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구)려인 함보(函普)가 완안부 사람이 되다
함보(函普)라는 사람은 본디 고(구)려에서 살았는데 나이 60이 넘어 그의 형 오고내(烏古鼐)와 갈라져 아우 박화리(博和哩)와 함께 생여직(生女直 생여진) 무리로 가서 완안부(完顔部)의 포이한(布爾罕) 물가에서 지냈다. [형 오고내라는 이름은 함보(函普)의 6대 자손인 경조(景祖)의 이름이기도 하다. 오고내(烏古鼐 또는 烏古迺)이니 곧 이 사람이 금나라의 기초를 다진 완안부 제6대 수령이다.]
通鑑續編卷九 : 函普者始居高麗 年六十餘 别其兄烏古鼐 而與弟博和哩適生女直 居于完顔部布爾罕水涯
시간이 퍽 흘러 완안부 중에 남의 가문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었다. 두 가문이 서로 싸우는데 사람들이 해결할 수가 없어서 완안부 사람이 함보(函普)에게 말하기를 “만약 우리 부족 사람들을 위해 이 원한을 풀어서 두 가문에게 서로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할 수가 있다면, 완안부에 슬기로운 여인이 있어 나이 60이 되도록 아직껏 결혼을 못 하고 있는데, 이 상대를 짝으로 맞아서 그대로 같은 부족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였다
乆之 完顔部人有殺他族人者 兩族交鬭 衆莫能解 完顔部人謂函普曰 若能為部人解此怨 使兩族不相殺 部有賢女 年六十而未嫁 當以相配 仍為同部
함보(函普)가 “그렇게 하겠다.” 하고 마침내 분란이 난 집으로 가서 이들을 달래었다. “한 사람을 죽였지만 싸우기만 하고 풀지 않는다면 손해와 상처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부족 내에서 다만 소란을 일으킨 주동자 한 사람만 처벌하고, 물건으로 그대에게 속죄의 뜻을 들인다면 앞으로 싸울 일이 없게 되고 나아가 이익을 얻으리니, 그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원한이 있는 집이 이를 따랐다. 마침내 함보(函普)가 약속을 받기 위해 말하기를 “대체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한집안 사람들에게서 말 10쌍, 어미 소(牸牛) 10마리, 황금 6량(兩)을 거두어서 죽이거나 해친 집에 준다. 그러면 그 즉시 두 집안은 얽힌 게 풀어지고 사사로운 싸움은 없어진다.” 하였다. 그 집안 무리가 “약속대로 삼가겠다.” 하였다. 여진의 풍속에 사람을 죽이면 말과 소 30마리로 갚아주는데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가해자 집안이 약속대로 다 갚아주자 부족의 무리가 함보를 믿고 마음으로 복종하여 푸른 소(青牛) 한 마리로 사례하였고 아울러 60살 된 여인에게 장가드는 것을 허락하였다. 함보(函普)는 곧장 푸른 소를 혼례의 예물로 삼아 여자 집안에 들이고 아울러 그 재물을 가졌다. 뒤에 아들 둘을 낳았으니 맏이는 오로(烏嚕)라 하였고 둘째는 알로(斡魯)라 하였다. 딸 하나는 탁극구색파(卓克舊索巴)라 하였다. 함보(函普)는 마침내 완안부(完顔部)의 사람이 되었다. [함보(函普)의 아내 나이가 60이라 함은, 추측하건대 특이하게도 나이 60에도 달거리를 했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완안부 전통의 ‘나이를 세는 법’이 있었다고 본다.]
函普曰諾 乃往諭之曰 殺一人而鬬不解 損傷益多 曷若止誅首亂者一人部内 以物納償汝 可以無鬬 而且獲利焉 怨家從之 乃為約曰 凡有殺傷人者 徴其家人口一 馬十偶 牸牛十 黄金六兩 與所殺傷之家 即兩解不得私鬭 衆曰謹如約 女真之俗 殺人償馬牛三十 自此始 既備償如約 部衆信服之 謝以青牛一 并許歸六十之女 函普即以青牛為聘禮而納之 并得其資産 後生二男 長曰烏嚕 次曰斡魯 一女曰卓克舊索巴 遂為完顔部人
2. 함보(函普)의 손자 수혁(綏赫)이 집을 짓고 정착 생활하는 법을 만들다
오로(烏嚕)가 파합(巴哈)을 낳고 파합(巴哈)이 수혁(綏赫)을 낳았다. 흑수(黒水)의 풍속은 가옥이 없이 집이라고는 산과 물을 등지고서 땅을 파고 그 위에 나무 들보를 놓고 흙으로 덮었다. 여름이면 밖으로 나와 물과 풀을 따라서 지내고, 겨울이면 움집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았으니 옮겨 다닌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 마침내 수혁(綏赫)이 바닷가로 이사해 살며 밭갈이와 농지 개간, 그리고 곡식을 심고 기르는 일에 힘을 쏟았다. 처음으로 집을 지어 마룻대와 지붕을 짓는 법을 마련하였다. 사람들이 그 땅을 부르되 액안춘눌격이액(額安春訥格爾額)이라 하였으니 눌격이(訥格爾)란 ‘집에서 살다(居室)’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드디어 물 옆에다 거주지를 안정시키게 되었다.
