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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女真) 말갈(靺鞨)

여진(女真)〈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㑹編) 3권〉 14

by 쥐눈이 2023. 11. 30.

9) 돌궐 기원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이다.

돌궐은 흉노에서 갈라진 민족다. ()은 아사나씨(阿史那氏)이다. 일설에 돌궐의 선조는 흉노 북쪽에 있는 색국(索國 : 외몽고 지역)에서 나왔다. 그 마을에 어르신 아방보(阿謗步)70사람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가 있다.

資治通鑑釋文 : 突厥 匈奴之別種 姓阿史那氏 一曰突厥之先 出於索國在匈奴之北

그 선조가 서해(西海 : 일설에 함해(咸海)는 곧 키르키스탄 이식쿨(Issyk-Kul) 또는 청해(靑海), 고고뇨이(庫庫淖爾). 고고뇨이는 몽고어로 푸른빛 바다를 뜻함) 오른쪽 지역에서 살았는데 이들은 유독 마을을 이루었으니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 ()은 아사나씨(阿史那氏)이다.

北史: 突厥者其先居西海之右獨為部落蓋匈奴之別種也姓阿史那氏。〉

돌궐의 선조는 사마사리해신(射摩舍利海神)이니 신()은 아사덕굴(阿史德窟) 서쪽에 살았다. 사마(射摩)에게는 신령한 남다름이 있었다.

酉陽雜俎 卷四 : 突厥之先曰射摩舍利海神神在阿史德窟西射摩有神異.

돌궐(突厥)의 선조는 평량군(平涼郡 : 지금 감숙성 지역) 호인(胡人 곧 흉노)으로 성()은 아사나씨(阿史那氏)이다. 439년에 위() 태무황제(太武皇帝)가 저거씨(沮渠氏 : 흉노 붙이라 함)가 세운 북량(北凉 : 516국에 하나, 존속 397~460)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 아사나(阿史那)5백 집을 데리고 유연(柔然)에게로 달아났다. 대대로 금산(金山 : 알타이산) 남쪽에 살면서 유연(柔然)을 위해 대장장이 일(鐵工)을 하였다. 금산(金山 : 알타이산 곧 아이태산(阿爾泰山). 아이태는 몽고어로 금(), 황금을 뜻하니 알타이산은 금산(金山)이라고도 함) 모습이 투구(兜鍪) 꼴과 비슷하고 민간에서는 투구(兜鍪)를 불러 돌궐(突厥)이라 하니 이로 인해 호칭으로 삼았다.

隋書突厥之先平涼雜胡也姓阿史那氏魏太武皇帝滅沮渠氏阿史那以五百家奔蠕蠕世居金山之陽爲蠕蠕鐵工金山形似兜鍪俗號兜鍪爲突厥因以爲號。〉

더러는 말하기를 그 선조가 서해(西海) 가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웃 나라에게 멸망 당하여 남녀노소 없이 죄다 살육되었다. 그러나 한 아이만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다리를 베고 어깨를 잘라서 큰 못 안에 버렸다. 그때 어떤 한 마리 암승냥이(牝狼)가 고기를 물 때마다 그곳에 이르렀고 이 아이는 그 고기를 먹고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뒤에 마침내 승냥이와 교접을 하여 승냥이가 잉태하였다. 저 이웃 나라가 다시 사람을 시켜 이 아이를 죽이게 하였지만, 승냥이가 그 곁에 있었다. 이웃 나라 사신이 아이를 죽이려 할 때, 그 승냥이는 마치 신이 내린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서해 동쪽에 이르러 산꼭대기에서 그치었다. 그 산은 고창(高昌 : 지금 신장 위구르 고창구(高昌區)) 서북에 있었는데 아래에 동굴이 있어 승냥이가 그 안으로 들어가니 무성히 자란 풀들이 자란 고른 땅이 눈앞에 있어 사방으로 2백여 리가 펼쳐졌다.

그 뒤에 승냥이는 아들 열을 낳았는데 그들 중 하나인 성()이 아사나씨(阿史那氏)라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워 우두머리로 삼았다. 따라서 아문(牙門 : 관공서)에 낭두독(狼頭纛 : 승냥이 머리를 써서 만든 큰 깃발)을 세우니 뿌리를 잊지 않았음을 보이는 것이다.’ 한다.

