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호이한하(呼爾罕河) (출처 : 성경통지 28권)
신당서(新唐書)에 ‘천보(天寳 : 742년 정월-756년 7월) 말에 발해(渤海) 대씨(大氐) 흠무(欽茂)가 상경(上京)으로부터 옮겨 옛나라(舊國) 3백 리(里) 호이한하(呼爾罕河) 동쪽을 대면하였다’고 말하였다. 살펴보면 호이한하(呼爾罕河) 곧 지금 영고탑(寧古塔) 호이합하(瑚尔哈河)인데 수원은 색제와집(塞齊窩集)에서 나와 영고탑성(寧古塔城)에서 모인다. 서남 1백 리에 필이등호(畢尔騰湖) 동쪽을 직면하였으니 이 호수는 동서의 너비가 56리이요 남북의 길이가 70리쯤이고 가운데에 산이 셋 있다. 이것이 곧 호이한해(呼爾罕海)이다. 또 경박(鏡泊)의 발고(發庫 곧 폭포) 동쪽에서부터 영고탑성(寧古塔城) 곁 옛 대성(古大城) 남쪽을 두르고서 동북으로 흐르다 혼동강(混同江)과 하나가 된다. 옛 대성(古大城)은 아마도 곧 상경(上京) 옛터이다. 당(唐) 가탐(賈耽)이 “발해왕성(渤海王城)이 호이한해(呼爾罕海)를 내려다 본다” 한 것이 이것이다. 호이한(呼爾罕)은 원래 홀한(忽汗)이라 적혀있는데 지금 가려서 고쳤다.
1) 색제(塞齊) : 나랏말(만주어)이니 ‘그어 깨뜨리다(劃破)’를 말하는 것이다. 塞齊〈國語 劃破之謂〉
欽定盛京通志 卷二十八 呼爾罕河〈新唐書 天寳末 渤海 大氐欽茂從上京 直舊國三百里 呼爾罕河之東 按呼爾罕河 即今寧古塔 瑚尔哈河 源出塞齊窩集 滙於寧古塔城西南一百里之畢尔騰湖 廣五六里 袤七十里許 中有三山 即呼爾罕海也 又自發庫東 繞寧古塔城旁古大城之南 東北流與混同江合 古大城 疑即上京舊址 唐賈耽云 渤海王城臨呼爾罕海者 是也 呼爾罕原作忽汗 今譯改〉
18. 청하(清河) (출처 : 성경통지 28권)
청하는 곧 지금에 의로하(懿路河)이고 이 역시 소청하(小清河)라 이름한다. 금사 지리지(金史地理志)에 ‘읍루(挹婁)에 청하국(清河國)이 있었는데 이 하천을 구필랍(扣必剌)라 이름하였으니 곧 이것이다. 전요지(全遼志)를 보면 소청하(小清河)는 철령위(鐵嶺衛) 남쪽 60리에 있으며 수원은 폐귀덕주(廢貴徳州) 남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흐르다 의로성(懿路城) 남쪽을 거쳐 흘러서 요하(遼河)로 들어간다.
