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慶尙道)
○경상도는 삼한(三韓) 시대에 진한(辰韓)이고 삼국(三國) 시대에 신라(新羅)이다. 고려 태조에 이르러 신라, 백제를 아우르고 동남도 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경주(慶州)에 사(司)를 두었다.
성종 14년(955년) 이 땅을 나누어 열 군데 도(道)를 만들었으니 상주(尙州)가 관리하는 곳은 영남도(嶺南道)라 하고 경주(慶州)와 금주(金州 경상남도 김해시)가 관리하는 곳은 영동도(嶺東道)라 하고 진주가 관리하는 곳은 산남도(山南道)라 하였다.
예종 원년(1106년)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일컬었다. 명종 원년(1171년) 경상주도(慶尙州道)와 진협주도(晉陜州道) 둘로 나누었다. 16년 경상진안도(慶尙晉安道)으로 바꾸었다.
고종 46년(1259년)에 화(和) 등(登), 정(定), 장(長) 네 주(州)를 몽고(蒙古)가 몰수하고 도의 평해(平海), 덕원(德原), 영덕(盈德), 송생(松生)을 갈라 내 명주도(溟州道)에 예속시켰다.
충렬왕 16년(1290년) 다시 덕원(德原), 영덕(盈德), 송생(松生)을 동계(東界)로 예속시켰다. 충숙왕 원년(1314년 ) 경상도(경상도)로 정하였다. 거느린 경(京)이 하나요 목(牧)이 둘이요 부(府)가 셋이요 군(郡)이 서른이요 현(縣)이 아흔둘이다.
慶尙道在三韓爲辰韓,在三國爲新羅。及太祖幷新羅、百濟,置東南道都部署使,置司慶州。成宗十四年,分境內,爲十道,以尙州所管,爲嶺南道,慶州、金州所管,爲嶺東道,晉州所管爲山南道。睿宗元年,稱慶尙晉州道。明宗元年,分爲慶尙、晉陜州兩道,十六年,爲慶尙州道。神宗七年,爲尙晉安東道,其後,又改爲慶尙晉安道。高宗四十六年,以和、登、定、長四州,沒於蒙古,割道之平海、德原、盈德、松生,隷溟州道。忠烈王十六年,又以德原、盈德、松生,移隷東界。忠肅王元年,定爲慶尙道。領京一,牧二,府三,郡三十,縣九十二。
동경유수관경주(東京留守官慶州 경주)
○동경유수관경주(東京留守官慶州) : 신라의 옛 도읍지이다. 시조 혁거세왕(赫居世王)이 나라를 열고 도읍을 건설하여 나라 이름을 서야벌(徐耶伐)이라고 하였다. 더러는 사라(斯羅)라고도 일컬었고,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가 뒤에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탈해왕(脫解王) 9년 시림(始林)에 괴이한 닭이 있어 이름을 계림(雞林)이라 고치고 인하여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기림왕(基臨王) 10년에 다시 신라(新羅)라고 불렀다.
고려 태조 18년(935년) 경순왕 김부(金傅)가 와서 항복하니 국(國)을 제거하고 경주(慶州)라 하였다. 23년 대도독부(大都督府)로 승격시키고 그 주(州) 6부(部)의 이름을 고쳐서 양부(梁部)를 중흥부(中興部)라 하고 사량(沙梁)을 남산부(南山部)라 하고 본피(本彼)를 통선부(通仙部)라 하고 습비(習比)를 임천부(臨川部)라 하고 한지(漢祗)를 가덕부(加德部)라 하고 모량(牟梁)을 장복부(長福部)라 하였다.
성종 6년(987년) 동경유수(東京留守)로 바꾸었고 14년 유수사(留守使)라 일컫고 영동도(嶺東道)에 소속시켰다. 현종 3년(1012년) 유수관(留守官)을 폐하고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로 강등시켰다. 5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바꾸었다. 21년 다시 동경유수(東京留守)로 하였다. 당시 예방(銳方)이 올린 삼한회토기(三韓會土記 풍수에 관한 책일 것이라 함)에 고려 3경(京)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이 내용 때문에 다시 동경(東京)을 설치하였다.
