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이 용상은 바로 내 차지하고 생각되었다. 형제는 용상 위에 걸터앉아 기세를 올렸다.
“이 용상아, 저 용상아, 임재 모른 용상이로고나.”
눈을 부릅뜨고 용상을 힘껏 흔들었더니, 그만 용상의 왼쪽 뿔이 무지러져서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법으로 우리나라 임금님은 왼쪽 뿔이 없는 용상에 앉게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천지왕이 왔다. 귀동자 형제를 맞은 왕은 희색이 만면했다. 이제야 세상의 혼잡한 질서가 바로잡힐 때가 왔다고 생각되었다. 천지왕은 곧 이승은 형인 대별왕이, 저승은 동생인 소별왕이 차지해서 질서를 바로잡아 통치하도록 했다.
이승은 누구나 욕심이 나는 곳이었다. 소별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승을 차지하고 싶었다.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옵서, 우리 예숙이나 제꺼근 이기는 자 이승법을 ᄎᆞ지ᄒᆞ곡, 지는 자랑 저승법을 ᄎᆞ지ᄒᆞ기 어찌하오리까?(우리 수수께끼나 해서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자는 저승을 차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서 걸랑 기영 ᄒᆞ라(어서 그것일랑 그리 해라).”
동생의 제안을 형은 곧 수락했다. 수수께끼는 형부터 시작했다.
“설운 아시야, 어떤 낭은 주야펭생 섶이 아니 지곡, 어떤 낭은도 섶이 지느니?(설운 아우야, 어떤 나무는 주야 평생 잎이 아니 지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지느냐?)”
“설운 성님아, 오곡이라 딩돌막이 ᄌᆞ른 낭 주야펭생 섶이 아닌 지곡, 오곡이라 게구린낭 주야펭생 섶이 지옵네다(설운 형님아, 오곡이란 것은 마디가 짤막한 나무는 주야평생 잎 아니 지고, 속이 빈 나무는 잎이 집니다).”
“설운 동싱 모른 말 말라. 청대 ᄀᆞ대는도 ᄆᆞ디ᄆᆞ디 구리여도 청댓 섶이 아니 진다(설운 동생 모른 말 말아라. 청대 갈대는 마디마디 속이 비어 있어도 잎이 아니 진다).”
이 말에 동생이 져 간다. 형은 다시 물었다.
“설운 아시야, 어떤 일로 동산엣 풀로 메가 ᄌᆞᆯ라지고, 굴렁엣 풀은 메가 질어지느냐?(설운 아우야, 어떤 일로 언덕에 풀은 성장이 나쁘고, 낮은 쪽에 풀은 무럭무럭 잘자라느냐?)”
“설운 성님아, 이삼 ᄉᆞ월 봄샛비가 오더니, 동산엣 흑은 굴렁데레 가난, 동산에 풀메가 ᄌᆞᆯ라지고 굴렁에 풀은 메가 질어집네다(설운 형님아, 이삼 사월 샛바람[東風]에 봄비가 오더니, 언덕의 흙이 낮은 쪽으로 내려가니, 언덕의 풀은 잘 자리지 않고 낮은 데의 풀이 잘 자랍니다).”
“설운 동싱아, 모른 말을 말라. 어떤 일로 인간 사름은 머리는도 질어지고 발등엣 털이야 ᄌᆞ르느냐?(설운 동생아, 모르는 말 말아라. 어떤 일로 사람은, 머리털은 길고 발등의 털은 짧으냐?)”
이것도 동생이 졌다. 동생은 다시 꾀를 생각해 냈다.
“옵서, 설운 성님아. 계건 꼿이나 싱겅 환생ᄒᆞ고, 번성ᄒᆞ는 자랑그네 이싱법을 들어사곡, 검뉴울꼿 피는 자랑 저승법을 들어사기 어찌하오리까?(설운 형님아, 그렇거든 꽃이나 심어서 잘 번성하는 자는 이승을 차지해 들어서고, 이울어 가는 꽃이 피는 자는 저승을 차지해 들어서는 게 어떻습니까?)”
형은 곧 이를 수락했다. 형제는 지부왕(地府王)에 가서 꽃씨를 받아다가 은동이.놋동이에 꽃씨를 각각 심었다. 꽃은 움이 돋아났다. 형이 심은 꽃은 나날이 자라서 번성한 꽃이 되어 가는데, 동생이 심은 꽃은 이울어 가는 꽃이 되어 갔다. 그래로 놓아 두면 동생이 질 게 뻔했다. 동생은 얼른 묘책을 생각해 냈다.
“옵서, 성님. ᄌᆞᆷ 심백이나 자 보기 어찌ᄒᆞ오리까?(형님, 누가 잠을 잘 자느랴, 경쟁해 봄이 어떻습니까?)”
“어서 걸랑 기영 ᄒᆞ라(어서 그것일랑 그리 해라).”
형제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동생은 눈을 감고 자는 척 하다가 형이 깊이 잠들었음을 확인하고 얼른 앞의 꽃을 바꾸어 놓았다.
“설운 성님 일어납서. ᄌᆞ심도 자십서(설운 형님 일어나십시오. 점심도 잡수십시오).”
동생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고 보니, 형 앞의 꽃은 동생 앞에 가고, 동생 앞의 꽃은 형 앞에 가 있다. 형이 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승 차지는 동생에게 넘겨야만 하게 되었다. 형은 저승을 차지해 가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설운 아시(아우) 소별왕아, 이승법이랑 ᄎᆞ지헤여 들어서라마는 인간에 살인.역적 만ᄒᆞ리라(많으릴라). 도독(도둑)도 만ᄒᆞ리라. 남ᄌᆞᄌᆞ식(남자자식) 열다섯 십오 세가 되며는, 이녘(자기) 가속(家屬) 놓아 두고 놈(남)의 가속 울러르기(우러르기)만 ᄒᆞ리라. 예ᄌᆞ식(여자자식)도 열다섯 십오 세가 넘어가민(가면), 이녘 냄편(남편) 놓아두고 놈의 냄편 울러르기만 ᄒᆞ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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