欽定盛京通志 卷二十八 清河〈即今懿路河 亦名小清河 金史地理志 挹婁有清河國 名扣必剌 即此 全遼志 小清河在鐵嶺衛南六十里 源出廢貴徳州南山西 流經懿路城南 流入遼河〉
19. 이이문하(伊爾們河)
1) 이이문하(伊爾們河) (출처 : 만주원류고 15권) : 금사(金史)에 ‘온도(温都) 〈옛날에 온돈(温敦)이라 씀〉포랍(布拉) 〈만주어이니 ‘가시나무(荆剌/刺)’를 뜻한다. 옛날에 포랍(蒲剌)이라 썼다.〉이 처음으로 장백산(長白山)에서 살다가 위에 융주(隆州) 이이문하(伊爾們河)로 옮겼다 〈옛날에는 이리민(移里閔)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금사(金史)에 ‘빈도(璸都)가 상경(上京) 이문도(伊爾們)를 받아서 대대로 명안(明安)을 세습하였다.’ 하고 명통지(明統志)에 ‘이이문하(伊爾們河)는 개원성(開原城) 북쪽에 있어서 북으로 흐르다 이둔하(伊屯河)와 만나 송화강(松花江)으로 들어간다.’ 하였다. 〈톺아보면 명지(明志)에서 ‘이운(伊運)’으로 잘못 기록하고 나아가 ‘인문(引門)’이라 잘못을 저질렀으니 모두 이이문(伊爾們)의 바뀐 소리이다. 금(金) 융주(隆州)는 곧 길림오라(吉林烏拉) 서쪽에 있으니 그곳이 이이문(伊爾們)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이문하(伊爾們河)를 들여다보면 길림(吉林) 서쪽 1백 40리에 있고 수원은 고륵눌와집(庫勒訥窩集)에서 나와 동북으로 흐르다 이둔하(伊屯河)를 만나 혼동강(混同江)으로 들어간다.〉
○금사에 “온도(温都)의 후손을 포랍온도(布拉溫都)라 하는데 처음에 장백산(長白山) 아포철하(阿布徹河)에서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하였다. 烏春之後為溫都氏 裔孫曰布拉溫都 布拉始居長白山阿布徹河 徙隆州額勒敏河
○금사(金史)에 오춘(烏春)이 뒤에 온돈씨(溫敦氏)가 되는데 후손들을 포자(蒲刺)라고 한다. 온돈포자(溫敦蒲刺)는 처음에 장백산(長白山) 아불신하(阿不辛河)에서 살다가 융주(隆州) 이리민하(移裏閔河)로 옮겼다. (포자(蒲刺)는 포랍(布拉)의 다른 표기이기 때문에 포랄(蒲剌)이 맞는 표기일 듯하다) 금사 67권 표점본 : 烏春之後為溫敦氏,裔孫曰蒲刺。溫敦蒲刺始居長白山阿不辛河,徙隆州移裏閔河。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가 장백산(長白山) 아복살하(阿卜薩河)에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액륵민(額勒敏)은 곧 ‘이륵문(伊勒們)’이라는 소리가 바뀐 것이다. (대청일통지) 大清一統志(明) (和珅) : 温屯噶布拉思居長白山阿卜薩河 徙隆州額勒敏河 額勒敏 即伊勒們音之轉也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15 伊爾們河 金史温都〈舊作温敦今從八旗姓譜改〉布拉〈滿洲語 荆剌也 舊作蒲剌 今改正〉 始居長白山 後徙隆州伊爾們河 〈舊作移里閔 今改正〉 金史 璸都授上京伊爾們 世襲明安 明統志 伊爾們河在開原城北 北流合伊屯河 入松花江〈案明志 訛伊運又訛引門 皆伊爾們之轉音 金隆州 即在吉林烏拉西 其為伊爾們 無疑 考伊爾們河在吉林西百四十里 源出庫勒訥窩集 東北流會伊屯河 入混同江〉
2) 이이문하(伊爾們河)는 아포철하(阿布徹河), 액륵민하(額勒敏河), 이륵문하(伊勒們河)라고도 한다.
3) 이이문하(伊爾們河) :전기(前旗) 동남 2백 20리에 있으며 수원은 영길주(永吉州) 영역 안에서 나와 북으로 흐르다 변방을 나가 남쪽에서 오는 오소토오해하(烏蘇土烏海河)를 받아들이고 일독하(一秃河)를 만나 길림강(吉林江)으로 들어간다. 欽定大清一統志 (四庫全書本)/卷405 伊爾們河 在前旗東南二百二十里 源出永吉州境内 北流出邊 受南來之烏蘇土烏海河 㑹一秃河 入吉林江
○ 오소토오해하(烏蘇土烏海河) : 오소도오해하(烏蘇圖烏海河)이다. 길림성 중부에 있고 음마하(飮馬河) 지류이다. 수원은 지금 장춘시 쌍양구(雙陽區) 서북에서 나온다.
○ 일독하(一秃河) : 이둔하(易屯河), 이돈하(伊敦河), 이돈하(移燉河)라고도 한다. 지금 길림 중부 송화강 지류 이통하(伊通河)이다.
