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별왕이 이승을 내려 서 보니 과연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하늘에는 해도 둘, 달도 둘이 떠서, 만백성들이 낮에는 더워 죽어가고, 밤에는 추워 죽어 가고 있었다. 초목과 새.짐승 들이 말을 하여 세상은 뒤범벅이고, 귀신과 산사람이 분별이 없어 귀신 불러 산사람이 대답하고, 산사람 불러 귀신이 대답하는 판국이었다. 거기에다 역적.살인.도둑이 많고, 남녀 할 것 없이 제 남편. 제 부인을 놓아 두고 간음이 퍼져 있는 것이다.
소별왕은 곤란해졌다. 이 혼란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생각 끝에 형에게 가서 이 혼란을 바로잡아 주도록 간청하기로 했다.
마음 착한 형은 동생의 부탁을 들어 도와 주기로 했다.
이승에 내려와서 우선 큰 혼란을 정리해 갔다. 먼저 천근 활과 천근 살을 준비해서 하늘에 두 개씩 떠 있는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는 것이다. 앞에 오는 해는 남겨 두고 뒤에 오는 해를 쏘아 동해 바다에 던져 두고, 앞에 오는 달은 남겨 두고 뒤에 오는 달을 쏘아서 서해 바다에 던졌다. 그래서 오늘날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 뜨게 되어 백성들이 살기 좋게 된 것이다.
초목과 새.짐승이 말하는 것은 송피(松皮) 가루로써 눌렀다. 송피 가루 닷 말 닷 되를 세상에 뿌리니, 모든 금수.초목의 혀가 굳어져서 말을 못하고 사람만이 말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귀신과 산사람의 분별을 짓는 일이었다. 이것은 우선 그 무게로써 가르기로 했다. 저울을 가지고 하나하나 달아서 백 근이 차는 놈은 인간으로 보내고, 백 근이 못 되는 놈은 귀신으로 처리하였다.
이로써 자연의 질서는 바로잡혔다. 형은 그 이상 더 수고를 해 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인간세상엔 역적.살인.도둑.간음이 여전히 많은 법이고 저승법은 맑고 공정한 법이다. (조천면 조천리 박수 정주병(鄭周柄) 구연(口演)에서)
주)이 신화는 큰굿의 맨 처음 제차(祭次)인 초감제 때 불려진다. 초감제는 모든 신들을 일제히 청해 들여 제상에 앉히고 음식을 흠향(歆饗)토록 하고 ...심방(巫)은 제상 앞에 앉아 장구를 치면서 위의 신화를 노래하고, 이어서 삼황(三皇).오제(五帝).단군(檀君).기자(箕子).... 이런 식으로 역사시대 이야기로 내려와, 다시 굿하는 장소의 지리적 설명으로 들어간다.
위의 신화 중 특히 천지왕이 총맹부인과 베필을 맺는 이후의 이야기를 ‘천지왕 본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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