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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女真) 말갈(靺鞨)

여진(女真)〈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㑹編) 3권〉 12

by 쥐눈이 2023. 11. 16.

곁드린 자료

2. 북방 민족 성씨

1) 토번(吐蕃) (출처 : 당서 토번전(唐書 吐蕃傳))

토번(吐蕃)은 본래 서강(西羌)으로 그 민족에는 150 갈래가 있어 황하(黃河)와 황수(湟水 황하 상류의 중요 물줄기, 청해성(青海省) 동부에 있다), 장강과 민산(岷山 사천성과 감숙성 사이에 있다) 사이에 흩어져 살았다. 그들 가운데 발강(發羌 : 서강(西羌)의 한 갈래, 청해 서부와 서장 북부에 산다)당모(唐旄) 들이 있었지만, 아직껏 중원에 나라들과 관계를 튼 적이 없이 석지수(析支水 지금 황하 상류) 서쪽에 살았다. 그 조상은 골제발실야(鶻提勃悉野 밝게 빛나는 천계(天界)의 임금을 뜻함)라 하는데 굳세며 씩씩하고 슬기가 많아 조금씩 여러 강() 민족을 아울러 나가면서 그 땅을 움키었다. ()과 발()은 소리가 가깝기에 그의 자손들을 토번(吐蕃)이라 하고 성()을 발솔야(勃窣野)라 한다.

唐書 吐蕃傳》:「吐蕃本西羌屬百有五十種散處河岷間有發羌唐旄等然未始與中國通居析支水西祖曰鶻提勃悉野健武多智稍并諸羌據其地發聲近故其子孫曰吐蕃而姓勃窣野

더러는 토번은 16국에 하나인 남량(南涼)의 두 번째 임금 독발리록호(禿髮利鹿狐)의 후손이다. 독발리록호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번니(樊尼)이고 다른 하나는 녹단(傉檀)이다. 녹단(傉檀)이 뒤를 이었지만 걸불치반(乞佛熾盤 16국 때 서진국(西秦國) 임금. 재위 401-133)에게 멸망 당하자 번니(樊尼)는 남은 부족들을 데리고 저거몽손(沮渠蒙遜 북량의 실질적 건국자) 신하로 들어가니 번니를 임송 태수(臨松太守 임송은 지금 감숙성 장액시)로 삼았다. 몽손(蒙遜)이 붕어하고 반니(樊尼)가 군사들을 이끌고 서쪽 황하를 건너고 적석(積石 지금 청해성 동남부 아니마경산(阿尼瑪卿山))을 지나 마침내 무리를 이루고 있던 강() 민족을 차지하였다.”라고 한다.

或曰南涼禿髮利鹿狐之後二子曰樊尼曰傉檀傉檀嗣為乞佛熾盤所滅樊尼挈殘部臣沮渠蒙遜以為臨松太守蒙遜滅樊尼率兵西濟河逾積石遂撫有群羌云

그 민간에서는 튼튼하고 씩씩함(彊雄)()’이라 하고 사나이(丈夫)()’라 한다. 그러므로 군장(君長) 또는 임금을 찬보(贊普)’라 부르고 찬보(贊普)의 각시를 말몽(末蒙)’이라 부른다. 그 관직에 대상(大相 큰 재상)이 있으니 론채(論茝)’라 하고 버금 재상(副相)을 론채호망(論茝扈莽)이라 하여 각각 한 사람을 두었다. 이들을 대론(大論), 소론(小論)’이라고도 부른다. 외교 문제에 참여하여 결단할 수 있는 도호(都護) 한 사람을 두었으니 실편체포(悉編掣逋)라 하였다. 또 대내상(內大相)을 낭론체포(曩論掣逋)라 하고 론망열(論莽熱)이라고도 한다. 그의 버금 재상(副相)을 낭론멱령포(曩論覓零逋)라 하고 소상(小相)을 랑론충(曩論充)이라 하였는데 각 한 사람을 두었다. 정사대상(整事大相)이 있으니 유한파체포(喻寒波掣逋)라 하고 버금 정사(副整事)는 유한멱령포(喻寒覓零逋)라 하고 소정사(小整事)를 유한파충(喻寒波充)이라 한다. 이들 모두 나라의 정치를 담당하며 총칭은 상론체포돌구(尚論掣逋突瞿)라 한다.