烏嚕生巴哈 巴哈生綏赫 黒水俗 無室廬 負山水 坎地梁木其上 覆以土 夏則出 隨水草以居 冬則入 處其中 遷徙不常 綏赫乃徙居海上 務耕墾樹藝 始築室 有棟宇之制 人呼其地 為額安春訥格爾額 訥格爾者 漢語居室也 自此以後 遂定居水之側矣
3. 함보(函普)의 증손자 서로(舒嚕)가 완안부에 법규(條教)를 세우다
수혁(綏赫)이 서로(舒嚕)를 낳았다. 서로(舒嚕)는 굳세고 억세며 질박하고 곧은 사람이다. 생여직(生女直)에는 계약 문서라는 게 없어서 약속을 검사하고 제재할 길이 없었다. 서로(舒嚕)가 조금씩 조교(條教 : 법규)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남자들과 부족 사람들이 모두 원하지 않고 장차 서로(舒嚕)를 묻어 죽이려 하였다.
綏赫生舒嚕 舒嚕剛毅質直 生女直無書契 約束不可檢制 舒嚕欲稍立條教 諸父部人皆不欲將坑殺之
서로(舒嚕)가 잡히자 작은아버지 석리고(錫里庫)가 서둘러 가서 활을 당겨 그 무리 안으로 화살을 쏘아 서로(舒嚕)를 잡고 있던 자를 겁을 주니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서로(舒嚕)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조금씩 조교(條教 : 법규)로 부족이 다스려지니 부락은 점차 강성해졌다.
已被執 叔父錫里庫亟往 彎弓注矢射于衆中 刼執者 皆散走 舒嚕得免 由是稍以條教為治 部落寖强
요(遼) 나라가 특리곤(特哩衮)에게 이 지역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여러 부족은 여전히 조교(條教 : 법규)를 기꺼이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서로(舒嚕)가 무력을 과시하며 백산(白山 : 지금의 백산시)의 청령(青嶺)에 이르렀다. 순응하는 사람은 어루만지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쳤다. 서로(舒嚕)가 향하는 곳마다 이기고 승리하였는데 파라제촌(巴喇濟村)으로 돌아와서 죽었다.
서로(舒嚕)의 시신을 담은 관을 싣고서 가다가 해란수(海蘭水)에 이르렀을 때, 오릉아부(烏凌阿部) 사람 석형(錫馨)과 완안부(完顔部) 사람 악화(鄂和)가 함께 나와 길에서 맞이하더니 그 운구를 공격하여 빼앗고는 내처 소리 높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서로(舒嚕)를 능력이 있다고 여겨 그를 뒤미쳐 드높이는데 내가 지금 그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였다. 서로(舒嚕)의 무리가 달아나 불목단(佛穆丹)에게 알렸다. 불목단이 군사를 모아 추격해 내어 그들과 싸워 다시 운구를 찾아 돌아왔다.
遼以特哩衮官之 諸部猶不肯用條教 舒嚕耀武 至于青嶺白山 順者撫之 不從者伐之 所向克捷 還至巴喇濟村而死 載柩以行 至海蘭水 烏凌阿部人錫馨與完顔部人鄂和 共出邀于路 攻而奪其柩 因揚言曰 汝輩以舒嚕為能而推尊之 吾今得之矣 舒嚕之徒奔告于佛穆丹 募兵追及 與戰復得柩而還
서로(舒嚕)의 시대에 생여진(生女真)이 조금씩 조교(條教 : 법규)를 수용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글자와 관공서를 만들지 못하여 세월이라든지 그믐과 초하루의 때를 알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 나이의 수명이 긴지 짧은지 따져볼 근거가 없었다.
