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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신라의 지명 1 〈고려사(高麗史) 기준〉

by 쥐눈이 2023. 7. 19.

경상도(慶尙道)

경상도는 삼한(三韓) 시대에 진한(辰韓)이고 삼국(三國) 시대에 신라(新羅)이다. 고려 태조에 이르러 신라, 백제를 아우르고 동남도 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경주(慶州)에 사()를 두었다.

성종 14(955) 이 땅을 나누어 열 군데 도()를 만들었으니 상주(尙州)가 관리하는 곳은 영남도(嶺南道)라 하고 경주(慶州)와 금주(金州 경상남도 김해시)가 관리하는 곳은 영동도(嶺東道)라 하고 진주가 관리하는 곳은 산남도(山南道)라 하였다.

예종 원년(1106)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일컬었다. 명종 원년(1171)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협주도(晉陜州道) 둘로 나누었다. 16년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으로 바꾸었다.

고종 46(1259)에 화() (), (), () 네 주()를 몽고(蒙古)가 몰수하고 도의 평해(平海), 덕원(德原), 영덕(盈德), 송생(松生)을 갈라 내 명주도(溟州道)에 예속시켰다.

충렬왕 16(1290) 다시 덕원(德原), 영덕(盈德), 송생(松生)을 동계(東界)로 예속시켰다. 충숙왕 원년(1314) 경상도(경상도)로 정하였다. 거느린 경()이 하나요 목()이 둘이요 부()가 셋이요 군()이 서른이요 현()이 아흔둘이다.

慶尙道在三韓爲辰韓在三國爲新羅及太祖幷新羅百濟置東南道都部署使置司慶州成宗十四年分境內爲十道以尙州所管爲嶺南道慶州金州所管爲嶺東道晉州所管爲山南道睿宗元年稱慶尙晉州道明宗元年分爲慶尙晉陜州兩道十六年爲慶尙州道神宗七年爲尙晉安東道其後又改爲慶尙晉安道高宗四十六年以和長四州沒於蒙古割道之平海德原盈德松生隷溟州道忠烈王十六年又以德原盈德松生移隷東界忠肅王元年定爲慶尙道領京一牧二府三郡三十縣九十二

동경유수관경주(東京留守官慶州 경주)

동경유수관경주(東京留守官慶州) : 신라의 옛 도읍지이다. 시조 혁거세왕(赫居世王)이 나라를 열고 도읍을 건설하여 나라 이름을 서야벌(徐耶伐)이라고 하였다. 더러는 사라(斯羅)라고도 일컬었고,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가 뒤에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탈해왕(脫解王) 9년 시림(始林)에 괴이한 닭이 있어 이름을 계림(雞林)이라 고치고 인하여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기림왕(基臨王) 10년에 다시 신라(新羅)라고 불렀다.

고려 태조 18(935) 경순왕 김부(金傅)가 와서 항복하니 국()을 제거하고 경주(慶州)라 하였다. 23년 대도독부(大都督府)로 승격시키고 그 주() 6()의 이름을 고쳐서 양부(梁部)를 중흥부(中興部)라 하고 사량(沙梁)을 남산부(南山部)라 하고 본피(本彼)를 통선부(通仙部)라 하고 습비(習比)를 임천부(臨川部)라 하고 한지(漢祗)를 가덕부(加德部)라 하고 모량(牟梁)을 장복부(長福部)라 하였다.

성종 6(987) 동경유수(東京留守)로 바꾸었고 14년 유수사(留守使)라 일컫고 영동도(嶺東道)에 소속시켰다. 현종 3(1012) 유수관(留守官)을 폐하고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로 강등시켰다. 5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바꾸었다. 21년 다시 동경유수(東京留守)로 하였다. 당시 예방(銳方)이 올린 삼한회토기(三韓會土記 풍수에 관한 책일 것이라 함)에 고려 3()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이 내용 때문에 다시 동경(東京)을 설치하였다.

신종 5(1202) 동경에서 야별초(夜別抄)가 난을 일으켜 주군(州郡)을 공격하여 을러대니 군사를 보내어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7년 동경 사람이 신라가 다시 번성한다라는 말을 만들어 상주도(尙州道). 청주도(淸州道), 충주도(忠州道), 원주도(原州道)에 선동 격문을 돌리고 반란을 계획하였다.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시켰다. 동경(東京)의 관할이었던 주부(州府), 군현(郡縣), 향부곡(鄕部曲)을 빼앗아 안동(安東)과 상주(尙州)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 6(1219) 다시 유수(留守)로 만들었다. 충렬왕 34(1308) 계림부(雞林府)라고 고쳐 일컬었다.