신종 5년(1202년) 동경에서 야별초(夜別抄)가 난을 일으켜 주군(州郡)을 공격하여 을러대니 군사를 보내어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7년 동경 사람이 ‘신라가 다시 번성한다’라는 말을 만들어 상주도(尙州道). 청주도(淸州道), 충주도(忠州道), 원주도(原州道)에 선동 격문을 돌리고 반란을 계획하였다.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시켰다. 동경(東京)의 관할이었던 주부(州府), 군현(郡縣), 향부곡(鄕部曲)을 빼앗아 안동(安東)과 상주(尙州)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 6년(1219년) 다시 유수(留守)로 만들었다. 충렬왕 34년(1308년) 계림부(雞林府)라고 고쳐 일컬었다.
신우(辛禑) 2년(1376년) 계림부와 금주(金州)가 안렴사(按廉使 道의 장관)의 영문(營門)인 사영(使營)을 두고서 다투었다. 도평의사(都評議使)가 아뢰기를 ‘금주(金州)의 난적이 안렴사를 살해하였고 또 영(營)을 설치한 동안 계림(雞林)만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바닷가가 가까워 왜적이 걱정되니 부디 계림으로 옮겨 설치하소서!’ 하였다. 신우가 이를 따랐다. 성종이 정한 낙랑(樂浪)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혁거세(赫居世)의 왕릉과 김유신(金庾信)의 묘가 있다. 또 첨성대〈신라 선덕 여왕이 쌓게 한 것이다.〉와 봉덕사(奉德寺)가 있다. 〈신라 혜공왕이 큰 종을 주조하게 하였는데 구리쇠(銅) 무게가 12만 근(斤)이라서 이를 치면 그 소리가 백여 리에까지 들린다.〉 소속 군(郡)이 넷이고 현(縣)이 열이다. 거느린 군(郡)은 다섯이다. 〈방어군(防禦郡)이 넷에 지사군(知事郡)이 하나이다.〉
[金州賊殺按廉,且置營歲月 : 세월(歲月) : 짧은 시간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사기 “...그대가 비록 수십만의 군사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짧은 시간(歲月)에 그들을 깨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史記·酈生陸賈列傳》 :...足下雖遣數十萬師,未可以歲月破也。]
東京留守官慶州本新羅古都。始祖赫居世王,開國建都,國號徐耶伐,或稱斯羅,或稱斯盧,後稱新羅。脫解王九年,始林有雞怪,更名雞林,因以爲國號。基臨王十年,復號新羅。太祖十八年,敬順王金傅來降,國除爲慶州。二十三年,陞爲大都督府,改其州六部名,梁部爲中興部,沙梁爲南山部,本彼爲通仙部,習比爲臨川部,漢祗爲加德部,牟梁爲長福部。成宗六年,改爲東京留守,十四年,稱留守使,屬嶺東道。顯宗三年,廢留守官,降爲慶州防禦使。五年,改安東大都護府。二十一年,復爲東京留守。時銳方所上三韓會土記,有高麗三京之文,故復置之。神宗五年,東京夜別抄作亂,攻劫州郡,遣師討平之。七年,以東京人造新羅復盛之言,傳檄尙、淸、忠、原州道,謀亂,降知慶州事,奪管內州府郡縣鄕部曲,分隷安東、尙州。高宗六年,復爲留守。忠烈王三十四年,改稱雞林府。辛禑二年,府與金州,爭使營。都評議使奏,金州賊殺按廉,且置營歲月,不及雞林。况近海濱,倭賊可畏,乞移置雞林。禑從之。別號樂浪。〈成廟所定。〉有赫居世王陵,金庾信墓。又有瞻星臺、〈新羅善德女主所築。〉奉德寺。〈新羅惠恭王,鑄大鍾,重銅一十二萬斤,撞之,聲聞百餘里。〉屬郡四,縣十。領郡五。〈防禦郡四,知事郡一。〉
○흥해군(興海郡 포항시 흥해읍) : 본래 신라의 퇴화군(退火郡)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의창군(義昌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興海郡本新羅退火郡,景德王改爲義昌郡。高麗初,改今名。
○장산군(章山郡 경상북도 경산) : 본래 압량소국(押梁小國) 〈압독(押督)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지미왕(祗味王) 때 이곳을 취하여(압량소국이 자체 부족국가였던 듯) 군(郡)을 설치하였다. 경덕왕 때 장산군(獐山郡)이라 고치고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章山郡本押梁小國,〈一云押督。〉新羅祗味王,取之,置郡。景德王,改爲獐山郡。高麗初,更今名。
○수성군(壽城郡 대구광역시) : 신라의 위화군(喟火郡) 〈상촌창군(上村昌郡)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수창군(壽昌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壽城郡本新羅喟火郡,〈一云上村昌郡。〉景德王,改爲壽昌郡。高麗初,更今名。
○영주(永州 경상북도 영천) : 고려 초 임고군(臨皐郡), 도동(道同)과 임천(臨川) 두 현을 합하여 이 주(州)를 두었다. 〈고울부(高鬱府)라고도 한다.〉
성종 14년 영주자사(永州刺史)를 만들었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하였다.