舒嚕之世 生女真稍用條教 然尚未有文字官府 不知嵗月晦朔 是以 年夀修短莫得而考焉
4. 함보(函普)의 6대인 오고내(烏古鼐)가 금나라의 기초를 다지다
서로(舒嚕)가 오고내(烏古鼐)를 낳았는데 오고내는 여러 부족을 자기에게 붙게하여 그들을 부리는 데 탁월하였다. 백산(白山)의 혈혁(頁赫), 도문(圖們) 변경의 찰란찰복고륜(扎蘭扎卜古倫) 따위들과 오국(五國)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오고내(烏古鼐)의 명을 들었다.
舒嚕生烏古鼐 烏古鼐能役屬諸部 自白山頁赫 圖們邉 扎蘭扎卜古倫之屬 以至五國之長 皆聴命
때마침 요(遼)의 백성들이 여진으로 도망쳐 들어왔는데 요가 혁로림아(赫嚕林牙 : 임아는 요나라 관직 이름)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서 달아난 백성들을 수색하게 하였다.
會遼之民逃入于女直 遼使赫嚕林牙將兵索逋民
그러나 오고내(烏古鼐)는 요나라 군대가 깊이 들어와 그 산천의 험난한 곳과 쉬운 곳이 어딘지 터득하여 어쩌다가 장차 자신의 땅을 도모할까 두려웠다. 마침내 꾀를 써서 혁로림아(赫嚕林牙)를 만류하며 말하기를 “군사들이 만약에라도 깊이 들어간다면 여러 부족은 반드시 놀라 동요되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달아난 가구라도 잡을 수가 없으리니 병사들이 마을 깊이 들어가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하였다. 혁로가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드디어 그 군대를 멈추게 하였다. 오고내가 혁로와 함께 자발적으로 길을 떠나 달아난 요나라 백성들을 수색하였다.
烏古鼐恐遼兵深入 得其山川險易 或將圖之 乃以計止之曰 兵若深入 諸部必驚擾 變生不測 逋户亦不可得 非計也 赫嚕然之 遂止其軍 與赫嚕自行索之
오고내(烏古鼐)가 석형(錫馨)에게 원한이 있어 드디어 석형이 해동청로(海東青路)를 막고 끊었다고 거짓을 지어 요(遼) 나라에 알렸다. 요나라 임금이 사람을 보내 석형을 꾸짖자 석형(錫馨)이 요나라에 들어가 그 임금을 뵈었는데 임금이 이를 계기로 석형을 변방 땅에 유배를 보냈다. 얼마 있다가 오국(五國)의 불녕부 절도사(佛寧部 節度使) 파리미(巴哩美)가 요나라를 배반하여 응로(鷹路)가 막히자 요나라 장차 토벌군을 보낼 판이었다. 오고내(烏古鼐)가 요나라 군대가 그 땅에 깊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어 요나라에 아뢰기를 “저 가히 계책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을 만약에 군대를 쓴다면 반란군들은 반드시 험지로 달아나서 짧은 세월에 평정할 가능성은 그르칠 것입니다.” 하니 요나라가 이 의견을 따랐다.
烏古鼐怨錫馨 乃詭以錫馨阻絶海東青路告于遼 遼主遣使責讓錫馨 錫馨入見遼主 因留之于邉地既而五國佛寧部節度使巴哩美叛遼 鷹路不通 遼将致討 烏古鼐畏遼兵入其境 乃告遼曰 彼可計取也 若用兵必將走險 非嵗月可平也 遼從之
오고내(烏古鼐)가 거짓으로 파리미(巴哩美 또한 발을문(拔乙門), 포섭(蒲聶) 또는 분노리부 절도사(盆奴里部節度使))와의 관계를 좋게 하려는 까닭에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볼모로 잡혀놓고서 불시에 파리미(巴哩美)를 습격하여 사로잡아 요나라 임금에게 헌납하였다. 요나라 임금이 오고내를 침전(寢殿)에까지 불러 뵈였고 그에게 잔치를 열어주며 작위의 등급을 더해 생여진부족절도사(生女眞部族節度使)에 제수하고 장차 도장을 새겨 주려고 하였는데 오고내(烏古鼐)가 요나라의 벼슬자리에 달리고 싶지 않아 사양하여 말하기를 “훗날을 기다려 벼슬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그러나 요임금이 끝내 그에게 벼슬을 주고자 하여 사신을 보내어 가서 그를 설득하게 하였는데 오고내(烏古鼐)가 속임수를 써서 부족 사람들에게 “도태사(都太師: 이는 절도사의 다른 이름인데 오고내가 뒤에 절도사가 되었기에 그에 대한 존칭인 듯싶다)가 만약 관인(官印)을 받고서 이름을 벼슬 장부에 달아둔다면 부족 사람들은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다.”라고 소리쳐 말하게 하자 요나라 사신이 마침내 돌아갔다.
