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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신라의 지명 4 〈고려사(高麗史) 기준〉

by 쥐눈이 2023. 7. 26.

상주목(尙州牧)

상주목(尙州牧) : 본래 사벌국(沙伐國)

신라 첨해왕(沾解王) 때 이곳을 취하여 주()를 만들었다. 법흥왕 때 상주(上州)라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진흥왕 때 주를 폐하고서 상락군(上洛郡)을 만들었다. 신문왕 때 주()를 만들었다. 경덕왕 때 상주(尙州)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라 하였다.

고려 태조 23(940) 다시 고쳐 상주(尙州)라 하고 그 뒤에 다시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바꾸었다. 성종이 정한 상락(上洛)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또한 상산(商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담에 전해지기를 () 북쪽 임하촌(林下村)의 태() 성을 가진 사람이 적을 잡는 데 공이 있어서 그 촌()을 승격시켜 영순현(永順縣 경북 문경시 영순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낙동강이 있고 또한, 큰 뚝이 있으니 공검(恭儉)이라 이름한다.명종 25년 사록(司錄) 최정빈(崔正份)이 옛터를 따라서 뚝을 쌓았다.

尙州牧本沙伐國新羅沾解王取以爲州法興王改爲上州置軍主眞興王廢州爲上洛郡神文王復置州景德王改爲尙州惠恭王復爲沙伐州太祖二十三年復改爲尙州其後又改爲安東都督府別號上洛,〈成廟所定。〉又號商山。〈諺傳州北面林下村人姓太者捕賊有功陞其村爲永順縣。〉有洛東江又有大堤名曰恭儉。〈明宗二十五年司錄崔正份因舊址而築之。〉

문경군(聞慶郡) : 본래 신라의 관문현(冠文縣) 곤현(冠縣)이라고도 하고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관산(冠山)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고령군(古寧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바꾸었다. 현종 9(1018) 다른 곳과 합쳤다.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의 북쪽에 주흘산(主屹山)이 있다.

험하게 막고 있는 곳에 셋이니 현() 서쪽에 있는 초점(草岾)이요 역시 현 서쪽에 있는 이화현(伊火縣)이요 현 남쪽에 있는 곶갑천(串岬遷)이다.

聞慶郡本新羅冠文縣,〈一云冠縣一云高思曷伊城。〉景德王改名冠山爲古寧郡領縣高麗初改爲聞喜郡顯宗九年來屬後更今名。〈縣北有主屹山。〉險阻處三草岾、〈在縣西。〉伊火縣、〈在縣西。〉串岬遷。〈在縣南。〉

용궁군(龍宮郡 경상북도 예천군) : 본래 신라의 라축산(羅竺山)원산(園山)이라고도 하였다.

현종 3(1012)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다른 곳과 합쳤다. 하풍진(河風津)이 있다.

龍宮郡本新羅竺山,〈一云園山。〉顯宗三年改今名來屬有河風津

개령군(開寧郡 경북 김천시와 구미시 일부) : 본래 감문소국(甘文小國)

신라가 이 땅을 취하였다. 진흥왕 때 군주(軍主)를 두고 청주(靑州)라 하였다. 진평왕 때 주를 폐하였다. 문무왕 때 감문군(甘文郡)을 만들었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開寧郡本甘文小國新羅取之眞興王置軍主爲靑州眞平王廢州文武王爲甘文郡景德王改今名

보령군(報令郡 충청북도 보은군) : 본래 신라의 삼년산군(三年山郡)

경덕왕 때 삼년군(三年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 보령군(保齡郡)이라 바꾸었다. 뒤에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다가 지금 이름이 되었다.

속리산(俗離山)이 있다. 신라 때 속리악(俗離岳)이라 일컫고 중간 크기의 제사를 올렸다.