其俗謂彊雄曰」,丈夫曰」,故 號君長曰贊普贊普妻曰末蒙其官有大相曰論茝副相曰論茝扈莽各一人亦號大論小論。」都護一人 曰悉編掣逋。」又有內大相曰曩論掣逋亦曰論莽熱副相曰曩論覓零逋小相曰曩論充各一人又有整事大相曰喻寒波掣逋副整事曰喻寒覓零逋小整事曰喻寒波充皆任國事總號曰尚論掣逋突瞿

이들의 땅은 경사(京師 장안)에서 서쪽으로 8천 리에 있고 선선(鄯善 지금 신강 토로번시(吐魯番市))5백 리 떨어져 있으며 뛰어난 병사가 수십만이다. 나라에 천둥()과 번개()와 바람과 우박, 오래도록 쌓인 눈이 많다. 한여름은 중국에 봄철과 같아 산골은 늘 얼어붙어 있다. 이 지역은 추운 땅에서 오는 역병(寒癘)이 있어 사람이 이 병에 걸리면 속이 더부룩하여 다그치지만, 사람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地直京師西八千里距鄯善五百里勝兵數十萬國多霆積雪盛夏如中國春時山谷常冰地有寒癘中人輒痞促而不害

그 찬보(贊普)발포천(跋布川) 아니면 라사천(邏娑川)에서 산다. 성곽(城郭)과 오두막집(廬舍)을 두고서도 기꺼이 그곳에서 지내려 하지 않고 취장(毳帳)을 이어지어서 살았으니 이를 대불려(大拂廬)’라 불렀다. 이 안은 수백 사람도 들어갈 수 있다. 그 호위하는 것은 엄중하고 군장이 정무를 보는 곳()은 매우 좁다.

其贊普居跋布川或邏娑川有城郭廬舍不肯處聯毳帳以居大拂廬」,容數百人其衛候嚴而牙甚隘

부족 사람들은 소불려(小拂廬)에서 산다. 대부분 나이 백여 살에 이를 정도로 늙도록 오래 산 이들은 짐승 털이나 가죽을 바느질 없이 꼬아 엮어 만든 옷을 입고서 붉은 흙을 얼굴에 바르기를 즐긴다. 아녀자들은 머리카락을 땋아 이를 감아올린다.

部人處小拂廬多老壽至百 餘歲者衣率氈韋以赭塗面為好婦人辮髮而縈之

그 쓰는 그릇은 나무를 구부리고서 바닥에 가죽을 댄다. 더러는 털 담요를 쟁반으로 쓰며 쪄 말린 보릿가루()를 엉기어서 주발을 만들어 이 안에 소유차(酥油茶, 곧 갱락(羹酪))를 담아 그 그릇도 함께 먹고 손으로 술을 받아서 마신다.

其器屈木而韋底或氈為槃凝麨為盌實羹酪并食之手捧酒槳以飲

그 관리들 장식에 등급이 가장 높으면 슬슬(瑟瑟 하늘빛 보석, 라피스 라줄리 Lapis Lazuli 서역에서 생산됨)을 장식하고 금이 다음이며 금에 은을 바른 것이 다음이고 은이 다음이며, 가장 낮은 것은, 구리에 이르러 그친다. 관직에 크고 작음을 가려 팔 앞에 죽 이어 달아서 귀천(貴賤)을 구별한다.

其官之章飾最上瑟瑟金次之金塗銀又次之銀次之最下至銅止差大小綴臂前以辨貴賤

집은 위가 평평하고 높이는 두어 장(數丈 1장은 3미터 가량)에 이른다. 그 농사 거리에 소맥청(小麥 ), 청과맥(青䴹麥 청보리), 교맥(蕎麥 메밀), 노두(䝁豆 : 녹두(鹿豆)로 들녹두(野綠豆). 쓰고 독이 없으며 맹장염과 목 임파선 결핵을 다스린다 함)가 있다.

屋皆平上高至數丈其稼有小麥青䴹麥蕎麥䝁豆

그 땅에 짐승은 검은 소(犛牛 야크(yak)), 뛰어난 말, , , 돼지이고 스라소니(天鼠 곧 사리손(猞猁孫))의 가죽은 갖옷을 만들기에 좋다. 혹 하나 있는 낙타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其獸犛牛名馬天鼠之皮可為裘獨峰駝日馳千里

그 땅에 보물은 금, , 주석, 구리이다.

其寶

그 죽음에 장례는 무덤을 만들어 진흙을 발라 꾸민다.