烏古鼐因陽與巴哩美為好而以妻子為質 襲而擒之 獻于遼主 遼主召見于寢殿 燕賜加等 授生女真部族節度使 將刻印與之 烏古鼐不肯繫遼籍 辭曰 請俟他日 遼主終欲與之 遣使往諭 烏古鼐詭使部人揚言曰 都太師若受印繫籍 部人必殺之 遼使乃還
오고내(烏古鼐)가 절도사(節度使)가 되었을 때, 관리들의 기강이 점차 서게 되었다.
烏古鼐既為節度使 有官屬紀綱漸立矣
생여진(生女真)은 옛날에 철(鐡)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고내의 시대에 이웃 나라들에 갑옷과 투구를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재물을 쏟아 값을 후하게 쳐서 그들과 무역을 하였다. 나아가 부족 사람들 모두 이 물건들을 사두도록 명하였고 확보한 철(鐡)이 이미 넘쳐났고 이에 따라 활과 화살을 다듬고 기계들을 갖추니 병력이 점차 세력을 떨쳤고 앞뒤로 완안부에 붙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生女真舊無鐡 隣國有以甲胄往粥者 必傾貲厚價 以與貿易 且令族人皆售之 得鐡既多 因之以修弓矢 備器械 兵勢稍振 前後願附者衆
오고내(烏古鼐)의 사람됨은 너그럽고 어질어 남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었으며 평생토록 기쁘거나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았고 재물을 물리어 남에게 주는 데에 인색하거나 아까워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더러는 오고내(烏古鼐)를 꺼리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탐하였다. 마시고 먹는 것이 도를 지나치니 사람들이 더러는 그를 화란(和鑾)이라 불렀는데 화란(和鑾)이란 자오(慈烏)이다. 북방에 이 새가 나오는데 그 꼴은 큰 닭과 같고 물건을 잘 쪼아서 만약 배가 주리는데 먹지를 못하면 모래와 자갈이라도 먹는다. 오고내가 자기를 비방하는 소문을 들어도 개의치 않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그를 믿고 복종하였다.
烏古鼐為人寛恕 能容物 平生不見喜愠 推財與人 無所吝惜 人或忤之 亦不念 然嗜酒好色 飲㗖過 人或呼之為和鑾 和鑾者慈烏也 北方有之 狀如大鷄 善啄物 若飢不得食 雖砂石亦㗖之 烏古鼐聞其訕 亦不介意 故人益信服焉
이때 이르러 오국(五國)의 목연부(穆延部) 소혈패륵(蘇頁貝勒)이 요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응로(鷹路)가 막히니 오고내(烏古鼐)가 이를 정벌하였는데 두 겹으로 된 갑옷을 입고 무리를 이끌고 힘을 다해 싸우니 소혈(蘇頁)이 패배하여 파라밀특락(巴喇宻特濼)으로 달아났다.
이때는 바야흐로 10월이었는데 얼었던 강물이 갑자기 풀려 소혈(蘇頁, 또는 사야(謝野))이 군대를 통솔할 수가 없어 무리가 모두 그 대열이 무너져 떠났다. 오고내(烏古鼐) 역시 돌아오다가 길에서 도망한 군사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험하고 가파른 곳에 잠복하고서 길을 막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거하여 싸웠다. 오고내가 부락에 이르렀을 무렵 너무 피곤했지만, 곧장 요나라 국경으로 가서 장차 요나라 변방 장수 달로갈(達嚕噶 또는達嚕骨)을 만나 랍림(拉林 : 또는 來流水. 지금 길림성 송원시)에서 반란군을 무찌른 공적을 자세히 아뢰려 하였다. 그러나 랍림수(拉林水)로 이르렀을 때 병이 나서 돌아가 집에서 죽었다. 나이 54세였다.
