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에 딸린 글자들, 말하자면 北海나 北地들들에 대한 고대 중원의 자료를 번역해 보았다. 어정병자류편은 하나의 옛 백과 사전이다. 청나라 때 장정옥(張廷玉)이 엮은 책이다.
북경(北京)
송서(宋書) 문제기(文帝紀) : 짐(朕)이 북경(北京)을 떠난 지 20여 년, 비록 거리가 꽤 가깝다고들 말하지만, 눈앞에 그 길을 보고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사방이 아무런 일이 없고 바람과 비가 철에 맞게 와 오곡이 여물었으니, 다시 옛 선영에 절하며 받들어 이 그지없는 마음을 펴고 옛일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을 풀어먹여 옛날을 추앙하는 정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그 의(義)는 고향(桑梓)을 아우르고 정(情)은 한(漢) 고조가 고향 패현에서 잔치를 벌였던(過沛) 일보다 더하다.
당서(唐書) 예종기(睿宗紀) : 천보(天寳) 원년(元年 : 742년) 2월 병신(丙申), 시중(侍中)을 고쳐 좌상(左相)을 만들었고 중서령(中書令)을 고쳐 우상(右相)을 만들었으며 동도(東都)를 고쳐 동경(東京)을 만들었고 북도(北都)를 고쳐 북경(北京)을 만들었으며 주(州)를 고쳐 군(郡)으로 하였고 자사(刺史)를 고쳐 태수(太守)로 하였다.
윤원개전(尹元凱傳) : 때에 부가모(富嘉謨)와 오소미(呉少微)가 있었으니 모두 이름이 났다. 가모(嘉謨)는 무공인(武功人)으로 진사(進士)에 천거되어 장안(長安)에서 벼슬자리를 여러 번 구르다 진양위(晉陽尉)로 갔다. 소미(少微)는 신안인(新安人)으로 역시 진양(晉陽)에서 위(尉) 노릇을 했으니 더욱 서로 좋은 벗이었다. 또한 위곡기(魏谷倚)란 사람이 있었으니 태원주부(太原主簿) 노릇을 하며 아울러 아름다운 문장력을 지녔다. 당시에 이들을 북경 삼걸(北京三傑)이라 일컬었다.
금사(金史) 지리지(地理志) : 임황부(臨潢府), 하(下 : 이 下가 어떤 뜻인지는 일단 접어두겠다), 총관부(總管府 : 그 지역에 군대 업무를 관리하는 기구)이다. 땅이름은 서루(西樓)이다. 요(遼)나라 때 상경(上京)을 만들었으니, 금나라 초, 이를 따라서 그리 일컬었다가 천권(天眷) 원년(元年 : 1138년)에 북경(北京)이라고 고쳤다. 천덕(天徳) 2년(1151년), 북경(北京)을 임황부로(臨潢府路)로 고치고서 북경로도전운사(北京路都轉運司 : 도전운사는 중앙 정부의 戶部나 탁지부(度支部)에 속하여 지방 재정을 담당)를 임황부로전운사(臨潢府路轉運司)로 하였다.
정원(貞元) 원년(元年 : 1153년), 대정부(大定府)를 북경(北京)으로 하였다.
원사(元史) 태조기(太祖紀) : 2월 몽고의 장령 목호리(穆呼哩)가 북경(北京)을 공격하자 금(金)의 원수(元帥) 음달혼오고리(音達琿烏庫哩)가 성(城) 채로 항복하였다.
금사(金史) 세조기(世祖紀) : 가을 7월 무진(戊辰), 연경(燕京), 북경(北京), 서경(西京), 진정(真定), 평양(平陽), 대명(大名), 동평(東平), 익도(益都) 들의 로(路) 선무사(宣撫司)에게 칙령을 내려 양가죽과 갖모자와 바지, 신발을 만들게 하니, 모두 만(萬)으로 헤아려지는 물품을 개평(開平 : 내몽고 시린궈러맹(錫林郭勒盟) 정란기(正藍旗) 일대)으로 날랐다.
소학감주(小學紺珠) : 당(唐) 4경(四京) : 경조(京兆, 곧 長安)는 중경(中京)이 되고 하남(河南)은 동경(東京)이 되며 태원(太原)은 북경(北京)이 되고 봉상(鳯翔)은 서경(西京)이 된다.
송(宋) 사경(四京) : 개봉부(開封府)는 동경(東京)이 되고 하남부(河南府)는 서경(西京)이 되며 응천부(應天府)는 남경(南京)이 되고 대명부(大名府)는 북경(北京)이 된다.
북국(北國)
시(詩經) : 온 북국(北國)을 내리고, 이참에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시었다. [임금이 한후에게 추(追) 땅과 맥(貊) 땅을 내리셨다. 한후(韓侯)가 온 북국(北國)을 내리고, 이참에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시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지십(蕩之什) 7편 한혁(韓奕) : 王錫韓侯,其追其貊。奄受北國,因以其伯。]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남국(南國) 아래에 북국에 대한 말이 보인다.
묘(昴) 별자리와 필(畢) 별자리 사이가 하늘길(天街)이 되니 그 음(隂)은 음국(隂國)이요, 그 양(陽)은 양국(陽國)이다. 주(注)에 맹강(孟康)이 “하늘길 음(隂)은 땅에 닿으면 서남(西南) 쪽 곤방(坤維)이니, 하산(河山 : 황하와 태산)에서 북쪽 나라들(北國)이요 하늘길 양(陽)은 땅에 닿으면 하산(河山)에서 남쪽 나라들(南國)이다.” 하였다.
남사(南史) 주반룡전(周盤龍傳) : 위(魏)나라 사람들이 평소 반룡(盤龍)의 날래고 용맹한 이름을 경외하니 그를 만나면 바람을 만난 듯 쓰러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때에 적진 깊숙이 들어간 봉숙(奉叔 : 주반룡의 아들)이 벌써 위군(魏軍)을 크게 살상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반룡(盤龍)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쪽저쪽에서 위군을 건드리며 치니 위나라 군사들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봉숙(奉叔)이 그 아버지 반룡이 적진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말을 타고 뛰어 적진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탄 두 기마가 수만의 위나라 군사와 얽혀 뒤섞였고 위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반룡(盤龍) 부자(父子)는 이로부터 그 이름이 북국(北國)에 파다하게 퍼졌다.