명종 2년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뒤에 지주사(知州事)로 승격시켰다. 성종이 정한 익양(益陽)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영양(永陽)이라는 이름도 있다. 〈고려 말에 본 주의 이지은소(梨旨銀所)를 현(縣)으로 승격시켰다.〉
永州高麗初,合新羅臨皐郡、道同、臨川二縣,置之。〈一云高鬱府。〉成宗十四年,爲永州刺史。顯宗九年,來屬。明宗二年,置監務,後陞爲知州事。別號益陽,〈成廟所定。〉又號永陽。〈麗季,陞本州梨旨銀所,爲縣。〉
○안강현(安康縣 경주시 안강읍) : 신라의 비화현(比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공양왕 2년 감무(監務)를 두었다. 〈신라 파사(婆娑(裟)王)이 음즙벌국(音汁伐國)을 취하여 이곳에 음즙화현(音汁火縣)을 두었고 뒤에 현에 합쳐 소속시켰다.〉
安康縣本新羅比火縣,景德王,改今名。恭讓王二年,置監務。〈新羅婆娑[原本「裟」]王,取音汁伐國,置音汁火縣,後合屬於縣。
○신령현(新寧縣 영천시 화산면) : 사정화현(史丁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新寧縣本新羅史丁火縣,景德王,改今名
○자인현(慈仁縣 경산시 자인면) : 본래 노사화현(奴斯火縣)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慈仁縣本新羅奴斯火縣,景德王,改今名
○청하현(淸河縣 포항시 청하면) : 본래 고구려의 아혜현(阿兮縣)
신라 경덕왕 때 해아(海阿)로 이름을 고치고 유린군(有隣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淸河縣本高句麗阿兮縣,新羅景德王,改名海阿,爲有隣郡領縣。高麗初,更今名。
○연일현(延日縣 포항시 연일읍) : 본래 신라의 근오지현(斤烏支縣) 〈오량우(烏良友)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임정(臨汀)으로 이름을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延日縣本新羅斤烏支縣,〈一作烏良友。〉景德王,改名臨汀,爲義昌郡領縣。高麗初,更今名。
○해안현(解顔縣 대구광역시) : 본래 라치성화현(羅雉省火縣),〈미리(美里)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解顔縣本新羅雉省火縣,〈一云美里。〉景德王,改今名
○신광현(神光縣 포항시 북구 신광면) : 본래 동잉음현(東仍音縣) 〈신을(神乙)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神光縣本新羅東仍音縣,〈一云神乙。〉景德王,改今名
○기계현(杞溪縣 포항시 기계면) : 본래 신라의 모혜현(芼兮縣) 〈화계(化雞)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杞溪縣本新羅芼兮縣,〈一云化雞。〉景德王,改今名
○장기현(長鬐縣 포항시 장기현) : 본래 신라의 지답현(只沓縣)
경덕왕 때 기립(鬐立)이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長鬐縣本新羅只沓縣,景德王,改名鬐立,爲義昌郡領縣。高麗,更今名.