신우(辛禑) 2(1376) 계림부와 금주(金州)가 안렴사(按廉使 道의 장관)의 영문(營門)인 사영(使營)을 두고서 다투었다. 도평의사(都評議使)가 아뢰기를 금주(金州)의 난적이 안렴사를 살해하였고 또 영()을 설치한 동안 계림(雞林)만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바닷가가 가까워 왜적이 걱정되니 부디 계림으로 옮겨 설치하소서!’ 하였다. 신우가 이를 따랐다. 성종이 정한 낙랑(樂浪)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혁거세(赫居世)의 왕릉과 김유신(金庾信)의 묘가 있다. 또 첨성대〈신라 선덕 여왕이 쌓게 한 것이다.〉와 봉덕사(奉德寺)가 있다. 〈신라 혜공왕이 큰 종을 주조하게 하였는데 구리쇠(銅) 무게가 12만 근(斤)이라서 이를 치면 그 소리가 백여 리에까지 들린다. 소속 군(郡)이 넷이고 현(縣)이 열이다. 거느린 군(郡)은 다섯이다. 〈방어군(防禦郡)이 넷에 지사군(知事郡)이 하나이다.〉

[金州賊殺按廉且置營歲月 : 세월(歲月) : 짧은 시간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사기 “...그대가 비록 수십만의 군사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歲月)에 그들을 깨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史記·酈生陸賈列傳:...足下雖遣數十萬師,未可以歲月破也]

東京留守官慶州本新羅古都始祖赫居世王開國建都國號徐耶伐或稱斯羅或稱斯盧後稱新羅脫解王九年始林有雞怪更名雞林因以爲國號基臨王十年復號新羅太祖十八年敬順王金傅來降國除爲慶州二十三年陞爲大都督府改其州六部名梁部爲中興部沙梁爲南山部本彼爲通仙部習比爲臨川部漢祗爲加德部牟梁爲長福部成宗六年改爲東京留守十四年稱留守使屬嶺東道顯宗三年廢留守官降爲慶州防禦使五年改安東大都護府二十一年復爲東京留守時銳方所上三韓會土記有高麗三京之文故復置之神宗五年東京夜別抄作亂攻劫州郡遣師討平之七年以東京人造新羅復盛之言傳檄尙原州道謀亂降知慶州事奪管內州府郡縣鄕部曲分隷安東尙州高宗六年復爲留守忠烈王三十四年改稱雞林府辛禑二年府與金州爭使營都評議使奏金州賊殺按廉且置營歲月不及雞林况近海濱倭賊可畏乞移置雞林禑從之別號樂浪。〈成廟所定。〉有赫居世王陵金庾信墓又有瞻星臺、〈新羅善德女主所築。〉奉德寺。〈新羅惠恭王鑄大鍾重銅一十二萬斤撞之聲聞百餘里。〉屬郡四縣十領郡五。〈防禦郡四知事郡一。〉

흥해군(興海郡 포항시 흥해읍) : 본래 신라의 퇴화군(退火郡)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의창군(義昌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興海郡本新羅退火郡景德王改爲義昌郡高麗初改今名

장산군(章山郡 경상북도 경산) : 본래 압량소국(押梁小國) 압독(押督)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지미왕(祗味王) 때 이곳을 취하여(압량소국이 자체 부족국가였던 듯) ()을 설치하였다. 경덕왕 때 장산군(獐山郡)이라 고치고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章山郡本押梁小國,〈一云押督。〉新羅祗味王取之置郡景德王改爲獐山郡高麗初更今名

수성군(壽城郡 대구광역시) : 신라의 위화군(喟火郡) 상촌창군(上村昌郡)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수창군(壽昌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壽城郡本新羅喟火郡,〈一云上村昌郡。〉景德王改爲壽昌郡高麗初更今名

영주(永州 경상북도 영천) : 고려 초 임고군(臨皐郡), 도동(道同)과 임천(臨川) 두 현을 합하여 이 주()를 두었다. 고울부(高鬱府)라고도 한다.

성종 14년 영주자사(永州刺史)를 만들었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하였다.

명종 2년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지주사(知州事)로 승격시켰다. 성종이 정한 익양(益陽)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영양(永陽)이라는 이름도 있다. 고려 말에 본 주의 이지은소(梨旨銀所)를 현()으로 승격시켰다.

永州高麗初合新羅臨皐郡道同臨川二縣置之。〈一云高鬱府。〉成宗十四年爲永州刺史顯宗九年來屬明宗二年置監務後陞爲知州事別號益陽,〈成廟所定。〉又號永陽。〈麗季陞本州梨旨銀所爲縣。〉

안강현(安康縣 경주시 안강읍) : 신라의 비화현(比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공양왕 2년 감무(監務)를 두었다. 신라 파사(婆娑())이 음즙벌국(音汁伐國)을 취하여 이곳에 음즙화현(音汁火縣)을 두었고 뒤에 현에 합쳐 소속시켰다.