其死葬為冢塈塗之。」

그 관리들이 정무를 볼 때 글자가 없어서 끈을 엮거나(結繩) 이빨 배열처럼 나무에 이빨 모양을 새겨 숫자를 기록한 나무(齒木)로 계약서를 삼았다.

그 형벌에는 비록 작은 죄라도 반드시 눈을 파내거나 발꿈치를 베고 코를 베고서 가죽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매질한다. 몇 대를 때릴지는 그때그때 기분을 따를 뿐 조목에 따라 정해진 일정 수는 없다.

其吏治無文字結繩齒木為約其刑雖小罪必抉目或刖劓以皮為鞭抶之從喜怒無常算

그 감옥은 두어 장(數丈)을 깊이로 땅을 파고 죄인을 그 안에 들여놓는데 2, 3년 되어야 나오게 한다.

其獄窟地深數丈內囚于中二三歲乃出

그 잔치에 큰 손님들이 있으면 주인은 반드시 검은 소(야크)를 몰아서 손님들이 몸소 이를 쏘게 하고서 마침내 그것으로 음식을 해 드린다.

其宴大賓客必驅犛牛使客自射乃敢饋

그 풍속에 귀신의 도움과 무당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청장 고원(青藏高原)에 있는 들양(羱羝 뿔이 큰 암컷 양)을 큰 신()으로 모신다. 부처의 법을 좋아하고 저주하는 방법을 익힌다. 나라의 정치에 반드시 스님(桑門, 곧 사문(沙門))을 참여시켜 일을 결정한다. 대부분 활과 칼을 차고 다니고 술을 마시되 취하도록 하지 않는다. 아낙들은 정치에 나서지 못하게 한다. 씩씩함을 높게 여기고 나약함을 낮게 본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절을 하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거만하게 굴며 드나들 때 젊은이가 앞에 서고 늙은이가 뒤에서 간다.

其俗重鬼右巫事羱羝為大神喜浮屠法習咒詛國之政事必以桑門參決多佩弓刀飲酒不得及亂婦人無及政貴壯賤弱母拜子子倨父出入前少而後老

병사로 싸우다 죽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어 몇 대에 걸쳐 전쟁에서 숨지면 으뜸 가문(甲門)으로 친다. 전쟁에서 패한 나약한 사람은 머리에 여우 꼬리를 달아서 드리우게 하여 창피를 보이고 사람들과 나란히 서지 못하며, 절을 할 때 반드시 손으로 땅에 기댄 채 크게 부르짖고 다시 고개를 굽혀 인사를 하고서 그친다.

重兵死以累世戰沒為甲門敗懦者垂狐尾於首示辱不得列於人拜必手据地為大號再揖身止

부모의 상을 치를 때 머리를 자르고 얼굴에 눈썹을 먹으로 그리고 검은색 옷을 입는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길하다고 여긴다.

居父母喪斷髮黛面墨衣既葬而吉

군대를 일으킬 때(징집할 때) 7()의 쇠 화살로 약속을 한다. 백 리마다 역참이 하나 있어서 갑작스러운 전란이 생기면 역참 관리(驛人)가 그 가슴 앞에 은골(銀鶻 : 군사상 하나의 신호)을 더하는데 일이 더욱 급할수록 골()을 더욱 많이 단다.(그 수가 12-13에까지 이른다 함) 외적의 침입을 알릴 때 봉화를 피워 올린다.

그들이 짐승을 기르느라 물과 풀을 따라서 움직여 정해진 거처가 없는데도 그 갑옷과 투구는 능통하게 훌륭하여, 옷이 몸을 둘러싸고 두 눈만 뚫어놓아 아무리 억센 활과 날카로운 칼날이라도 크게 다치게 하지는 못한다. 그 군대 법률은 엄중하고 군사들은 군량이 없으면 적의 물품을 빼앗아 물자를 만든다. 전투를 벌일 때마다 앞 대열이 모조리 죽으면 뒤 대열이 이에 진격한다.

其舉兵以七寸金箭為契百里一驛有急兵驛人臆 前加銀鶻甚急鶻益多告寇舉烽其畜牧逐水草無常所其鎧冑精良衣之周身竅兩目勁弓利刃不能 甚傷其兵法嚴而師無餽糧以鹵獲為資每戰前隊 盡死後隊乃進

그 사시사철 운용은 보리가 익었을 때를 한해 설날로 삼는다.