報令郡本新羅三年山郡景德王改爲三年郡高麗初改保齡郡。〈後轉而爲今名。〉有俗離山。〈新羅時稱俗離岳爲中祀。〉

함창군(咸昌郡 상주시 함창읍) : 본래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

신라에서 이를 취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을 만들었다. 고릉군(古陵郡)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고령군(古寧郡)이라 고쳤다. 고려 광종 15(964) 함령군(咸寧郡)으로 만들었다. 현종 9(1018) 다른 곳과 합쳤고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咸昌郡本古寧伽倻國新羅取之爲古冬攬郡,〈一云古陵郡。〉景德王改爲古寧郡光宗十五年爲咸寧郡顯宗九年來屬後更今名

영동군(永同郡 충청북도 영동군) : 본래 신라의 길동군(吉同郡)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永同郡本新羅吉同郡景德王改今名

청산현(靑山縣 옥천군 청산면) : 본래 신라의 굴산현(屈山縣)돌산(堗山)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기산(耆山)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삼년군(三年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다른 곳과 합쳤다.

靑山縣本新羅屈山縣,〈一云堗山。〉景德王改名耆山爲三年郡領縣高麗初更今名來屬

산양현(山陽縣 경북 문경시 산양면 산북면 일대) : 본래 신라의 근품현(近品()또는 근암현)

경덕왕 때 가유(嘉猷)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예천군(醴泉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山陽縣本新羅近品縣,〈一作巖。〉景德王改名嘉猷爲醴泉郡領縣高麗初更今名

화령군(化寧郡 경북 상주시 화동면 화서면 화남면 화북면 일대) : 본래 신라의 답달비군(答達匕郡) 답달(沓達)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화령군(化寧郡)이라 고쳤고 고려 초에 그대로 따랐다. 뒤에 현을 만들어 합쳤다.

化寧郡本新羅答達匕郡,〈一云沓達。〉景德王改爲化寧郡高麗初因之後爲縣來屬

공성현(功城縣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 본래 신라의 대병부곡(大幷部曲)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功城縣本新羅大幷部曲高麗初改今名

단밀현(()密縣 경상북도 의성) : 본래 신라의 무동미지현(武冬彌知縣)갈동미지(曷冬彌知)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문소군(聞韶郡 경북 의성)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고 고려 초에 그대로 따랐다.

單密縣一作丹。〉本新羅武冬彌知縣,〈一云曷冬彌知。〉景德王改今名,爲聞韶郡領縣高麗初因之

비옥현(比屋縣 경북 의성군 비안면) : 본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 병옥(幷屋)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比屋縣本新羅阿火屋縣,〈一云幷屋。〉景德王改今名

안정현(安定()경북 의성) : 본래 신라의 아시혜현(阿尸兮縣) 아을혜(阿乙兮)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안현(安賢)으로 고치고 문소군(聞韶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安定縣一作貞。〉本新羅阿尸兮縣,〈一云阿乙兮。〉景德王改名安賢爲聞韶郡領縣高麗初更今名

중모현(中牟縣 경북 상주시 모동면 모서면 일대) : 신라의 도량현(刀良縣)

경덕왕 때 도안(道安)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화령군(化寧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中牟縣本新羅刀良縣景德王改名道安爲化寧郡領縣高麗初更今名

호계현(虎溪縣 경상북도 문경시) : 본래 신라의 호측현(虎側縣) 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虎溪縣本新羅虎側縣,〈一云拜山城。〉景德王改今名

어모현(禦侮縣 김천시 어모면) : 본래 신라의 금물현(今勿縣) 음달(陰達)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禦侮縣本新羅今勿縣,〈一云陰達。〉景德王改今名

다인현(多仁縣 경북 의성군 다인면) : 본래 신라의 달이현(達已縣) 더러 다기(多已)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인양(仁陽)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多仁縣本新羅達已縣,〈或云多已。〉景德王改今名. 別號仁陽

청리현(靑理縣 경북 상주시 청리면) : 본래 신라의 음리화현(音里火縣)