或云其先國於西海之上為鄰國所滅男女無少長盡殺之至一兒不忍殺刖足斷臂棄於大澤中有一牝狼每啣肉至其所此兒因食之得以不死其後遂與狼交狼有孕焉彼鄰國者復令人殺此兒而狼在其側使者將殺之其狼若為神所憑歘然至於海東止於山上其山在高昌西北下有洞穴狼入其中遇得平壤茂草地方二百餘里其後狼生十男其一姓阿史那氏最賢遂為君長故牙門建狼頭纛示不忘本也。〉

 

10) 선비(鮮卑)

선비는 옛 유목민족으로 흉노의 뒤를 이어 몽고 초원을 차지하면서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동호(東胡) 붙이에 속하며 몽고어족이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 사이에 동호 붙이가 오환과 선비로 갈라지고서 선비는 흉노에 통치를 받았었다. 2세기 중엽에 단석괴(檀石槐)가 선비 부족들을 통합하였다가 3세기 전반에 가비능(軻比能)이 다시 통합하여 위()나라와 잘 지내다가 가비능이 죽자 각 부족이 각각 발전하여 중원에 왕조들과 화친을 맺기도 하고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516국 시대(304~439)에 선비족 각 부락이 모용씨 제연(慕容氏諸燕 : 곧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 후연(後燕), 남연(南燕), 서연(西燕))과 서진(西秦), 남량(南涼), 대국(代國)을 세웠다. 386년 탁발부(拓跋部)가 북위(北魏)를 세워 439년에 북방을 통일하였다. 534년에 북위가 분열하여 서위(西魏)와 동위(東魏)로 나뉘었다. 557년에 북주(北周)가 서위(西魏)를 대체하고 청해와 감숙(甘肅) 지역에서 선비모용(鮮卑慕容)의 갈래인 토곡혼(吐穀渾) 정권이 세워졌다가 663년에 토번(吐蕃)에게 병합되었다. 탁발의 한 갈래가 11세기에 서하(西夏)를 세웠다.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모두 열 한 나라에 달한다고 한다.

 

11) 유연(柔然)

(1) 유연(柔然)의 뿌리 (출처 : 어비자치통감강목(御批資治通鑑綱目) 22)

유연(柔然)은 북방민족의 한 나라 이름이다. 원위(元魏: 북위(北魏)) 신원제(神元帝, 탁발역미(拓跋力微) 재위: 219-277) 말기에 약탈 기사(騎士)가 한 노비를 잡았는데 (노비는 머리카락을 밀거나 마을 풍속이 머리를 밀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머리카락이 비로소 눈썹만치 자랐을 때 (그 이름을 잊어버려) 그 주인이 이 노비에게 이름()을 붙여주어 목골려(木骨閭)’라 하였다. 대체로 목골려(木骨閭)는 그 민족 말로 까까머리(首秃)’이다. ‘목골려(木骨閭)’유구려(郁乆閭)’는 소리가 서로 가까워서 씨()를 삼았다. 그 아들 련록회(車鹿㑹)가 씩씩하고 굳센 데에 이르러 처음으로 부족 무리가 생겼고 이때부터 유연(柔然)’이라 불렀다. 위 태무제(魏 太武帝 재위 423-452)가 그 무지한 모습이 꼬물거리는 곤충과 닮았다고 해서 유유(蠕蠕)라 이름 붙였다.

御批資治通鑑綱目 卷22 柔然北狄國名 元魏 神元帝末 掠騎得一奴 髪始齊眉 其主字之 曰木骨閭 葢木骨閭 虜語 首秃也 木骨閭與郁乆閭音相近 因以為氏 至其子車鹿㑹雄健 始有部衆自號柔然 魏太武帝 以其無知狀類動蟲 故改其號曰蠕蠕也

(2) 유연의 위치

유연은 동호(東胡)의 후손이다. ()은 유구려씨(郁久閭氏)이고 물과 풀을 따라 가축들을 친다. 그 서쪽은 언기(焉耆, 얀키, 카라샤르 (Qarasheher), 타림분지 내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에 토하라인 나라)의 땅이고 동쪽은 고조선의 땅이며 북쪽은 사막을 건너 한해(瀚海 : 그 위치가 바이칼또는 준갈이분지(准噶尔盆地)’라는 몇 가지 주장들이 있다)를 끝으로 두었고 남쪽으로는 대적(大磧, 령북사막(岭北沙漠), 지금 몽고 고원 대사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출처 : 위서(魏書))

魏書/103 蠕蠕東胡之苗裔也姓郁久閭氏...隨水草畜牧其西則焉耆之地東則朝鮮之地北則渡沙漠窮瀚海南則臨大磧.

유연(柔然)이 가장 흥성한 때는 대략 5세기 초기로그 세력이 대막(大漠, 곧 몽고고원이라 함) 남북에 두루 미쳤다. 북쪽으로는 바이칼호(貝加爾湖) 가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음산(陰山) 북쪽 기슭,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대흥안령(大興安嶺)에 이르러 그곳 지두우(地豆于) 민족과 인접하였으며 동남쪽으로는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내몽고에 있고 요하(遼河)의 정통 수원이라 함)의 고막해(庫莫奚)와 거란(契丹)을 이웃하였고 서쪽 먼 변경은 준가르분지(准噶爾盆地, 신강 북부)와 이리하(伊犁河) 유역에까지 미쳤고 한때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에 들어가 천산(天山) 남쪽 기슭에 사는 여러 나라를 복속시켰다 한다. 지두우(地豆于)는 조아하(洮兒河)와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사이에서 유목 생활하던 겨레이다. 지두칸(地豆干)이라고도 하니 위서(魏書)지두우(地豆于國)은 실위(失韋, 室韋) 서쪽 천여 리에 있다. 소와 양이 많고 훌륭한 말을 내며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오곡(五穀)이 없으며 고기()와 타락()만을 먹는다.’ 하였다. (地豆于國,在失韋西千餘里多牛羊,出名馬,皮爲衣服,無五穀,惟食肉酪) 조아하(洮兒河)는 흥안맹(興安盟) 경내와 길림성(吉林省) 서북쪽에 있다. 발원지는 내몽고 대흥안령(大興安嶺) 아이산(阿爾山) 동남이다. 흑룡강 수계인 송화강(松花江) 서쪽 수원 눈강(嫩江)으로 유입된다.

