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백 살이나 산 천지 용왕은 늙어서 왕위를 아들한테 물려줘야 하겠는데 용맹하기 그지없는 오형제 중에 구경 누구에게 물려줘야 할지 용단이 서지 않았다.
맏아들한테 물려 주자니 그 아래 동생들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고, 막내한테 물려주자니 형들이 가만있지 않을거고 그 어간의 둘째, 셋째, 넷째한테 물려주자니 맏이와 막내가 불복할 건 번연한 일이라 용왕은 고심한 끝에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용왕은 우선 큰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얘야, 이 천지에 해마다 물이 넘쳐나 온 땅에 재난을 들씌우는 걸 너도 알렷다. 허니 너는 재간을 피워 물이 흐르게끔 물곬을 틔워 보거라.》
맏이는 신심 가득히 대답하고 용궁에서 물러나왔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선 달문을 뚫어 폭포를 만든 뒤 북쪽으로 뻗어간 산발을 따라 가다가 산이 막히면 쪼개고, 벌판이 지나면 가르고, 끝까지 강물을 모아 크나큰 강물을 만들었다.
맏이가 의기양양하여 돌아오자 용왕은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그 큰 강물을 구경시켰다. 애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그들은 누구나 용왕의 자리를 넘보면서도 내색을 않고 암암리에 다투는 것이었다.
드디어 용왕의 명을 받은 둘째가 물곬을 틔우는 일에 달라붙었다. 그는 서남쪽으로 뻗어간 산맥을 따라가다가 강과 내를 만나면 품으로 불러들이고 산천경개가 아름다우면 쪼개지 않고 옆으로 감돌아 바다로 흘러들게 하였다.
재빨리 일을 끝낸 둘째가 돌아오자 용왕은 서남쪽 수로를 돌아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셋째를 불렀다.
그런데 동쪽으로 갔다던 셋째는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이놈 셋째가 무슨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맏이와 둘째가 틔워놓은 물곬로 흐르는 물은 많지 않은데 찌는(물이 빠져나가는?) 물이 이다지도 빠른 걸 보니 필시 셋째가 어디서 물곬을 틔워놓은 게 분명해.)
용왕의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원래 셋째 아들은 두 형이 왕위를 다투는 걸 보고 두 형보다 더 솜씨를 피우느라 부왕의 영이 내리기 전에 남몰래 동쪽으로 통하는 물곬을 틔워 놓았던 것이다.
《음, 알만하다. 셋째가 도망치듯 동쪽으로 가서 지하의 물줄기를 터쳐 놓았다니 그 저의를 알구말구. 인젠 넷째와 다섯째가 그 어디에다 물곬을 틔우겠는지 모르겠으나 모두 그만두어라. 여러 곳에 숱한 물곬을 틔워놓으면 우리가 여기서 살아갈 수 없단다. 알겠느냐? 누가 영을 듣지 않으면 엄한 벌을 내릴테다.》
용왕이 영을 내리자 그의 다섯 아들은 더는 물곬을 틔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더 넘쳐나지도 줄지도 않은 천지에는 세 갈래 물곬이 생기었다. 첫 물곬은 지금의 송화강이고 두 번째 물곬은 지금의 압록강이다. 세 번째 물곬은 셋째가 가만히 용궁에서 도망쳐 나와 지하의 물줄기를 몰래 터쳐놓았다고 ‘도망강’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런데 후에 강 양안에 사는 본이 같지 않은 두 강씨네 짓는 콩 농사가 아주 잘 되었다. 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콩을 타작하려고 서둘렀으나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에 접어들어도 일이 언제 끝날지 몰랐다. 하여 그들은 삯일군들을 청해 들였다. 그러자 타작마당이 턱없이 모자라는 게 큰 흠이었다. 때는 마침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철인지라 그들은 아예 타작마당을 두만강 빙판 우에 옮겼다. 숱한 도리깨가 겨끔내기로 내리치는 바람에 콩알은 튕겨서 두만강을 누렇게 덮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강을 도망강이라 하지 않고 콩 두(豆)자에 넘칠 만(滿)자를 써서 두만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꾼 : 김중길 곳: 훈춘시 시간: 1993년 7월
-두만강 압록강유역 지명전설 중에서
'아라리 고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압록강의 유래 (0) | 2023.08.07 |
---|---|
고시레 – 전라북도 설화 중에서(한국 종합민속 보고서 1969년) (0) | 2023.05.05 |
한국의 탄생 - 전라남도 설화에서(한국 민속 종합 보고서 1969년) (0) | 2023.05.01 |
일식과 월식 – 한국 민담 사전 중에서(문화출판공사) (0) | 2023.04.24 |
조수(潮水)의 유래-한국의 민담에서(임동권. 서문문고) (0) | 202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