북사(北史) 위기(魏紀) : 위(魏)의 선조는 황제(黄帝) 헌원씨(軒轅氏)에서 나왔다. 황제(黄帝) 아들 창의(昌意)가 있으니, 창의의 막내 아들이 북국(北國)을 봉지로 받았다. 북국에 대선비산(大鮮卑山)이 있어 이 산의 인연으로 이름을 따왔다.
송사(宋史) 조량사전(趙良嗣傳) : 양사(良嗣)가 말하기를 “지난날 북국(北國)의 연중(燕中 : 燕 땅. 지금에 베이징, 하북성, 천진 지역) 땅 호걸(豪士)인 류범(劉範), 이석(李奭)과 족형(族兄) 유길(柔吉) 세 사람이 의기 투합되어 유계(幽薊 : 지금 베이징과 천진 일대)를 쳐서 빼앗아 자기들이 섬기는 조정에 돌려주고자 하여 북극사(北極祠) 밑에서 술을 따라놓고서 하늘에 비나리 하며 약조하기를, 훗날 자기들의 일이 이루어지게 되면 바로 벼슬 관(冠)을 벗어 걸어 놓고 벼슬살이를 그만두기로 하여서 그 처음 마음을 또렷이 드러내기로 하니, 애초에 공명을 취하거나 부귀를 바라여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폐하의 위엄과 신령에 힘입어 지금에 정치가 아름답게 편안해졌으니 설마 지난날의 약조를 속이기야 하시겠습니까? 바라건대, 신(臣)이 벼슬을 그만두고서 고향으로 돌아가 땅뙈기를 마련하여 농사짓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북정(北庭)
후한서(後漢書) 반고전(班固傳) : 영원(永元 : 89년~105년) 초, 대장군 두헌(竇憲)이 흉노 정벌에 나설 때, 반고를 중호군(中䕶軍)으로 삼고, 더불어 의논에 참여하게 하였다. 북선우(北單于)가 한군(漢軍)이 출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 거연새(居延塞 : 거연은 고비 사막 서북쪽에 자리함)에 이르게 하여서는 한나라에 귀순하여 신하가 되기를 청하고 평화를 이룬 호한야(呼韓邪) 선우가 했던 옛일을 그대로 닦고자, 천자를 알현하고서 대사(大使)를 보내 주기를 청하게 하였다. 헌(憲)이 이 일을 천자에게 알리고 고(固 : 반고)를 보내며 중랑장(中郎將) 일을 대리하게 하되 수백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북선우(北單于)의 사신과 함께 거연새(居延塞)를 나오게 하여 이들을 맞이하였다. 때마침 남흉노(南匈奴)가 북흉노의 왕정(北庭)을 갑자기 공격하여 깼는데, 고(固)가 사거해(私渠海)에 이르렀을 때 흉노(虜) 안에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사거해(私渠海) : 사거비제해(私渠比鞮海). 몽골 서부 옵스주(烏布蘇省) 내에 있는 옵스호(Uvs Lake, 烏布蘇泊 또는 본찰간호(邦察干湖, Bystroye Lake)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서(唐書) 예종기(睿宗紀) : 개원(開元) 2년(732년) 4월 갑인(甲寅), 북정도호(北庭都䕶) 유환(劉渙)이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돌궐전(突厥傳) : 돈욕곡(暾欲谷 : 돌궐의 이름난 재상. 투뉴쿠크 Tonyukuk;646년 ~ 726년)가 말하기를 “군대가 천 리 먼 곳에 출정 나가면 병사들은 유달리 죽기 살기로 싸우니 그런 날카로운 기세는 감당하기 힘든 법입니다. 그러니 적군의 뒤를 쫓아가며 우리 국경 가까운 곳에 왔을 때를 맞아(시일이 지나 적군이 지쳤을 때) 이들을 쳐 승리를 손에 넣는 것이 낫습니다.” 하였다. 북정(北庭)과 거리가 삼백 리(里), 드디어 군대를 나누어 다른 길을 밟아서 그 성(城 : 拔悉蜜(발실밀, Baximi/Bašmyl) 부족이 있는 곳)을 갑자기 공격해 승리를 잡았다.
[북정도호부 : 부(府)는 북정성(北庭城 : 金满城)에 소재지를 두고 다스렸다. 그 관할 구역은 천산(天山) 이북에서 함해(咸海 : 아랄해)까지 였다고 한다.]
원사(元史) 백관지(百官志) : 지원(至元) 11년(1274년) 초, 휘화이단사관(輝和爾斷事官)을 두었으니 품계(秩)는 삼품(三品)이었다. 지원 17년, 이를 고쳐서 북정도호부(北庭都䕶府)를 거느리게 하며 품계를 이품(二品)으로 하고 관리 열두 사람을 두었다.
북아(北牙)
북사(北史) 장손성전(長孫晟傳) : 때에 섭도(攝圖)가 위왕(衛王)의 군대와 백도(白道)에서 마주쳐 싸움을 벌이다 패주하여 적(磧)에 이르렀다. 듣기에 아파(阿波)가 딴마음을 먹었다 하니 그예 북아(北牙)를 엄습하여 그 무리를 다 얻고서 아파의 어머니를 죽였다. 아파(阿波)가 돌아갈 곳이 없자 서쪽으로 점궐(玷厥)로 피해 달아났다.
수서(隋書) 장손성전(長孫晟傳) : 게다가 섭도(攝圖)는 아파(阿波)와 병력으로 따져보자면 본디 맘먹었었는데 지금 섭도(攝圖)가 날로 승리를 하여 무리에 추앙을 받고 있고, 아파(阿波)는 여의치가 못하여 나라에서 욕받이가 되고 있다. 그러니 섭도(攝圖)는 기어이 죄를 아파(阿波)에게 돌려 자기 오랜 계획을 이루고 아파의 북아(北牙)를 멸할 것이다.