5) 살라하(薩喇河) 이이문하(伊爾們河 이륵문하(伊勒們河)) : 나랏말(만주어)이니 이륵문(伊勒們)은 염라왕(閆王)을 뜻한다. 성(城) 서쪽 1백 45리에 있고 수원은 고륵납와집(庫勒納窩集)에서 나오고 그 동쪽에 살라하(薩喇河)가 있어 서북으로 흐르다 이곳 이륵문하(伊勒們河)로 유입된다. 서쪽에는 륵부(勒富)와 도대(都岱) 두 하천이 있어 모두 북으로 흐르다 이륵문하로 유입되고 북으로 흘러 변경으로 들어가 이돈하(伊敦河)와 만나 혼동강(混同江)으로 들어간다. 금사(金史)에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가 장백산(長白山) 아복살하(阿卜薩河)에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액륵민(額勒敏)은 곧 이륵문(伊勒們)에서 바뀐 소리이다.” 하였다. 명일통지(明一統志)에 “이밀하(伊宻河)를 두고서 개원성(開原城) 북쪽 4백 리에 있고 수원은 예하(艾河) 북산(北山)에서 나와 북으로 흐르다 이도하(伊圖河)를 만나서 송화강(松花江)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이것이다. 하나를 둔 것은 성(城) 동쪽 4백여 리에 있다. 살펴보면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는 원래 온둔고포랄사(温敦姑蒲剌史)라 적혀있고 아복살(阿卜薩)은 원래 아불행(阿不幸)이라 적혀있으며 액륵민(額勒敏)은 원래 이리민(移里閔)이라 적혀있고 이밀(伊宻)은 원래 일미(一迷)라고 적혀있다.
欽定盛京通志 (四庫全書本)/卷027 薩喇河 伊勒們河〈國語 伊勒們 閆王也 城西一百四十五里 源出庫勒納窩集 其東有薩喇河 西北流注之 西有勒富都岱二河 俱北流注之 北流入邊 㑹伊敦河 入混同江 金史 温屯噶布拉思居長白山阿卜薩河 徙隆州額勒敏河 額勒敏 即伊勒們之轉音也 明一統志 有伊宻河在開原城北四百里 源出艾河北山 北流合伊圖河 入松花江 即此 又有一在城東四百餘里 按温屯噶布拉思原作温敦姑蒲剌史 阿卜薩原作阿不幸 額勒敏原作移里閔 伊宻原作一迷
19. 이이문하(伊爾們河)
1) 이이문하(伊爾們河) (출처 : 만주원류고 15권) : 금사(金史)에 온도(温都) 〈옛날에 온돈(温敦)이라 씀〉포랍(布拉) 〈만주어이니 ‘가시나무(荆剌/刺)’를 뜻한다. 옛날에 포랄(蒲剌)이라 썼다.〉이 처음으로 장백산(長白山)에서 살다가 위에 융주(隆州) 이이문하(伊爾們河)로 옮겼다 〈옛날에는 이리민(移里閔)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금사(金史) 璸都授上京伊爾們世襲明安 명통지(明統志)에 이이문하(伊爾們河)는 개원성(開原城) 북쪽에 있어서 북으로 흐르다 이둔하(伊屯河)와 만다 송화강(松花江)으로 들어간다. 〈톺아보면 명지(明志)에서 ‘이운(伊運)’으로 잘못 기록하고 나아가 ‘인문(引門)’이라 잘못을 저질렀으니 모두 이이문(伊爾們)의 바뀐 소리이다. 금(金) 융주(隆州)는 곧 길림오라(吉林烏拉) 서쪽에 있으니 그곳이 이이문(伊爾們)임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이이문하(伊爾們河)를 들여다보면 길림(吉林) 서쪽 1백 40리에 있고 수원은 고륵눌와집(庫勒訥窩集)에서 나와 동북으로 흐르다 이둔하(伊屯河)를 만나 혼동강(混同江)으로 들어간다.
