였다. 명종(明宗) 6년에 무풍(茂豐 무주군)의 감무(監務)로 하여 주계현을 함께 맡게 하였다가 공양왕 3년에 무풍으로 합쳤다.

朱溪縣本百濟赤川縣新羅景德王改名丹川來屬高麗更今名仍屬明宗六年以茂豐監務來兼恭讓王三年倂于茂豐

무풍현(茂豐縣 무주군) : 본래 신라의 무산현(茂山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개령군(開寧郡)의 소속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다른 곳과 합쳤다가 명종 6년에 감무(監務 작은 현에 둔 관리)를 두고서 주계(朱溪)를 아울러 담당하게 하였다. 공양왕 3년에 주계현을 이곳에 합쳐서 소속시켰다. 상산(裳山)이 있다.

상산(裳山)은 사면의 절벽이 층층으로 서 있어 높이 깎아지른 것이 사람의 치마와 같아서 이 이름을 지었다. 옛사람이 이 산의 험준함을 인연하여 성()을 만들었으니 겨우 두 곳의 길만이 위로 오를 수가 있다. 그 중간에는 길이 평탄하고 넓으며 샘물이 사방에서 나온다.

茂豐縣本新羅茂山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開寧郡領縣高麗初來屬明宗六年置監務兼任朱溪恭讓王三年以朱溪縣合屬有裳山。〈四面壁立層層峻截如人之裳故名古人因險爲城僅有二路可上其中平坦寬曠泉水四出。〉

진동현(珍同()충남 금산군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 일대) : 백제의 진동현(珍同縣)

신라 때 황산군(黃山郡 충남 논산시 연산면 부적면 벌곡면 양촌면 두마면 일대)의 소속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다른 곳과 합쳤다가 공양왕 2년에 고산(高山 전북 완주, 충남 논산 일대)의 감무(監務)가 이곳을 맡게 하였다. 옥계(玉溪)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옛날 현에 소속된 것에 강산(犺山)이 있었다.

珍同縣本百濟珍同縣,〈一作洞。〉新羅爲黃山郡領縣高麗來屬恭讓王二年以高山監務來兼別號玉溪。〈古屬縣有犺山。〉

김제현(金堤縣)

김제현(金堤縣) : 백제의 벽골군(碧骨郡)

신라 경덕왕 때 김제군(金堤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으로 만들었다가 인종(仁宗) 21년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벽골제(碧骨堤)가 있다. 신라 흘해왕(訖解王) 21년에 섬돌로 높이는 일을 시작하였다. 길이가 18백 보(), 대략 1320미터이다.[‘始開岸은 섬돌(台階)과 높을 의 뜻이 있다.]

金堤縣本百濟碧骨郡新羅景德王改爲金堤郡高麗初爲全州屬縣仁宗二十一年置縣令有碧骨堤。〈新羅訖解王二十一年始開岸長一千八百步。〉

평고현(平臯縣 김제시 일대) : 백제의 수동산현(首冬山縣)

平臯縣本百濟首冬山縣.

금구현(金溝縣 김제시 금구면 황산면 봉남면 등 일대)

금구현(金溝縣) : 백제의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전주에 소속시켰다. 고려 의종(毅宗) 때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외가쪽 고향이라는 이유로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하였다.

金溝縣本百濟仇知只山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全州領縣毅宗二十四年以李義方外鄕陞爲縣令官別號鳳山

거야현(巨野縣 전북 김제시 금구면 봉남면 금산면 일대) : 백제의 야서이현(也西伊縣)

신라 때 야서(野西)라는 이름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巨野縣本百濟也西伊縣新羅景德王改名野西爲大山郡領縣高麗更今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