북방(北方)
역(易) 설괘전(說卦傳) : 감(坎)이란 물(水)이니 정북방의 괘(卦)이요 수고로움의 괘(勞卦)이다. 만물이 돌아오는 곳이니, 따라서 “수고로움(勞)이 감(坎)에게로 돌아간다.” 하였다.
시(詩) : 험윤(玁狁)이 억세더니만 군대를 정비하여 초확(焦穫 : 지금 섬서성 경양현 )에 주둔하더니 호(鎬)와 방(方)을 침범하고는 경양(涇陽 : 또는 涇水 북쪽)에 이르렀다네. (匪茹整居焦穫 侵鎬及方至于涇陽) 풀이(箋) : 호(鎬)나 방(方)은 모두 북방(北方)에 땅이름이다.
예기(禮記) 왕제(王制) : 동방을 “기(寄)”라 하고 남방을 “상(象)”이라 하며 서방을 “적제(狄鞮)”라 하고 북방을 “역(譯)”이라 한다.
중용(中庸) :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가르치고 무도(無道)한 사람을 무도한 방법으로 되갚아 주지 않음이 남방(南方)의 강점이니 군자(君子)는 이러한 곳에 머문다. 전쟁터에서 무기(金革)를 깔고 죽어도 싫다 하지 않음은 북방(北方)의 강점이니 너의 강함이란 이러한 곳에 머물고 있다. 풀이(疏) : 북방(北方)은 사막의 땅으로 그 땅은 크게 음(隂)하고 음(隂)한 성향은 발끈하며 성급하다. 그래서 사람이 굳고 맹렬하게 생겨 먹으며, 늘 싸우고 다투는 것을 좋아하니, 하여 갑옷을 자리 삼아 갑옷을 입고서 잠을 자고 심지어 죽는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는 군자(君子)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강력하며 용맹한(强梁) 사람이 그곳에 머문다.
주례(周禮) : 제사를 이끄는 대종백(大宗伯)은 원황(元璜 : 검빛에 ‘❫’ 꼴인 옥)으로써 북방(北方)에 예를 올린다. 풀이(注) : 입동(立冬) 때 북방(北方)에 예를 올리니, 흑정(黒精)의 제(帝)라 하고 전욱(顓頊)과 원명(元冥)이 이 제례를 받아먹는다.
매씨(媒氏) : 무릇 시집가고 장가갈 때, 폐물은 순백(純帛 : 純은 ‘緇’)을 드리되 오량(五兩)을 넘지 않는다. 소(疏) : 북방(北方)은 물(水)이니 임계(壬癸)가 된다.
장을 먹으니 겨울에는 짠맛을 내는 음식을 더 먹는다. 소(疏) : 겨울에 짠맛을 내는 음식을 자주 먹는바, 북방(北方)은 물(水)이요 맛으로는 짠맛(鹹)이 겨울에 속한다. 맛을 어우러지게 하니 짠맛을 먹는 것 역시 다른 맛보다 조금 (一分) 더한다. 그래서 겨울에 짠맛을 더 먹는다(冬多鹹) 말하였다.
의례(儀禮) 사상견례(士相見禮) : 선비들이 서로 만나는 예에서, 주인(主人)이 서쪽 섬돌 동쪽에 서면 집사가 포와 고기젓을 올린다. 빈객의 대리인(介)이 북방에서 자리에 오르면 찢은 고기를 담은 도마(折俎)를 베푼다. 고수레(祭)는 빈례(賔禮)와 같다.
좌전(左傳) 범산(范山)이 초 장왕(楚子 : 莊王)에게 말하기를 “진나라 임금(晉君)이 어리다 보니 제후(諸侯)들 사이에서 동맹군을 이끌 위신이 넉넉하지 못하여 지금 북방(北方)을 칠 꾀를 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천하에 백성은 이(북방)를 “혼돈(渾敦)”이라 부른다. 소(疏)에서는 남방(南方) 아래에 보인다.
전국책(戰國䇿) : 형(荆) 선왕(宣王)이 뭇 신하에게 묻기를 “내가 듣기에 북방(北方)이 두려워하는 것은 초나라 명신 소해휼(昭奚䘏)이라 한다. 과연 정말로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하였다. 뭇 신하가 대답하지 못하였는데 강을(江乙)이 답하기를 “지금 우리 임금의 땅은 사방 오천 리에, 뛰어난 군대 백만을 지니고 있는데 이 군대가 오롯이 소해휼에게 붙여져 있어 북방(北方)이 해휼(奚䘏)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 실제는 임금의 뛰어난 군사(甲兵)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 신명(申命)과 화숙(和叔)이 북방(北方)을 차지하니 “유도(幽都)”라 하니, 곧 물(物)이 숨어 엎드려 있다.
천관서(天官書) : 옥한성(獄漢星 : 咸漢이라고도 한다. 土星/塡星/權星이 흩어져 咸漢이 된다)이 정북(正北) 북방(北方)의 들에서 나왔다.
율서(律書) : 너르고 아득한 바람(廣莫風)은 북방(北方)에 자리하니, 광막(廣莫)이란 양기(陽氣)가 아래에 있으나 음(隂)은 양(陽)의 광대(廣大)함에 못 미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광막(廣莫)”이라 하는 것이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歴志) : 태음(太隂)이란 북방(北方)이다. 북(北)은 엎드릴 복(伏)이다. 양기(陽氣)가 아래로 엎드리니 철로 따지면 겨울이 된다.
위상전(魏相傳) : 북방의 신은 전욱(顓頊 : 水德을 상징)이니 감(坎 : 水이자 正北을 상징)에 올라 권(權 : 저울추인 權을 잡는다고 함은 엄정하고 균형을 갖추었음을 말한다. 만물이 성장을 멈춘 겨울에야 그 실체를 저울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을 잡고서 겨울(冬)을 주관한다.