安康縣本新羅比火縣景德王改今名恭讓王二年置監務。〈新羅婆娑[原本]取音汁伐國置音汁火縣後合屬於縣

신령현(新寧縣 영천시 화산면) : 사정화현(史丁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新寧縣本新羅史丁火縣景德王改今名

자인현(慈仁縣 경산시 자인면) : 본래 노사화현(奴斯火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慈仁縣本新羅奴斯火縣景德王改今名

청하현(淸河縣 포항시 청하면) : 본래 고구려의 아혜현(阿兮縣)

신라 경덕왕 때 해아(海阿)로 이름을 고치고 유린군(有隣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淸河縣本高句麗阿兮縣新羅景德王改名海阿爲有隣郡領縣高麗初更今名

연일현(延日縣 포항시 연일읍) : 본래 신라의 근오지현(斤烏支縣) 오량우(烏良友)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임정(臨汀)으로 이름을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延日縣本新羅斤烏支縣,〈一作烏良友。〉景德王改名臨汀爲義昌郡領縣高麗初更今名

해안현(解顔縣 대구광역시) : 본래 라치성화현(羅雉省火縣),〈미리(美里)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解顔縣本新羅雉省火縣,〈一云美里。〉景德王改今名

신광현(神光縣 포항시 북구 신광면) : 본래 동잉음현(東仍音縣) 신을(神乙)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神光縣本新羅東仍音縣,〈一云神乙。〉景德王改今名

기계현(杞溪縣 포항시 기계면) : 본래 신라의 모혜현(芼兮縣) 화계(化雞)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杞溪縣本新羅芼兮縣,〈一云化雞。〉景德王改今名

장기현(長鬐縣 포항시 장기현) : 본래 신라의 지답현(只沓縣)

경덕왕 때 기립(鬐立)이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長鬐縣本新羅只沓縣景德王改名鬐立爲義昌郡領縣高麗更今名.

울주(蔚州 울산)

울주(蔚州)는 본래 굴아화촌(屈阿火村)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이를 취하여 현을 설치하였다. 경덕왕 때 하곡(河曲)이란 이름으로 고치고하서(河西)라고도 하였다.임관군(臨關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신라 경덕왕 때 우화현(于火縣 울산)으로 고쳐 우풍현(虞風縣 경남 양산, 울산시 울주)을 만들고 율포현(栗浦縣)을 동진현(東津縣 울산시 북동구)으로 만들어 모두 합쳐 울주에 소속시켰었다. 고려 태조 때 군() 사람 박윤웅(朴允雄)이 공이 있어 하곡(河曲), 동진(東津), 우풍(虞風)을 한데 싸서 흥례부(興禮府)를 두었다. 뒤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시키고 또다시 지울주사(知蔚州事)로 고쳤다. 어떤 사람은 신라 말에 학이 와서 울어댄 일이 있어서 신학성(神鶴城)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계변성(戒邊城)이라고도 하고 개지변(皆知邊)이라고도 하며 화성군(火城郡)이라고도 한다.학성(鶴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蔚州本屈阿火村新羅婆娑王取之置縣景德王改名河曲,〈一作河西。〉爲臨關郡領縣高麗初更今名。〈景德王改于火縣爲虞風縣栗浦縣爲東津縣皆合屬. 太祖時郡人朴允雄有大功乃倂河曲東津虞風等縣置興禮府後降爲恭化縣又改知蔚州事一云羅季有鶴來鳴故稱神鶴城一云戒邊城一云皆知邊一云火城郡。〉別號鶴城

동래현(東萊縣 부산 동래구) : 본래 신라의 거칠산군(居柒山郡)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으로 바꾸었다.

東萊縣本新羅居柒山郡景德王改爲東萊郡.

헌양현(巘陽縣 울산 울주군 언양읍) :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巘陽縣本新羅居知火縣, 景德王改今名.

예주(禮州 경상북도 영덕)

예주(禮州) :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

신라 경덕왕 때 유린군(有隣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禮州本高句麗于尸郡新羅景德王改爲有隣郡高麗初更今名

보성부(甫城府 경북 청송군 진보면 파천군 일대) : 재암성(載岩城)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칠파화현(柒巴火縣)을 고쳐 진보현(眞寶縣)으로 만들었고, 한편 고구려의 조람현(助攬縣)을 고쳐 진안현(眞寶縣)으로 만들었다.

甫城府一云載岩城。〉新羅景德王改柒巴火縣爲眞寶縣又改高句麗助攬縣爲眞安縣

영양군(()陽郡 또는 연양군. 경상북도 영양군) : 본래 고은현(古隱縣)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英陽郡英一作延。〉本古隱縣後改今名

평해군(平海郡 경상북도 울진군) :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근을오(斤乙於)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平海郡本高句麗斤乙於高麗初改今名

영덕군(盈德郡 경상북도 영덕군) : 고구려의 야시홀군(也尸忽郡)

신라가 야성군(野城郡)으로 고치고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盈德郡本高句麗也尸忽郡新羅改爲野城郡高麗初更今名.

청부현(靑鳬縣 경상북도 청송군) : 본래 고구려의 청사현(靑巳縣)

신라 때 적선(積善)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야성군(野城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부이현(鳬伊縣)이라 하고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바꾸었다.

靑鳬縣本高句麗靑巳縣新羅改名積善爲野城郡領縣高麗初爲鳬伊縣又改爲雲鳳縣

松生縣

송생현(松生縣 경북 청송군 청송읍과 주왕산 일대) : 고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쳤다. 인종 21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松生縣顯宗九年來屬仁宗二十一年置監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