欽定滿洲源流考 (四庫全書本)/卷15 伊爾們河 金史温都〈舊作温敦今從八旗姓譜改〉布拉〈滿洲語荆剌也舊作蒲剌今改正〉始居長白山後徙隆州伊爾們河〈舊作移里閔今改正〉金史璸都授上京伊爾們世襲明安 明統志 伊爾們河在開原城北 北流合伊屯河 入松花江〈案明志 訛伊運又訛引門 皆伊爾們之轉音 金隆州 即在吉林烏拉西 其為伊爾們 無疑 考伊爾們河在吉林西百四十里 源出庫勒訥窩集 東北流會伊屯河 入混同江〉
2) 이이문하(伊爾們河), 아포철하(阿布徹河), 액륵민하(額勒敏河), 이륵문하(伊勒們河) (출처:대청일통지)
○금사에 “온도(温都)의 후손을 포랍온도(布拉溫都)라 하는데 처음에 장백산(長白山) 아포철하(阿布徹河)에서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하였다. 鳥春之後為溫都氏 裔孫曰布拉溫都 布拉始居長白山阿布徹河 徙隆州額勒敏河
○금사에 오춘(烏春)이 뒤에 온돈씨(溫敦氏)가 되는데 후손들을 포자(蒲刺)라고 한다. 온돈포라(溫敦蒲刺)는 처음에 장백산(長白山) 아불신하(阿不辛河)에서 살다가 융주(隆州) 이리민하(移裏閔河)로 옮겼다. (포자(蒲刺)는 포랍(布拉)의 다른 표기이기 때문에 포랄(蒲剌)이 맞는 표기일 듯하다) 금사 67권 표점본 : 烏春之後為溫敦氏,裔孫曰蒲刺。溫敦蒲刺始居長白山阿不辛河,徙隆州移裏閔河。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가 장백산(長白山) 아복살하(阿卜薩河)에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액륵민(額勒敏)은 곧 ‘이륵문(伊勒們)’이라는 소리가 바뀐 것이다. 温○둔갈포랍사(屯噶布拉思)가 장백산(長白山) 아복살하(阿卜薩河)에서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이사하였다. 액륵민(額勒敏)은 곧 이륵문(伊勒們)의 소리가 바뀐 것이다. (대청일통지) 大清一統志(明) : 温屯噶布拉思居長白山阿卜薩河 徙隆州額勒敏河 額勒敏 即伊勒們音之轉也
3) 이이문하(伊爾們河) :전기(前旗) 동남 2백 20리에 있으며 수원은 영길주(永吉州) 영역 안에서 나요 북으로 흐르다 변방을 나가 남쪽에서 오는 오소토오해하(烏蘇土烏海河)를 받아들이고 일독하(一秃河)를 만나 길림강(吉林江)으로 들어간다. 欽定大清一統志 (四庫全書本)/卷405 伊爾們河 在前旗東南二百二十里 源出永吉州境内 北流出邊 受南來之烏蘇土烏海河 㑹一秃河 入吉林江
○ 오소토오해하(烏蘇土烏海河) : 오소도오해하(烏蘇圖烏海河)이다. 길림성 중부에 있고 음마하(飮馬河) 지류이다. 수원은 지금 장춘시 쌍양구(雙陽區) 서북에서 나온다.
○ 일독하(一秃河) : 이둔하(易屯河), 이돈하(伊敦河), 이돈하(移燉河). 지금 길림 중부 송화강 지류 이통하(伊通河)이다.
4) 살라하(薩喇河) 이이문하(伊爾們河 이륵문하(伊勒們河)) : 나랏말(만주어)이니 이륵문(伊勒們)은 염라왕(閆王)을 뜻한다. 성(城) 서쪽 1백 45리에 있고 수원은 고륵납와집(庫勒納窩集)에서 나오고 그 동쪽에 살라하(薩喇河)가 있어 서북으로 흐르다 이곳 이륵문하(伊勒們河)로 유입된다. 서쪽에는 륵부(勒富)와 도대(都岱) 두 하천이 있어 모두 북으로 흐르다 이륵문하로 유입되고 북으로 흘러 변경으로 들어가 이돈하(伊敦河)와 만나 혼동강(混同江)으로 들어간다. 금사(金史)에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가 장백산(長白山) 아복살하(阿卜薩河)에 살다가 융주(隆州) 액륵민하(額勒敏河)로 옮겼다. 액륵민(額勒敏)은 곧 이륵문(伊勒們)에서 바뀐 소리이다.” 하였다. 명일통지(明一統志)에 “이밀하(伊宻河)를 두고서 개원성(開原城) 북쪽 4백 리에 있고 수원은 예하(艾河) 북산(北山)에서 나와 북으로 흐르다 이도하(伊圖河)를 만나서 송화강(松花江)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이것이다.