익봉전(翼奉傳) : 북방(北方)의 성정(情)은 좋아하여 쏠리는(好) 것이다. 먹이를 찾는 굶주린 이리의 탐욕처럼 구석구석 빈틈없이 파고들며 스며드는 것을 좋아하니 신과 자(申子)가 이를 주도한다. 주(注) : 맹강(孟康)이 “북방(北方)은 물(水)이니 물(水)은 신(申 : 오후 3시~5시)에 불어나고 자(子 : 오후 11시 ~ 새벽 1시)에 왕성해진다. 물의 성질(水性)은 땅에 닿으면 흘러 다니고 물(物)에 닿으면 촉촉해지니, 좋아하여 쏠리는 바(所好)가 많다. 그러니 좋아하여 쏠림(好)이 많게 되면 탐하여서 싫증냄이 없고, 그러니 굶주린 이리가 먹이를 찾듯 탐하는(貪狼) 것이다.
장건전(張騫傳) : 천자가 기뻐하며 건(騫)의 말을 옳다고 여겼다. 마침내 장건에 명 내려 촉군(蜀郡)과 건위군(犍為郡) 땅을 밟아서 비밀 업무를 띤 사신(閒使)를 보내게 하니 이 사신들이 네 곳에 길(四道)에서 동시에 나갔다. 방(駹 : 지역으로는 지금에 四川 茂縣 일대) 겨레가 사는 땅으로 나갔고 작(莋 : 지역으로 치면 지금에 四川 漢源 서쪽 일대) 겨레가 사는 땅으로 나갔으며, 사(徙 : 지역으로 치면 지금에 四川 天全) 겨레와 공(邛 : 지역으로 치면 지금에 四川 西昌) 겨레가 사는 땅으로 나갔고 북(僰 : 지역으로 치자면 지금에 四川 宜賓) 겨레가 사는 땅으로 나갔으니 모두 각자 일 이천 리를 갔다. 그러나 북방(北方)에서 저(氐), 작(莋) 겨레에게 막혔고 남방(南方)에서 수(嶲)와 곤(昆 : 昆明) 겨레에게 가로막혔다.
이릉전(李陵傳) : 이서(李緒)는 본디 한(漢)나라 변방 요새 밖 도위(都尉 : 군사업무 전담)노릇을 하며 해후성(奚侯城)에서 지냈다. 흉노(匈奴)가 이를 공격하자 서(緒)가 항복하니 선우(單于)가 손님 예우를 갖추어 서(緒)를 대접하여 늘 릉(陵)보다 윗자리에 앉혔다. 릉(陵)이 그 가족이 이서(李緒)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믿고서 애통해하다가 사람을 시켜 이서를 찔러 죽였다. 이서를 아꼈던 대연씨(大閼氏 : 선우의 정실 부인)가 릉(陵)을 죽이고자 하니 선우(單于)가 이를 북방(北方)에다 숨기어 주었고, 대연씨(大閼氏)가 죽자 돌아왔다.
후한서(後漢書) 두무전(杜茂傳) : 곽량(郭涼)은 자(字)가 공문(公文)이니 우북평(右北平) 사람이다. 몸길이가 8척(尺)으로 체력이 씩씩하고 힘찼는데 무장(武將)이었지만, 경서(經書)에 훤히 밝아 지략이 많고 변방에 업무에 뛰어나게 밝아 북방(北方)에서 이름을 날렸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 : 진성(辰星 : 水星. 오행에서 水에 대응)은 북방에, 겨울(冬)에, 물(水)에, 지(智)이니, 청(聼 : 홍범구주의 五事에 하나.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듣는 것과 총명함을 말한다)이다.
송서(宋書) 역지(厯志) : 자(子)를 12진의 첫 번째(辰首)로 삼았으니 위치는 정북(正北)에 있고 효(爻)은 초구(初九)이다. 두기 시작의 끝단(斗氣之端 : 북두칠성의 기운. 初九는 乾卦에서 가장 下爻이며 陽氣가 처음 생기는 상징이다. 곧, 승기(升氣)이다)에 상응한다. 허(虚)는 북방(北方)으로 나래비 선 뭇 별자리(列宿)에 가운데가 된다. 원기(元氣)가 비로소 처음이 되니 마땅히 이 자리(次)에 있어야 한다. 앞선 유학자 우희(虞喜 : 東晉 때 사람)가 그 내용을 갖추어 논의하였으니, 그래서 지금 역법이, 상원(上元 : 시작) 때 해 도수(日度)가 허(虚 : 虛宿) 1도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북사(北史) 백제국전(百濟國傳) : 서방(西方) 아래에 보인다.
금사(金史) 의위지(儀衛志) : 북방신기(北方神旗) 하나에 세 사람이 깃발 아래에서 따르며 역사(力士), 아울러 지네발(排襴) 달린 보라(紫)색 깃발 각각 하나를 둔다.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 : 공자(孔子)가 나이 오십 하나가 되도록 도(道)가 실행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자 그예 남쪽 패(沛)로 가서 노담(老聃 : 노자)을 뵈었다. 노담(老聃)이 말하기를 “그대, 왔는가? 내가 듣기에 그대는 북방(北方)의 현자(賢者)라고 하던데. 그대도 도를 터득하였는가?” 하였다.
바람이 북방(北方)에서 일어나 더러는 서쪽으로 가기도 하고 더러는 동쪽으로 가기도 하며, 또 허공에서 정처 없이 떠도니, 이 바람은 그 누가 마셨다가 뱉으며 뱉었다가 마시는가?
여람(呂覽 : 呂氏春秋) : 북방(北方)은 “원천(元天 : 元과 玄은 통하니, 검은 북방을 말한다)”이라 하니, 그 별은 무녀(婺女 : 女宿. 제2수), 허(虚 : 虛宿. 제3수), 위(危 : 危宿. 제4수), 영실(營室 : 室宿. 제5수)이다.
춘추번로(春秋繁露) : 물(水)은 북방(北方)을 차지하고서 겨울철(冬氣)을 쥐락펴락한다.