至是 五國穆延部蘇頁貝勒畔遼 鷹路不通 烏古鼐伐之 被重鎧 率衆力戰 蘇頁敗走巴喇宻特濼 時方十月 氷忽解 蘇頁不能軍 衆皆潰去 烏古鼐亦還 道遇逋亡 要遮險阻 晝夜拒戰 比至部已憊 即往遼境 將見遼邉將達嚕噶 自陳敗拉林之功 行次拉林水 有疾而復 卒于家 年五十四
아들 아홉을 두었는데 각각 화탁(和卓)이라하고 화리포(和哩布)라고 하고 갈순(噶順)이라하고 파랍숙(頗拉淑)이라하고 역격(英格)이라 하고 혁색본(赫色本)이라 하고 만비(滿丕)라고 하고 아리한(阿里罕)이라 하고 문도혼(們圖琿)이라 하였다. 오고내가(烏古鼐) 한번은 “화탁(和卓)은 부드럽고 스며드는 사람이고 화리포(和哩布)는 식견과 도량이 있는 사람이다.” 하였으니, 그가 죽고서 화리포(和哩布)가 뒤를 이었다. (통감속편(通鑑續編) 9권)
有子九人 曰和卓 曰和哩布 曰噶順 曰頗拉淑 曰英格 曰赫色本 曰滿丕 曰阿里罕 曰們圖琿 烏古鼐嘗言和卓柔和 和哩布有器識 故其卒也 和哩布嗣之
○곁드린 자료
*파도로고륜(巴圖魯古倫) : 만주어(滿洲語)이니 파도로(巴圖魯)는 ‘용맹(勇)’을 뜻한다. 고륜(古倫)은 ‘나라(國)’를 뜻한다. 발돌고륜(拔突古倫)이라고도 쓴다.
巴圖魯古倫 〈滿洲語 巴圖魯 勇也 古倫 國也 卷十五 作拔突古倫〉
*고륜패륵(古倫貝勒) : 고륜(古倫)은 ‘나라(國)’라는 뜻이다. 패륵(貝勒)은 ‘무리의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국륜발극열(國論勃極烈)이라고도 쓴다.〉 古倫貝勒 〈古倫 國也 貝勒管理眾人之稱 卷二 作國論勃極烈〉
*혈혁(頁赫) : 야회(耶悔), 또는 야괄(耶刮)이라고도 쓴다. 부족이름이다.
頁赫 〈卷一 作耶悔 卷一百三十四 作耶刮 並從八旗姓氏通譜改正 部名〉
*도문(圖們) : 통문(統門) 또는 타만(駝滿)이라고도 쓴다. 부족이름이다.
圖們 〈卷一 作統門 卷六十五 作駝滿 並從八旗姓氏通譜改正 部名〉
*해란(海蘭) : 만주어이니 ‘느릅나무(榆樹)’를 뜻한다. 갈라(曷懶)라고도 쓴다.
海蘭〈滿洲語 榆樹也 原作曷懶 今改正〉
*찰란(扎蘭) : 만주어이니 ‘대오(隊伍)’를 뜻한다. 야라(耶懶)라고도 쓴다.〉
扎蘭〈滿洲語 隊伍也 原作耶懶 今改正〉
*찰란(扎蘭) : ‘세대(世代)’를 뜻한다. 야라(耶懶)라고도 쓴다.
扎蘭 〈世代也 卷一 作耶懶 部名〉
*찰복고륜(托卜古倫) : 찰복(托卜)은 ‘바르다(正)’라는 뜻이다. 고륜(古倫)은 ‘나라(國)’라는 뜻이다. 토골륜(土骨論)이라고도 쓰니 부족이름이다.
托卜古倫 〈托卜 正也 古倫 國也 卷一 作土骨論 部名〉
*오릉하(烏凌阿) : 오림답(烏林答) 또는 오림달(烏林達)이라고도 쓴다. 부족이름이다.
烏凌阿 〈卷一 作烏林答 又作烏林達 併從八旗姓氏通譜改正 部名〉
*응로(鷹路) : 응로는 요(遼)나라 때 상경(上京) 임황부(臨潢府 : 지금 내몽임동진(內蒙林東鎮))을 말미암아 오국부(五國部)로 왕래하였던 교통 노선이다. 오국(五國)이 대단하게 산출해내는 매(鷹) 해동청(海東靑)으로 인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국부(五國部)는 지금 의란(依蘭) 동북쪽, 송화강과 흑룡강 하류 동쪽에서 바다에 이르는 일대에 있었다. 그 땅이 산이 높고 수풀이 빽빽하여 지형이 험준하고 매 해동청(海東靑)이 유명하다.