其四時以麥熟為歲首

그 놀이에는 기()와 육박(六博)이 있다.(()에도 몇 가지가 있는 듯하고 장기나 바둑과는 다른 듯하다. 이 두 놀이 다 그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그 음악에 큰 소라를 불고 북을 친다.

其戲棋六博其樂吹螺擊鼓

그 임금과 신하는 대여섯 사람들이 스스로들 벗이 되니 운명을 함께하는 공명(共命)’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 임금이 죽으면 모두 스스로 죽어서 따르고, 지니고 다니던 아끼는 물건과 타던 말들을 모두 묻으며 큰 집을 짓고 무덤 시작되는 곳에는 많은 나무를 심어 사당(祠堂) 자리를 만든다.

其君臣自為友五六人共命君死」,皆自殺以殉所服玩乘馬皆瘞起大屋冢顛樹眾木 為祠所

찬보(贊普 임금)는 그 신하들과 일 년에 한 번 작게 맹서 의식을 하되 양과 개, 원숭이를 써서 제물로 삼는다. 삼 년에 한 번 크게 맹서 의식을 하되 밤에 제단에 음식을 놓고 개와 말, , 나귀를 제물로 쓴다. 모든 희생 제물은 반드시 다리를 자르고 장()을 찢어 앞에 진열해 놓고 무당을 시켜 신에게 알려 맹서를 바꾸는 사람은 이 제물들과 같은 일이 있으리라!”라고 말하게 한다.

당서(唐書)에는 用人馬牛驢為牲라 하여 희생 제물들에 사람도 썼다(用人)’라 하는데 구당서(舊唐書)에는 그 내용이 없이 짐승들로만 희생 제물을 삼았다. 왜 이런 기록의 차이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민족에 대한 대단한 편견과 괄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구당서에 근거하여 해석하였다. 舊唐書 卷196三年一大盟 夜於壇墠之上與衆陳設肴饌 殺犬馬牛驢以為牲

贊普與其臣歲一小盟用羊猴為牲三歲一大盟夜肴諸壇用人驢為牲凡牲必折足裂 腸陳于前使巫告神曰:「渝盟者有如牲。」

그 뒤에 임금이 있었으니 하실동마(瘕悉董摩 2세기 전반에 재위)라 하고 동마(董摩)가 타토도(陀土度)를 낳고 타토(陀土)가 게리실야(揭利失若)를 낳고 게리(揭利)가 발롱야(勃弄若)를 낳고 발롱(勃弄)이 거소야(詎素若)를 낳고 거소(詎素)가 륜찬소(論贊素)를 낳고 륜찬(論贊)이 기종롱찬(棄宗弄贊)을 낳았는데 이 사람은 또한 기소농(棄蘇農)이라 이름하고 불야씨(弗夜氏)라고도 불린다. 그 사람됨이 의롭고 재간둥이에 씩씩하여 늘 야생말과 검은 소를 쫓아 달리며 이를 찌르는 것을 즐겨 하였으니, 서역에 여러 나라가 모두 그 신하가 되었다.

其後有君長曰瘕悉董摩董摩生陀土度陀土生揭利失若揭利生勃弄若勃弄生詎素若詎素生論贊素論贊生棄宗。《弄贊》,亦名棄蘇農》,亦號弗夜氏其為人慷慨才雄常驅野馬犛牛馳刺之以為樂西域諸國共臣之

 

*북량(北涼 397-439)은 오호 십육국 시대에 감숙성에서 건국한 나라로 초대 임금은 단업(段業)이지만 실제 나라를 세운 사람은 흉노 갈래인 노수호족(盧水胡族) 저거몽손(沮渠蒙遜)이다.

 

*당모(唐旄) : 당모(唐旄)는 곧 총자강(葱茈羌)이니 원래 천산(天山) 남쪽에서 살면서 총령(葱領 파미르 고원) 일대에 서장(西藏) 북쪽이 그 활동의 중심지였으니 어마한 토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청장고원(青藏高原)에 나라를 건국한 상웅(象雄 또한 양동(羊同))이 토번국(吐蕃國)에 패망할 즈음(645), 당모(唐旄)는 그 세력을 점차 동쪽과 남쪽으로 넓혀 하나의 큰 나라가 되었다. 북쪽으로는 전()(지금 신강(新疆) 전화현(田和縣))에 닿고, 동북으로는 소비(蘇毗 청해(青海)와 옥수(玉樹) 일대)를 이웃하며, 서쪽으로는 천축(天竺 인도)과 경계를 두고, 남쪽으로는 토번(吐蕃)과 경계에 있었다. 당모(唐旄) 나라에 도성이 둘이 있었으니 여왕 달갑와(女王 達甲瓦)가 머물며 지킨 년잡림파(年卡林波 지금 서장 니목현(尼木縣) 동남)와 소여왕 기방손(小女王 棄邦孫)이 지킨 나나보채(懦那堡寨 서장 흑죽옹잡현(墨竹工卡縣) 서북)이라고 한다.