역림(易林) : 북방(北方)은 대추나무가 많고 남쪽에서 귤과 유자(橘柚)가 모이는 곳. 둘러멘 자루에 내음이 실리고 이내 광주리에 그득 찬다. (北方多棗,橘柚所聚。荷囊載香,盈我筐筥。)
주비산경(周髀算經) : 동쪽과 서쪽이 서로 마주하니, 정북방(正北方)이다. 주(注) : 해돋이와 해넘이 길이 서로 마주하며 삼진(三辰 : 亥 子 丑 방향에 별자리들이라 한다)을 덮지 않는 곳이 북방(北方)이 된다.
편작 자오경(扁鵲子午經) : 북방(北方)은 천간으로 치면 임계(壬癸)이고 물(水)이다. 사람의 신(腎)과 방광(膀胱), 뼈(骨), 골수(髓), 정기(精), 의지(志)를 쥐락펴락한다.
남방(南方)은 낮이 되고 북방(北方)은 밤이 된다.
풍속통(風俗通) : 북방(北方) 항산(恒山)이라, 항(恒)이란 떳떳할 상(常)이다. 만물이 북방으로 엎드려 숨어드니 변하지 않는(常) 것(법칙)이 있다.
화엄경(華嚴經)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 북방(北方)에 시방 불국토(十佛刹)의 티끌 수 같은 세계를 지나면 담복화(薝蔔花) 빛을 띤 나라가 있으니 그곳 부처님의 이름은 위의지(威儀智)이다.
칭양제불공덕경(稱揚諸佛功徳經) : 북방(北方)은 여기 인간 세상과 거리가 육만 불국토(六萬佛刹)에, 이름이 장환락(長歡樂)이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나라에 부처님이 있어 “현최여래(賢最如來)”라 이름한다.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 : 이름이 향등(香燈)인 북방(北方) 세계, 나라가 푸르고 맑으며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다. 무염광당불(無染光幢佛)이 교화하시는 곳이니 지금도 도량수(道塲樹) 아래에서 자유자재하시다.
대관정신주경(大灌頂神咒經) : 북방(北方) 도림찰(道林刹)에 태어나기를 바라는바, 그 땅에 부처님 이름은 “행정진보살(行精進菩薩)”이니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無央數)가 나라를 아름답고 맑게 만드신다(莊嚴). 저곳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소원대로 왕생한다.
황정내경경(黄庭内景經) : 두 신(腎)의 신(神)은 수명 늘이는 일을 주로 한다. 주(注) : 신신(腎神)은 원명(元溟 : 元은 근본, 溟은 깊은 바다나 물을 뜻)으로 자(字)는 육영(育嬰)이니 북방(北方)에 짝하여 속하며, 해 저문 밤(暮夜)을 주도한다.
[育嬰 : “育嬰”, 아기를 기른다는 뜻으로, 道敎에서 아기는 수련으로 생성된 “진원의 기”를 상징하니 신장은 精를 저장하고 원기를 잉태하는 곳이다]
운급칠첨(雲笈七籖)에 제가기법(諸家氣法) : 북방(北方)은 흑색(黒色)이니 이 기운이 들어와 신(腎)으로 통하며(入通於腎) 귀에서 구멍을 열고 몸에서는 뼈가 된다.
노군(老君)이 설명한 오계(五戒) : 살계(煞戒)는 동방(東方)의 나무이다. 생기(生氣)를 받아 만물을 길러 키우는 일(長養)을 숭상하는데 사람이 살(煞)을 범하게 되면 간(肝)은 그 해를 받는다. 도계(盗戒)란 북방(北方)의 물(水)이다. 태음(太隂)의 정(精)은 닫아 갈무리 하는 일(閉藏)을 주로 하는데, 사람이 도둑질하게 되면 신(腎)이 그 재앙을 받는다.
또 태상단경도정은지팔술(太上丹景道精隠地八術) : 그림자조차 숨기고 하늘에서 훨훨 노니는 술법(隠景儛天之術)은 동짓날 자시(子時)를 맞아 방에 들어가 북쪽을 향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검은 기(黒氣)가 겹겹이 서로를 덮으며 북방(北方) 감궁(坎宫) 가운데에서 와 내려, 한 방을 가득 채워 덮고 안팎을 칠흑처럼 어둡게 한다.’라고 하면, 얼마 뒤 검은 기(黒氣)가 변하여 원귀(元龜 : 북방을 상징하는 신령한 짐승 ‘현무’를 상징)로 되어 내 오른쪽 발아래에 있게 된다.
북도(北道)
한서(漢書) 정길전(鄭吉傳) : 길(吉)이 이미 거사(車師) 나라를 깨뜨리고 일축왕(日逐王)에게 항복을 받아내니 그 위엄이 서역을 흔들었다. 마침내 거사(車師) 나라 서북도(西北道)를 한꺼번에 보호(護)하게 되었으니, 그래서 도호(都護)라 이름하였다. 주(注) :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남북(南北) 이도(二道)를 한꺼번에 보호하니, 그래서 이를 일러 도(都)라고 하였다. 도(都)는 클 대(大), 거느릴 총(總)이다.” 하였다.