신라 경덕왕 때 청효현(靑驍縣)이라 고치고 다른 곳과 합쳤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靑理縣本新羅音里火縣景德王改爲靑驍縣來屬高麗更今名

加恩縣本新羅加害縣景德王改名嘉善爲古寧郡領縣高麗初更今名

일선현(一善縣 경북 구미시 선산읍) : 본래 신라의 일선군(一善郡)

신라 진평왕 때 주()로 승격시키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신문왕 때 주를 폐하였다가 경덕왕 때 숭선군(嵩善郡)이라 고쳤다. 고려 인종 21(1143)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성종이 지은 화의(和義)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금오산(金烏山)이 있다.

一善縣本新羅一善郡眞平王陞爲州置軍主神文王廢州景德王改爲嵩善郡仁宗二十一年改今名別號和義。〈成廟所定。〉有金烏山

군위현(軍威縣 경상북도 군위군) : 본래 신라의 노동멱현(奴同覓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軍威縣本新羅奴同覓縣景德王改今名.

효령현(孝靈縣 경상북도 군위군) : 본래 신라의 모혜현(芼兮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孝靈縣本新羅芼兮縣景德王改今名.

부계현(缶溪縣 경북 군위군 부계면) :

고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쳤다가 뒤에 선주(善州 경북 구미)에 붙였다. 부림(缶林)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缶溪縣顯宗九年來屬後移屬善州別號缶林

경산부(京山府 경북 성주군)

경산부(京山府) : 본래 신라의 본피현(本彼縣)

신라 경덕왕 때 신안(新安)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성산군(星山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뒤에 벽진군(碧珍郡)으로 바꾸었다. 고려 태조 23(940)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경종 6(981)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시켰다. 성종 14(995) 주도단련사(州都團練使)라 일컬었다. 현종 3(1012) 단련사를 폐하였다. 9년 지경산부사(知京山府事)로 고쳤다. 충렬왕 21(1295)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시켰다. 34년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시켰다. 충선왕 2(1310) 여러 목()을 줄일 때 경산부(京山府)로 강등시켰다. 가야산(伽倻山)이 있다. 소속 군()이 하나요 현()이 열넷이다.

京山府本新羅本彼縣景德王改名新安爲星山郡領縣後改爲碧珍郡太祖二十三年更今名景宗六年降爲廣平郡成宗十四年稱岱州都團練使顯宗三年廢團練使九年改知京山府事忠烈王二十一年陞爲興安都護府三十四年又陞爲星州牧忠宣王二年汰諸牧降爲京山府有伽倻山屬郡一縣十四

고령군(高靈郡) :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이다.

시조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부터하여서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모두 16세대 520년이다. 신라 진흥왕이 이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伽倻郡)으로 만들었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高靈郡本大伽倻國自始祖伊珍阿鼓王,〈一云內珍朱智。〉至道設智王凡十六世五百二十年新羅眞興王滅之以其地爲大伽倻郡景德王改今名

약목현(若木縣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 본래 신라의 대목현(大木縣) 칠촌(七村)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계자(谿子)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성산군(星山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다른 곳과 합쳤다.

若木縣本新羅大木縣,〈一云七村。〉景德王改名谿子爲星山郡領縣高麗更今名來屬

인동현(仁同縣 경북 구미시 인동동) : 고려 현종 9년 다른 곳에 합쳤다. 공양왕 2(1390) 감무(監務)를 두고서 약목현(若木縣)을 이곳에 붙였다.

삼국사기에 성산군(星山郡 성주군) 영내의 수동현(壽同縣)은 본래 신라의 사동화현(斯同火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었었는데 그 이름은 지금 알려지지 않는다.” 하였다. 지금 이 지역의 강역과 영토를 살펴보자면 아마도 수동(壽同)을 인동(仁同)이라 고친 것이 아닌가 한다.