울주(蔚州 울산)
○울주(蔚州)는 본래 굴아화촌(屈阿火村)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이를 취하여 현을 설치하였다. 경덕왕 때 하곡(河曲)이란 이름으로 고치고〈하서(河西)라고도 하였다.〉 임관군(臨關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신라 경덕왕 때 우화현(于火縣 울산)으로 고쳐 우풍현(虞風縣 경남 양산, 울산시 울주)을 만들고 율포현(栗浦縣)을 동진현(東津縣 울산시 북동구)으로 만들어 모두 합쳐 울주에 소속시켰었다. 고려 태조 때 군(郡) 사람 박윤웅(朴允雄)이 공이 있어 하곡(河曲), 동진(東津), 우풍(虞風)을 한데 싸서 흥례부(興禮府)를 두었다. 뒤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시키고 또다시 지울주사(知蔚州事)로 고쳤다. 어떤 사람은 ‘신라 말에 학이 와서 울어댄 일이 있어서 신학성(神鶴城)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계변성(戒邊城)이라고도 하고 개지변(皆知邊)이라고도 하며 화성군(火城郡)이라고도 한다.〉 학성(鶴城)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蔚州本屈阿火村,新羅婆娑王,取之,置縣,景德王,改名河曲,〈一作河西。〉爲臨關郡領縣,高麗初,更今名。〈景德王,改于火縣,爲虞風縣,栗浦縣,爲東津縣,皆合屬. 太祖時,郡人朴允雄,有大功,乃倂河曲、東津、虞風等縣,置興禮府。後降爲恭化縣,又改知蔚州事。一云,羅季,有鶴來鳴,故稱神鶴城。一云戒邊城,一云皆知邊,一云火城郡。〉別號鶴城。
○동래현(東萊縣 부산 동래구) : 본래 신라의 거칠산군(居柒山郡)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으로 바꾸었다.
東萊縣本新羅居柒山郡,景德王,改爲東萊郡.
○헌양현(巘陽縣 울산 울주군 언양읍) :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巘陽縣本新羅居知火縣, 景德王,改今名.
예주(禮州 경상북도 영덕)
○예주(禮州) :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
신라 경덕왕 때 유린군(有隣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禮州本高句麗于尸郡,新羅景德王,改爲有隣郡。高麗初,更今名。
○보성부(甫城府 경북 청송군 진보면 파천군 일대) : 〈재암성(載岩城)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칠파화현(柒巴火縣)을 고쳐 진보현(眞寶縣)으로 만들었고, 한편 고구려의 조람현(助攬縣)을 고쳐 진안현(眞寶縣)으로 만들었다.
甫城府〈一云載岩城。〉新羅景德王,改柒巴火縣,爲眞寶縣,又改高句麗助攬縣,爲眞安縣。
○영양군(英(延)陽郡 또는 연양군. 경상북도 영양군) : 본래 고은현(古隱縣)
뒤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英陽郡〈英一作延。〉本古隱縣,後改今名。
○평해군(平海郡 경상북도 울진군) :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근을오(斤乙於)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平海郡本高句麗斤乙於,高麗初,改今名。
○영덕군(盈德郡 경상북도 영덕군) : 고구려의 야시홀군(也尸忽郡)
신라가 야성군(野城郡)으로 고치고 고려 때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盈德郡本高句麗也尸忽郡,新羅改爲野城郡,高麗初,更今名.
○청부현(靑鳬縣 경상북도 청송군) : 본래 고구려의 청사현(靑巳縣)
신라 때 적선(積善)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야성군(野城郡)이 거느리는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 부이현(鳬伊縣)이라 하고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바꾸었다.
靑鳬縣本高句麗靑巳縣,新羅改名積善,爲野城郡領縣。高麗初,爲鳬伊縣,又改爲雲鳳縣。
松生縣
○송생현(松生縣 경북 청송군 청송읍과 주왕산 일대) : 고려 현종 9년 다른 곳과 합쳤다. 인종 21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松生縣顯宗九年,來屬。仁宗二十一年,置監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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