풍봉세전(馮奉世傳) : 서역(西域) 여러 나라가 새로이 편안하게 모여드니 한(漢)나라가 바야흐로 좋게 대우하여서 그들을 안정시키고자 하여 외국에 사신을 보낼만한 사람을 뽑았다. 전장군(前將軍) 한증(韓増 : ? ~ 기원전 56년)이 봉세(奉世)를 위후사(衛侯使)로 천거하여 신임장(節)을 지니고 대원(大宛)과 그 둘레 여러 나라에서 오신 손님(사신)들을 안전하게 배웅하게 하였다. 이수성(伊修城)에 이르자, 도위(都尉) 송장(宋將)이 말하기를 “사거(莎車) 나라가 이웃 나라들과 함께 공격하여 한(漢)이 앉힌 사거왕(莎車王) 만년(萬年)을 죽이고, 아울러 한(漢)의 사신 해충국(奚充國)을 죽였습니다.” 하였다. 당시 흉노(匈奴)도 군대를 일으켜 거사성(車師城 : Turpan. 천산 산맥 동쪽 끝, 서역 북도의 요충지)을 공격하였지만, 항복시키지 못하고서 떠났는데, 사거(莎車 : 서역 남도의 핵심 거점. 타림 분지(Tarim Basin)의 남서쪽 끝자락,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경계에 있으니, 지금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 莎車縣이다) 나라가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 “북도(北道)에 여러 나라는 벌써 흉노(匈奴)에 속하게 되었다.”라고 떠벌리며 말하였다. 이어 남도(南道) 여러 나라를 쳐 을러대어 더불어 피로써 맹약을 맺고 한나라를 배반하니 선선(鄯善)에서 서쪽 나라들은 모두 한나라와 관계가 끊어져 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도호(都護) 정길(鄭吉)과 교위(校尉) 사마의(司馬意) 들이 모두 북도(北道) 여러 나라 사이에 갇혀 있게 되었다. 봉세(奉世)와 그 부관 엄창(嚴昌)이 꾀하기를 ‘어서 빨리 이를 치지 않는다면 사거(莎車)는 날로 세력이 강해져 제재하기 없게 되어 기어코 서역과 관계를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다.’ 하였다. 그예 신임장(節)으로써 여러 나라 왕을 타일러 알리고서 그 군대들을 동원하니 남북도(南北道) 합하여 1만5천 사람으로 사거(莎車)에 진격하여 쳐서 그 성(城)을 뽑아냈다. 사거왕(莎車王)이 스스로 죽자 그 머리를 전달하여 장안(長安)에 보냈다. 여러 나라는 다 평화를 찾았고 한나라의 위엄이 서역(西域)에 떨쳤다.
[전장군(前將軍) : 전장군은 고대 중요한 군사 관직 이름이다. 그 직무는 더러 수도(京師) 병위(兵衛)를 맡거나 더러 변경에 군대로 주둔한다. 전국시대 때 이미 이 관직이 있었다. 진(秦) 나라에서 이를 따랐으니, 지위는 상경(上卿)에 버금가 금인(金印)에 보랏빛 인끈(紫綬)을 받았다. 무제(武帝)가 서이(西夷)를 정벌할 때, 전장군 후장군 좌장군 우장군을 두었다. 진(秦)과 한(漢)은 그대로 두어서 이들로써 사이(四夷)를 정벌하였다. 뒤에 비록 정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관직은 늘 보존하였다. 한(漢) 말 이후, 장군 이름들이 갈갈이 많아져 소박했던 전, 후, 좌, 우 따위들은 점차 폐기되었다. 삼국(三國) 때, 늘 마련된 고급 장군 위치에 자리하고서 수도(京師) 병위(兵衛)와 변방 둔경(屯警)을 맡았다. 일반적으로 잡호장군(雜號將軍)보다 직급이 높았다. 삼국(三國) 시기에 위국(魏國)은 구품중정(九品中正)을 마련하였는데 품급(品級)은 제 삼품(三品)에 설정하였다. 독자적으로 부(府 : 관청)를 열어 일을 다스렸으니 부하 관리에 장사(長史), 사마(司馬), 종사중랑(從事中郎)들을 두었다. 前將軍,古代重要軍事職官名稱。職務或典京師兵衛,或屯兵邊境。戰國已有。秦因之,位亞上卿,金印、紫綬。武帝征西夷,有前、後、左、右將軍。秦漢因置以征四夷。後雖不征伐,其官常存。漢末以後,將軍名號繁多,名稱素樸之前、後、左、右之類,逐漸廢棄。三國時常設的高級將軍位。負責京師兵衛和邊防屯警。一般高於雜號將軍。三國時期魏國,設九品中正,品級設爲第三品。開府治事,屬官有長史、司馬、從事中郎等。(바이두)]
진탕전(陳湯傳) : 연수(延壽)와 탕(湯)이 상소를 하여 스스로 황제의 명을 가짜로 꾸며 군대를 움직인(矯制) 죄를 스스로 탄핵하고 지금에 군사 상황을 풀어 말하였다. 그리고 이날 군대를 이끌고 길을 나누어 육교(六校)를 갈랐는데 그중 삼교(三校)는 남도(南道)를 따라 총령(蔥嶺)을 넘어서 대원(大宛)을 가로질러 갔고 다른 삼교(三校)는 도호(都護 : 김연수)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온숙국(温宿國)에서 출발하여 북도(北道)를 지나 적곡(赤谷)으로 들어가 오손(烏孫)을 지나 강거(康居)의 경계를 건넜다.
진서(晉書) 부원전(傅元傳) : 마땅히 다시 한 군(郡)을 고평천(髙平川)에 마련하여서 안정(安定 : 감숙성 平涼市) 서주(西州) 도위(都尉)가 즐거이 옮겨올 백성들을 모집하되, 세금을 무겁게 덜어주어(復除 : 復은 군역이나 노동력 동원을 면제하는 것이고 除는 조세를 면제하는 것) 사람들을 채워가며 북도(北道)를 통하게 하고, 그렇게 점차 변경 땅에 한나라 사람들을 채워야 한다.
제서(齊書) 진현달전(陳顯達傳) : 현달(顯達)을 보내 사공참군(司空參軍)을 거느리게 하였다. 한편, 고경조(髙敬祖)가 사포(查浦)에서 회(淮)를 건너 석두북도(石頭北道)를 밟아 승명문(承明門)으로 들어가 동당(東堂)에 주둔하자 궁중이 두려워 놀랐는데 현달이 이르자 그예 조금 진정이 되었다.
진서(陳書) 후주기(後主紀) : 정명(禎明) 3년(589년 : 陳나라가 멸망한 해) 봄 정월 을축삭(乙丑朔 : 乙丑을 朔, 곧 초하루로 삼는다는 뜻이라 함), 수(隋)나라 총관(總管) 하약필(賀若弼)이 북도(北道) 광릉(廣陵 : 江蘇 揚州)에서 경구(京口 : 京江으로도 불리니 양자강 남안에 요충지이다. 지금 강소성 鎭江市)로 건너갔고 총관(總管) 한금호(韓擒虎)는 횡강(横江)에 다다라 채석(采石 : 지금 안휘성에 있는 횡강과 채석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는 전통적인 군사 요충지)을 건너가, 남도(南道)에서 장차 필(弼)의 군대를 만나려 하였다.