仁同縣顯宗九年來屬恭讓王二年置監務以若木縣屬之。〈《三國史記:「星山郡領內壽同縣本新羅斯同火縣景德王改名今未詳」。今以境土考之疑壽同改爲仁同也。〉

지례현(知禮縣 경상북도 김천) :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

신라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구성(龜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知禮縣本新羅知品川縣景德王改今名別號龜城

가리현(加利縣 경상북도 성주) : 본래 신라의 일리군(一利郡)

경덕왕 때 성산군(星山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기성(岐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加利縣本新羅一利郡景德王改爲星山郡高麗初更今名別號岐城

팔거현(八莒縣 대구시 북구 칠곡출장소) : 본래 신라의 팔거리현(八居里縣) 북치장리(北恥長里)라고도 하고 인리(仁里)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팔리(八里)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수창군(壽昌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팔거(八居)로 바꾸었다. 뒤에 거()는 그 소리가 시대를 거치며 거()로 되었다.칠곡(七谷)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八莒縣本新羅八居里縣,〈一云北恥長里一云仁里。〉景德王改名八里爲壽昌郡領縣高麗初改爲八居。〈後居音轉而爲莒。〉 別號七谷

금산현(金山縣 경상북도 김천) : 본래 신라의 금산현(金山縣)

개령군(開寧郡)이 거느리는 현이 되었다. 금릉(金陵)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金山縣本新羅金山縣爲開寧郡領縣別號金陵

황간현(黃澗縣 충북 영동군 황간면 매곡면 황금면 산촌면 일대) : 본래 신라의 소라현(召羅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黃澗縣本新羅召羅縣景德王改今名.

관성현(管城縣 충청북도 옥천군) : 본래 신라의 고시산군(古尸山郡)

신라 경덕왕 때 관성군으로 바꾸었다.

管城縣本新羅古尸山郡景德王改爲管城郡

안읍현(安邑縣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 본래 신라의 아동혜현(阿冬兮縣)

경덕왕 때 안정(安貞)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관성군(管城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安邑縣本新羅阿冬兮縣景德王改名安貞爲管城郡領縣高麗初更今名

양산현(陽山縣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 본래 신라의 조비천현(助比川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陽山縣本新羅助比川縣景德王改今名

이산현(利山縣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 본래 신라의 소리산현(所利山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利山縣本新羅所利山縣景德王改今名.

대구현(大丘縣 대구광역시 중구) : 본래 신라의 달구화현(達句火縣)

大丘縣本新羅達句火縣景德王改今名.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화원현(花園縣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花園縣本新羅舌火縣景德王改今名. 別號錦城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금성(錦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하빈현(河濱縣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 본래 신라의 다사지현(多斯只縣) 답지(沓只)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河濱縣本新羅多斯只縣,〈一云沓只。〉景德王改今名.

안동부(安東府)

안동부(安東府) : 본래 신라의 고타야군(古陁耶郡)

신라 경덕왕 때 고창군(古昌郡)이라 고쳤다.

고려 태조 13(930) 후백제 견훤과 이 땅에서 싸움을 벌여 견훤을 물리쳤다. ()사람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길(張吉)이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워 김선평(金宣平)을 대광(大匡 1품 최고 직위)에 앉히고 권행(權幸)과 장길(張吉)은 각각 대상(大相)에 앉히고 군()을 승격시켜 안동부(安東府)를 만들었다. 뒤에 영가군(永嘉郡)으로 바꾸었다. 성종 14(995) 길주자사(吉州刺史)라 일컬었다. 현종 3(1012) 안무사(安撫使)를 만들었다가 9년 지길주사(知吉州事)로 고쳤었는데 21년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충렬왕 34(1308) 복주목(福州牧)으로 바꾸었다. 공민왕 10(1361) 홍건적을 피하여 남쪽으로 길을 떠나 가마를 머물렀는데 주()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이런저런 먹거리와 물자를 이바지하였다.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명종 27(1197) 남쪽 민란을 일으킨 김삼(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할퀴고 노략질을 하여 사람을 보내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였었는데 안동부에서 공이 있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신종 7(1204) 동경(東京) 별초(別抄)의 패좌(孛佐)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었는데 부()에서 막아 제어한 공이 있어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충렬왕 때 가야향(加也鄕 경북 봉화) 사람인 호군(護軍) 김인궤(金仁軌)가 공이 있어 그 향()을 승격시켜 춘양현(春陽縣)으로 만들었다. 충선왕 때 원나라 활활치 평장(闊闊赤 平章)의 아내 경화옹주(敬和翁主)의 고향인 덕산부곡(德山部曲)을 재산현(才山縣)으로 만들었다. 충혜왕 때 환관 강금강(姜金剛)을 원나라 조정에 들여보내고 애쓴 노력이 있어 그의 고향 퇴곶부곡(退串部曲)을 승격시켜 내성현(柰城縣)을 만들었다. 뒤에 다시 길안부곡(吉安部曲)을 승격시켜 현을 만들었다.