한편 다른 한 하천은 성(城) 동쪽 4백여 리에 있다. 살펴보면 온둔갈포랍사(温屯噶布拉思)는 원래 온둔고포랄사(温敦姑蒲剌史)라 적혀있고 아복살(阿卜薩)은 원래 아불행(阿不幸)이라 적혀있으며 액륵민(額勒敏)은 원래 이리민(移里閔)이라 적혀있고 이밀(伊宻)은 원래 일미(一迷)라고 적혀있다.
欽定盛京通志 (四庫全書本)/卷027 薩喇河 伊勒們河〈國語 伊勒們 閆王也 城西一百四十五里 源出庫勒納窩集 其東有薩喇河 西北流注之 西有勒富都岱二河 俱北流注之 北流入邊 㑹伊敦河 入混同江 金史 温屯噶布拉思居長白山阿卜薩河 徙隆州額勒敏河 額勒敏 即伊勒們之轉音也 明一統志 有伊宻河在開原城北四百里 源出艾河北山 北流合伊圖河 入松花江 即此 又有一在城東四百餘里 按温屯噶布拉思原作温敦姑蒲剌史 阿卜薩原作阿不幸 額勒敏原作移里閔 伊宻原作一迷
20. 금나라 개국공신인 명장 라색(羅索 : 완안루실(完顏婁室))이 아버지 백달(白逹 또는 박답(白荅))을 이어 아달뢰(雅撻瀨) 등 칠수(七水)에 여러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 아달뢰수(雅撻瀨水)는 지금 장춘시(옛날 장춘시는 지금의 위치보다 북쪽에 있었던 듯) 북쪽 무개하(霧開河)라고 하고 또는 쌍양하(雙陽河)로 지금에 장춘(長春) 석비령 근처나 이통하(伊通河)로 추정하고 있다. 그 조상이 아주호수(阿注滸水 : 지금 흑룡강 하얼빈 동남쪽 아습하(阿什河))에서 옮겨와 여진족 완안부가 되었다.
○ 백답(白荅) : 포달(布逹)이라고도 한다. ‘밥(飯)’을 뜻한다. 배답(背荅), 배달(白逹), 박달(駁逹)이라고도 한다.
○ 아달뢰수(雅撻瀨水)는 아달란수(雅達瀾水), 아달란수(雅撻瀾水), 예달라수(拽撻懶水), 아달란수(雅達蘭水)라고도 한다. 아달란(雅達瀾)은 음덕이(音徳爾)이라고도 한다. 몽고어이니 ‘누대에 섬돌(臺堦)’을 뜻한다. 물 이름이다. 音徳爾 蒙古語 臺堦也 卷六十五 作雅達瀾 卷一百二十一 作雅撻瀾 併改水名
○ 아륵탄음덕이(阿勒坦音徳爾) : 몽고어이니 아륵탄(阿勒坦)은 ‘금(金)’을 뜻한다. 음덕이(音徳爾)는 ‘섬돌(堦)’을 뜻한다. 아리전압득사(阿里典壓得斯)라고도 하니 산 이름이다. 阿勒坦音徳爾 蒙古語 阿勒坦 金也 音徳爾 堦也 卷二 作阿里典壓得斯 山名
○ 화사음덕이(和斯音徳爾) : 화사(和斯)는 ‘짝(雙)’을 뜻한다. 음덕이(音徳爾)이는 ‘누대에 섬돌(臺階)’을 뜻한다. 홀인답아(忽因答兒)라고도 한다. 和斯音徳爾 和斯 雙也 音徳爾 臺階也 卷一百二十 作忽因答兒
○ 다시 “요(遼) 태조(太祖) 천찬(天贊) 3년(924년)에 아륵탄음덕이산(阿勒坦音徳爾山)에 올라 마침내 큰 사슴(麃鹿)으로 제사를 올렸다.” 하였다. (출처 : 연감류함 168권) 큰 사슴신(麃鹿神)에게 제사를 올리다. : 요(遼)나라 풍속에 큰 사슴(麃鹿) 사냥을 좋아하여 사냥을 나갈 때면 으레 그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어 많은 사냥감을 얻기를 기원하였다. (출처 : 속문헌통고 91권) (御定淵鑑𩔖函卷一百六十八) 又曰遼太祖天贊三年 登阿勒坦音徳爾山 乃以麃鹿祭之 《欽定續文獻通考卷九十一》:“祭麃鹿神:遼俗好射麃鹿,每出獵,必祭其神以祈多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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