북사(北史) 제(齊 : 北齊) 후주기(後主紀) : 무평(武平) 7년(576년) 12월 갑자(甲子), 황태후(皇太后)가 북도(北道)를 따라서 이르러 문무(文武) 일품(一品) 이상을 이끌고 주화문(朱華門)에 이르러 술과 먹거리, 종이와 붓을 내리고서 주(周 : 北周)를 막을 방책을 물었다.
수서(隋書) 고조기(髙祖紀) : 개황(開皇 : 583년) 봄 2월 임신(壬申), 북도(北道)에서 전쟁에 공훈을 세운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御定駢字類編卷一百二十
北京〈宋書文帝紀朕違丨丨二十餘載雖云密邇瞻塗莫從今因四表無塵時和嵗稔復獲拜奉舊塋展罔極之思饗讌故老申追逺之懐固以義兼於桑梓情加於過沛 唐書睿宗紀天寳元年二月丙申改侍中為左相中書令為右相東都為東京北都為丨丨州為郡刺史為太守 又尹元凱傳時有富嘉謨呉少微皆知名嘉謨武功人舉進士長安中累轉晉陽尉少微新安人亦尉晉陽尤相友善有魏谷倚者為太原主簿並負文辭時稱丨丨三傑 金史地理志臨潢府下總管府地名西樓遼為上京國初因稱之天眷元年改為丨丨天徳二年改丨丨為臨潢府路以丨丨路都轉運司為臨潢府路轉運司 又貞元元年以大定府為丨丨元史太祖紀二月穆呼哩攻丨丨金元帥音達琿烏庫哩以城降 又世祖紀秋七月戊辰勅燕京丨丨西〉
〈京真定平陽大名東平益都等都等路宣撫司造羊裘皮帽袴鞾皆以萬計輸開平 小學紺珠唐四京京兆為中京河南為東京太原為丨丨鳯翔為西京又宋四京開封府為東京河南府為西京應天府為南京大名府為丨丨 楊榮皇都大一統賦眷兹丨丨山川炳靈陸雲太尉王公將還京邑詩發軫丨丨振策紫微又大將軍出祖王羊二公詩遺思丨丨結轡臺省 趙冬㬢奉和聖製答張說扈從南出雀鼠谷詩省方西禮設振旅丨丨回 韋應物灃上寄幼遐詩勿復久留燕蹉跎在丨丨 錢起送鮑中丞赴太原軍營詩見南仲下 劉禹錫和樂天洛下醉吟寄太原令狐相公兼見懐長句詩昨來亦有呉趨詠惟見東都與丨丨 周賀送幻羣法師詩丨丨一别後呉楚幾聼砧〉
北國〈詩奄受丨丨因以其伯 史記天官書見南國下又昴畢間為天街其隂隂國陽陽國注孟康曰隂西南坤維河山已丨丨陽河山已南國 南史周盤龍傳魏人素畏盤龍驍名莫不披靡時奉叔已大殺魏軍得出在外盤龍不知乃東西觸擊魏軍莫敢當奉叔見其父久不出復躍馬入陣父子兩騎縈攪數萬人魏軍大敗盤龍父子由是名播丨丨 北史魏紀魏之先出自黄帝軒轅氏黄帝子曰昌意昌意之少子受封丨丨有大鮮卑山因以為號 宋史趙良嗣傳良嗣言頃在丨丨與燕中豪士劉範李奭及族兄柔吉三人結氣同心欲拔幽薊歸朝瀝酒於北極祠下祈天為約俟他日功成即挂冠謝事以表本心初非取功名而徼富貴也 賴陛下威靈今日之事幸而集顧前日之約豈可欺哉願許臣致仕使得買田歸耕〉
北庭〈後漢書班固傳永元初大將軍竇憲出征匈奴以固為中䕶軍與叅議北單于聞漢軍出遣使欵居延塞欲修呼韓邪故事朝見天子請大使憲上遣固行中郎將事將數百騎與虜使俱出居延塞迎之㑹南匈奴掩破丨丨固至私渠海聞虜中亂引還 唐書睿宗紀開元二十年四月甲寅丨丨都䕶劉渙謀反伏誅又突厥傳暾欲谷曰兵千里逺出士殊死鬭鋒不可當也不如躡之邀近而取之距丨丨三百里乃分兵由它道襲拔其城 元史百官志至元十一年初置輝和爾斷事官秩三品十七年改領丨丨都䕶府秩二品置官十二員 李乂奉和幸望春宫送朔方軍大總管張仁亶詩見東道下 杜甫觀兵詩丨丨送壯士貔虎數尤多 又秦州雜詩見西極下 陸游記九月三十日夜半夢詩東閣羣英鳴佩集丨丨大戰㨗旗來 呉師道上京即事詩大駕時廵鎮丨丨皇風萬里暢威靈〉
北牙〈北史長孫晟傳時攝圖與衛王軍遇戰於白道敗走至磧聞阿波懐貳乃掩丨丨盡獲其衆而殺其母阿波還無所歸西奔玷厥 隋書長孫晟傳且攝圖之與阿波兵勢本敵今攝圖日勝為衆所崇阿波不利為國生辱攝圖必當因以罪歸於阿波成其夙計滅丨丨矣〉