신라 때 일컬었던 릉라군(綾羅郡), 지평군(地平郡), 석릉군(石陵郡), 일계군(一界郡), 화산군(花山郡), 고장군(古藏郡)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安東府本新羅古陁耶郡景德王改爲古昌郡太祖十三年與後百濟王甄萱戰於郡地敗之郡人金宣平權幸張吉佐太祖有功拜宣平爲大匡各爲大相陞郡爲安東府後改爲永嘉郡成宗十四年稱吉州刺史顯宗三年爲安撫使九年改知吉州事二十一年更今名明宗二十七年南賊金三孝心等剽略州郡遣使討平之以府有功陞爲都護府神宗七年東京別抄孛佐等聚衆叛以府有捍禦功陞爲大都護府忠烈王三十四年改爲福州牧恭愍王十年避紅賊南巡駐輦以州人盡心供頓復陞爲安東大都護府。〈忠烈王以加也鄕人護軍金仁軌有功陞其鄕爲春陽縣忠宣王以敬和翁主鄕德山部曲爲才山縣忠惠王以宦者姜金剛入元有負絏之勞陞其鄕退串部曲爲柰城縣後又陞[原本]吉安部曲爲縣。〉別號綾羅郡地平郡石陵郡一界郡花山郡古藏郡。〈皆新羅時稱號。〉

임하군(臨河郡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 본래 고구려의 굴화군(屈火郡)

신라 경덕왕 때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臨河郡本高句麗屈火郡新羅景德王改爲曲城郡高麗初更今名

예안군(禮安郡 경북 안동) : 본래 고구려의 매곡현(買谷縣)

신라 때 선곡(善谷)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내령군(柰靈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禮安郡本高句麗買谷縣新羅改名善谷爲柰靈郡領縣高麗初更今名

의흥군(義興郡) : 고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쳤다. 공양왕 2년 감무(監務)를 두고 선주(善州)가 맡고 있던 부계현(缶溪縣)을 여기에 소속시켰다. 뒤에 의흥군(義興郡)으로 옮겨 소속시켰다. 구성(龜山)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義興郡顯宗九年來屬恭讓王二年置監務以善州任內缶溪縣屬之後移屬義城縣別號龜山

일직현(一直縣 경북 안동) : 본래 신라의 일직현(一直縣)

신라 경덕왕 대 직령(直寧)이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고창군(古昌郡)이 거느리는 현을 만들었다. 고려 초 옛 호칭을 회복하였다.