실위(室韋)는 시위(豕韋), 실위(失韋), 실위(失圍)라고도 쓴다. 북위(北魏 386-534) 때 역사책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거란(契丹)과 같은 붙이이다. 흥안령(興安領)을 경계로 그 남쪽은 거란(契丹)이라 하고 그 북쪽은 실위(室韋)라 부른다 한다. 실위(室韋)의 주요 활동 지역은 지금에 흑룡강 중상류 쪽과 눈강(嫩江) 유역이다.

(3) 유연(柔然)의 겨레들

동호선비(東胡鮮卑)의 직속 후예이다. 연연(蠕蠕), 예예(芮芮), 여여(茹茹), 유연(蝚蠕), 단단(檀檀)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북위(北魏)에서는 종종 흉노(匈奴)라느니, 귀방(鬼方)이라느니, 흉노(凶奴)라느니, 험윤(獫狁)이라느니, 북로(北虜), 또는 북적(北狄)이라고도 기록하였다 한다. 유연(柔然)이 잘 알려진 이름이고 그 뜻은 똑소리(聰明) 난다, 슬기롭다(賢明)’, 또는 예의, 법칙이고 더러는 알타이어에 '이국인(異國人)'이나 '쑥(艾草)'이라는 뜻으로도 보고 있다고 한다. 연연(蠕蠕)은 북위(北魏)의 왕 척발도(拓跋燾 424452)가 유연(柔然)에 창피를 주기 위해 바꾼 이름이라 하니 연연(蠕蠕)은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말한다.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사이에 몽고 초원에서 흉노와 선비를 이어 떠오른 부족 규모의 칸국(汗國)이다. 최고 통치 부락의 중심부인 가칸(可汗, 유연 말로 우두머리, 임금이란 뜻) 욱구려씨(郁久闾氏)의 부락은 선비족의 한 갈래이다.

역사책에는 유연의 근원이 동호(東胡)나 흉노(匈奴) 또는 대위(大魏 : 조조의 위나라 220-265)에서 유연의 선조가 나왔다고 한다. 북위(北魏)가 중원을 통일하는 동안 유연은 막북 지역을 통일하였다. 그 나라 이름은 유연 칸국(柔然汗國)인데 이때 60여 성씨(姓氏)들을 거느렸다 하니 유연의 겨레붙이와 부락에 욱구려씨(郁久閭氏), 사려린씨(俟呂鄰氏), 이면씨(爾綿氏), 약돌린부(約突鄰部), 아복간씨(阿伏幹氏), 흘해부(紇奚部), 자악씨(胏渥氏)가 있었고 동호선비(東胡鮮卑)에 속하는 붙이로 탁발씨(托跋氏), 구돈씨(丘敦氏), 무로진씨(無盧真氏), 수격간씨(樹格幹氏), 위지씨(尉遲氏), 곡혼씨(穀渾氏), 필루씨(匹婁氏), 물지연씨(勿地延氏), 막나루씨(莫那婁氏), 질두혼씨(叱豆渾氏), 고욕관씨(庫褥官氏), 온분씨(溫盆氏), 수려씨(樹黎氏), 오씨(烏氏)가 있었다. 칙륵(敕勒 : 곧 정령(丁零) 겨레. 바이칼에서부터 퍼져 나옴)에 속한 붙이로 을전씨(乙旃氏), 곡률씨(斛律氏), 부복라씨(副伏羅氏), 달부간씨(達簿幹氏), 악인씨(屋引氏), 타막고씨(他莫孤氏), 기근씨(奇斤氏), 읍복리씨(泣伏利氏)와 동쪽 고거(高車) 들이 있었고 흉노의 기타 부락에 속하는 붙이로 발야계부(拔也稽部, 하술야골부(賀術也骨部), 오락란씨(烏洛蘭氏)가 있었다. 돌궐(突厥)에 속하는 것에 아사나씨(阿史那氏)가 있고 서역(西域)에 속하는 것에 용씨(龍氏), 고씨(高氏), 희리인(希利垔), 형기지라회(邢基祗羅回), 후의인(侯醫垔)이 있었다 한다.

*욱구려씨(郁久閭氏) : 유연(柔然) 겨레의 귀족 성씨. 그 선조는 선비(鮮卑)에서 나온 탁발의로(拓跋猗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