北方〈易說卦傳坎者水也正丨丨之卦也勞卦也萬物之所歸也故曰勞乎坎 詩玁狁匪茹整居焦穫侵鎬及方至于涇陽箋鎬也方也皆丨丨地名 禮記王制東方曰寄南方曰象西方曰狄鞮丨丨曰譯 又中庸寛柔以教不報無道南方之强也君子居之衽金革死而不厭丨丨之强也而强者居之疏丨丨沙漠之地其地多隂隂性褊急故人生剛猛恒好鬭爭故以甲鎧為席寢宿於中至死不厭非君子所處而强梁者居之 周禮大宗伯以元璜禮丨丨注禮丨丨以立冬謂黒精之帝而顓頊元冥食焉 又太宰祀五帝疏見南方下 又媒氏凡嫁子娶妻入幣純帛無過五兩疏丨丨水為壬癸 又食醤冬多鹹疏冬多鹹者丨丨水味鹹屬冬冬時調和食鹹亦多于餘味一分故言冬多鹹儀禮士相見禮主人立于西階東薦脯醢介升席自丨丨設折俎祭如賔禮 左傳范山言于楚子曰晉君少不在諸侯丨丨可圖也 又天下之民謂之渾敦疏見南方下 戰國䇿荆宣王問羣臣曰吾聞丨丨之畏昭奚䘏也果誠何如羣臣莫對江乙對曰今王之地方五千里帶甲百萬而専屬之昭奚䘏故丨丨之畏奚䘏也其實畏王之甲兵也 史記五帝本紀申命和叔居丨丨曰幽都便在伏物 又天官書獄漢星出正北丨丨之野 又律書廣莫風居丨丨廣莫者言陽氣在下隂莫陽廣大也故曰廣莫 漢書律歴志太隂者丨丨北伏也陽氣伏於下於時為冬 又魏相傳丨丨之神顓頊乗坎執權司冬 又翼奉傳丨丨之情好也好行貪狼申子主之注孟康曰丨丨水水生於申盛於子水性觸地而行觸物而潤多所好故多好則貪而無厭故為貪狼也 又張騫傳天子欣欣㠯騫言為然廼令因蜀犍為發閒使四道並出出駹出莋出徙邛出僰皆各行一二千里其丨丨閉氐莋南方閉嶲昆 又李陵傳李緒本漢塞外都尉居奚侯城匈奴攻之緒降而單于客遇緒常坐陵上陵痛其家㠯李緒而誅使人刺殺緒大閼氏欲殺陵單于匿之丨丨大閼氏死乃還 後漢書杜茂傳郭涼字公文右北平人也身長八尺氣力壯盛雖武將然通經書多智略尤曉邊事有名丨丨 晉書天文志辰星曰丨丨冬水智也聼也 宋書厯志以子為辰首位在正北爻應初九斗氣之端虚為丨丨列宿之中元氣肇初宜在此次前儒虞喜備論其義今厯上元日度發自虚一 北史百濟國傳見西方下 金史儀衛志丨丨神旗一三人力士并紫排襴旗各一 莊子天運篇孔子行年五十有一而不聞道乃南之沛見老聃老聃曰子來乎吾聞子丨丨之賢者也子亦得道乎 又風起丨丨一西一東有上徬徨孰嘘吸是 呂覽丨丨曰元天其星婺女虚危營室 春秋繁露水居丨丨而主冬氣 易林丨丨多棗橘柚所聚荷囊載香盈我筐筥 周髀算經東西相當正丨丨注出入相當不覆三辰為丨丨 神異經見中男下 扁鵲子午經丨丨壬癸水主人腎膀胱骨髓精志 又南方為晝丨丨為夜 風俗通丨丨恒山恒者常也萬物伏藏於丨丨有常也 華嚴經如來名號品丨丨過十佛刹微塵數世界有世界名薝蔔花色佛號威儀智 稱揚諸佛功徳經丨丨去此六萬佛刹有世界名長歡樂其國有佛號曰賢最如來 佛說佛名經丨丨世界名香燈國土清浄甚嚴飾無染光幢佛所化現今自在道塲樹 大灌頂神咒經願生丨丨道林刹者其佛號曰行精進菩薩無央數國土莊嚴願生彼者隨願往生 黄庭内景經兩腎之神主延壽注腎神元溟字育嬰配屬丨丨主暮夜 雲笈七籖諸家氣法丨丨黒色入通於腎開竅於耳在形為骨 又老君說五戒煞戒者東方木也受生氣尚於長養而人犯煞則肝受其害盗戒者丨丨水也太隂之精主於閉藏而人為盗則腎受其殃 又太上丹景道精隠地八術隠景儛天之術當以冬至之日子時入室北向内思黒氣疊沓相覆從丨丨坎宫中來下覆滿一室内外晻冥良久黒氣化為元龜在我右足下〉
北道〈史記郭解傳見東道下 漢書鄭吉傳吉既破車師䧏日逐威震西域遂并護車師㠯西丨丨故號都護注師古曰並護南北二道故謂之都都猶大也總也 又馮奉世傳西域諸國新輯漢方善遇欲㠯安之選可使外國者前將軍増舉奉世㠯衛侯使持節送大宛諸國客至伊修城都尉宋將言莎車與旁國共攻殺漢所置莎車王萬年并殺漢使者奚充國時匈奴又發兵攻車師城不能下而去莎車遣使揚言丨丨諸國已屬匈奴矣於是攻劫南道與歃盟畔漢從鄯善㠯西皆絶不通都護鄭吉校尉司馬意皆在丨丨諸國間奉世與其副嚴昌計㠯為不亟擊之則莎車日彊其勢難制必危西域遂㠯節諭告諸國王因發其兵南北道合萬五千人進擊莎車攻拔其城莎車王自殺傳其首詣長安諸國悉平威振西域 又陳湯傳延壽湯上疏自劾奏矯制陳言兵狀即日引軍分行别為六校其三校從南道踰蔥嶺徑大宛其三校都護自將發温宿國從丨丨入赤谷過烏孫涉康居界 又西域傳見南道下後漢書耿弇傳見南首下 晉書傅元傳宜更置一郡於髙平川因安定西州都尉募樂徙民重其復除以充之以通丨丨漸以實邊 齊書陳顯達傳遣顯達率司空參軍髙敬祖自查浦渡淮縁石頭丨丨入承明門屯東堂宫中恐動得顯達至乃稍定 陳書後主紀禎明三年春正月乙丑朔隋總管賀若弼自丨丨廣陵濟京口總管韓擒虎趣横江濟采石自南道將㑹弼軍 北史齊後主紀武平七年十二月甲子皇太后從丨丨至引文武一品已上入朱華門賜酒食及紙筆問以禦周之方略 隋書髙祖紀開皇三年春二月壬申宴丨丨勲人 唐書顔杲卿傳見西鋒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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