一直縣本新羅一直縣景德王改名直寧爲古昌郡領縣高麗初復舊號

은풍현(殷豐縣 경상북도 풍기) : 본래 신라의 적아현(赤牙縣)

경덕왕 때 은정(殷正)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殷豐縣本新羅赤牙縣景德王改名殷正高麗初更今名

감천현(甘泉縣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 신라 때의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甘泉縣新羅時稱號未詳

봉화현(奉化縣 경북 봉화) : 본래 고구려의 고사마현(古斯馬縣)

신라 경덕왕 때 옥마(玉馬)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내령군(奈靈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봉성(鳳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奉化縣本高句麗古斯馬縣新羅景德王改名玉馬爲柰靈郡領縣高麗初更今名別號鳳城

안덕현(安德縣 경북 청송군 안덕면 현동면 현서면 일대) : 본래 고구려의 이화혜현(伊火兮縣)

신라 경덕왕 때 연무(緣武)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곡성군(曲城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安德縣本高句麗伊火兮縣新羅景德王改名緣武爲曲城郡領縣高麗初更今名

풍산현(豐山縣 안동 풍산현) : 본래 신라의 하지현(下枝縣) 하지산(下枝山)이 있다. 일명 풍악(豐岳)이라 하였다.

경덕왕 때 영안(永安)이란 이름으로 고치고 예천군(醴泉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태조 6(923) 현 사람 원봉(元逢)이 귀순한 공이 있어 순주(順州)로 승격시켰다. 13년 견훤에게 함락되어 다시 하지현(下枝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豐山縣本新羅下枝縣,〈有下枝山一名豐岳。〉景德王改名永安爲醴泉郡領縣太祖六年縣人元逢有歸順之功陞爲順州十三年陷於甄萱復降爲下枝縣後更今名

기주현(基州縣 경상북도 풍기군) : 신라 때의 이름을 자세하지 않다. 더러는 기목진(基木鎭)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비로소 지금 이름으로 일컬었다. 성종이 정한 영정(永定)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또 안정(安定)이라고도 한다.

基州縣新羅時稱號未詳或曰基木鎭高麗初始稱今名別號永定,〈成廟所定。〉又號安定

흥주본(興州本 경북 영주시 순흥읍) :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及伐山郡)

신라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이라 고쳤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성종이 정한 순정(順政)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소백산이 있다.

興州本高句麗及伐山郡新羅景德王改爲岌山郡高麗初更今名別號順政。〈成廟所定。〉有小白山

순안현(順安縣 경북 영주시 일대) : 본래 고구려의 내이군(柰已郡)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이곳을 취하였고 경덕왕이 내령군(柰靈郡)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 14(995) 강주도단련사(剛州都團練使)라 일컬었다. 현종 9(1018) 다른 곳에 합쳤다. 인종 21(1143)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성종이 정한 구성(龜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험하게 막고 있는 곳으로 마아령(馬兒嶺)이 있다.

順安縣本高句麗柰已郡新羅婆娑王取之景德王改爲柰靈郡成宗十四年稱剛州都團練使顯宗九年來屬仁宗二十一年更今名別號龜城。〈成廟所定。〉險阻處有馬兒嶺

의성현(義城縣) : 본래 소문국(召文國)

신라가 이 땅을 취하여 경덕왕 때 문소군(聞韶郡)으로 고쳤다.

삼국사기에 경덕왕 때 구화현(仇火縣)을 고쳐 고구현(高丘縣)을 만들었다가 뒤에 현에 합쳤다.” 하였다.

바람구멍이 있다. 또 얼음구멍도 있다. 입하(立夏) 뒤에 비로소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극성이면 얼음이 단단해지고, 겨울이면 온기가 마치 봄과 같다.

義城縣本召文國新羅取之景德王改爲聞韶郡。〈三國史記云:「景德王改仇火縣爲高丘縣後合屬於縣」。〉有風穴又有冰穴。〈立夏後冰始凝極熱則堅冬則溫氣如春。〉

기양현(基陽縣 경상북도 예천군) : 본래 신라의 수주현(水酒縣)

신라 경덕왕 때 예천군(醴泉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 보주(甫州)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명종 2년 태자의 태()를 묻어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시켰다. 성종이 정한 청하(淸河)와 양양(襄陽)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基陽縣本新羅水酒縣景德王改爲醴泉郡高麗初更名甫州明宗二年藏太子胎改今名陞爲縣令官別號淸河襄陽。〈成廟所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