통전(通典)돈황(惇煌) 서쪽과 서역(西域) 남산 가운데에 야강(婼羌 신강 야강현(若羌縣)) 서쪽을 따라 총령(蔥嶺 파미르 고원) 수천 리까지, 그곳에 월저(月氐 또는 월지(月支)) 겨레의 나머지 갈래들이 있으니 이들을 총자강(蔥茈羌), 백마강(白馬羌), 황우강(黃牛羌)이라 하는데 각각 추장(酋豪)이 있으며 북쪽으로 여러 나라와 맞닿아있어 그 거리가 얼마나 넒고 좁은지 알지 못한다.” 하였다. 通典惇煌西西域之南山中從婼羌西至蔥嶺數千里有月氐余種曰蔥茈羌白馬羌黃牛羌各有酋豪北與諸國接不知其道里廣狹

*상론체포돌구(尚論掣逋突瞿) : ‘()’은 왕실과 통혼한 대귀족 출신의 대신(大臣), ‘()’은 왕족 출신은 아니지만, 왕실과 직접 관계가 있는 대신(大臣)을 가리킨다. 이른 부족 연맹 지도체제 시기에 연맹의 수장이 친족의 수령, 곧 상()과 신하 부족의 수령, 곧 론()에 의지해 연맹을 다스렸다 한다. ‘체포(掣逋)’크다()’, ‘돌구(突瞿)’일체(一切)’를 뜻한다. 토번(吐蕃)이 왕조를 세운 뒤에 상론체포돌구(尚論掣逋突瞿)는 왕족과 귀족 관원들의 총칭이 되었다.

상론체포돌구는 아홉 정무 대신 또는 아홉 대상론(大尚論)을 말하니 대공론(大貢論), 중공론(中貢論), 소공론(小貢論), 대랑론(大曩論), 중랑론(中曩論), 소랑론(小曩論), 대유한파(大喻寒波), 중유한파(中喻寒波), 소유한파(小喻寒波)가 있는데 이들이 토번 왕조 중앙관리의 핵심을 이루었다. 이들의 권력 서열에서 가장 높은 것이 대공론(大貢論 大相)이고, 다음은 중공론(中貢論)과 대랑론(大曩論), 다음은 소공론(小貢論)과 중유한파(中喻寒波), 다음은 소유한파(小喻寒波)라고 한다.

 

*발포천(跋布川) : 옛 도읍 이름으로 지금에 서장 경결현(瓊結縣)이다. 7세기 즈음에 토번이 라사천(邏娑川)으로 옮겨가기 전 도읍하였던 곳이다. 발포천은 천도(遷都)한 다음에도 여전히 군장 찬보(贊普)가 여름철에 묵을 집(牙帳)은 남아 있었다. 필파성(疋播城), 필파성(匹播城), 발령역(勃令驛)으로도 알려졌다.

 

*라사천(邏娑川 RaSa) : 라사(邏些), 랍살(拉撒), 랍살(拉薩)로도 알려졌다. 이곳은 일찍이 열하사(熱阿沙 티벳탄 발음은 라사 lhasa’)로 불렸으니 산양(山羊)의 땅이라는 뜻이다. 열하(熱阿)산양(山羊)’을 뜻하고 사()()’, 본향, 고향이나 ()’, 속한 땅, 영토를 뜻한다. 이곳은 아주 옛날에 산양이 떼 지어 출몰한 곳이라 한다. 7세기 초반 송찬간포(松贊幹布 송자인 감보 Songzain Gambo)가 청장고원(靑藏高原)을 통일하고서 라사로 천도한 뒤에 이곳을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라사의 다른 이름 랍살(拉薩)부처의 땅또는 성스러운 땅을 뜻한다 한다.

 

*취장(毳帳) : 펠트, 곧 토끼털이나 양털로 만든 천으로 지은 유목민족의 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