당시 상경(上京)에서 생여진(生女眞)과 오국부(五國部)로 가는 길이 서쪽 길(西路)과 남쪽 길(南路) 둘이 있었는데 서쪽길은 요나라 상경(上京)에서 장춘주(長春州 : 지금 길림성 전곽현)를 거쳐 동쪽으로 강을 건너 영주강(寧江州)에 도착한다. 그러면 지금의 송원(松原) 제1 송화강을 따라 곧장 흑룡강 하류 오국부(五國部)의 옛 땅에 이른다고 한다. 남쪽 길은 요 상경(上京)으로부터 요하(遼河)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신주(信州: 지금 길림성 회덕현 태가둔고성(泰家屯古城))과 황룡부(黄龍府 : 길림성 농안현성)을 지나 북쪽으로 송화강을 따라가면 흑룡강 하류가 나와 오국부 땅으로 통한다고 한다.
*파라밀〈특〉(巴喇宻〈特〉) : 몽고어이니 ‘저쪽 산(彼岍)’을 뜻한다. 발리매(㧞里邁)라고도 쓰니 얕은 물의 이름이다. 파로매(婆盧買) 또는 포로매(蒲蘆買)라고도 쓴다. 강물 이름이다. 【금사(金史) 알로전(斡魯傳)에 ‘파로매수(婆魯買水)’로 적혀있다.】
巴喇宻〈特〉 〈䝉古語 彼岍也 卷一 作㧞里邁 濼名 卷二 作婆盧買 卷六十七 作蒲蘆買 水名 併改〉【 斡魯傳作婆魯買水】
*포아밀하(布雅密河)는 곧 금사(金史)에 포로매수(蒲蘆買水)이니 또한 파로매(婆盧買), 파로매(婆魯買)라고도 쓰고 더러는 파로목(婆盧木)이라고도 쓰는데 물의 근원은 찰합이고산(察哈爾庫山)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73리(里)를 흘러 온가와붕(溫家窩棚) 동쪽을 거쳐 다시 동쪽으로 비스듬히 흘러 남쪽으로 14리(里)를 가다가 송화강(松花江)으로 들어간다. (흑룡강여도설(黑龍江輿圖說))
黑龍江輿圖說 : 布雅密河 即金史蒲蘆買 水亦作婆盧買 亦作婆魯買 或作婆盧木 源出察哈爾庫山 西南流七十三里 逕溫家窩棚東 又東迤南十四里 注松花江
*화탁(和卓) : ‘아름답고 곱다(美麗)’를 뜻한다. 핵자(劾者)라고도 쓰니 경조(景祖), 곧 오고내의 아들이다.
和卓 〈美麗也 卷一 作劾者 景祖子〉
*갈순(噶順) : 몽고어이니 ‘쓰다(苦)’는 뜻이다. 핵손(劾孫)이라고도 쓴다. 경조(景祖)의 아들이다.
噶順 〈䝉古語 苦也 卷一 作劾孫 景祖子〉
*서로(舒嚕) : ‘산호(珊瑚)’를 뜻한다. 석로(石魯) 또는 실로(實魯), 세로(世魯)라고도 쓴다. 소조(昭祖)의 이름이다.
舒嚕 〈珊瑚也卷一作石魯又作實魯又作世魯併改昭祖名〉
*화리포(和哩布) : ‘우리로 에워싸게 하다(令圏圍)’는 뜻이다. 핵리발(劾里鉢)이라고도 쓴다. 세조(世祖)의 이름이다.
和哩布 〈令圏圍也 卷一作劾里鉢 世祖名〉
*파랍숙(頗拉淑) : 파랄숙(頗剌淑)이라고도 쓴다. 알려진 뜻은 없다. 숙종(肅宗)의 이름이다.
頗拉淑 〈卷一 作頗剌淑 因無解義 但改字面 肅宗名〉
*영격(英格) : ‘장미과의 귀룽나무(稠李)’를 뜻한다. 영가(盈歌)라고도 쓰니 목종(穆宗)의 이름이다.
英格 〈稠李也 卷一作盈歌 穆宗名〉
*혁색본(赫色本) : ‘명(命)’을 뜻한다. 핵진보(劾真保)라고도 쓰니 경조(景祖)의 아들이다.
赫色本 〈命也 卷五十九 作劾真保 景祖子〉
*만비(滿丕) : ‘끈 매듭(繩結)’을 뜻한다. 마파(麻頗)라고도 쓰니 경조(景祖)의 아들이다.
滿丕 〈繩結也 卷五十九 作麻頗 景祖子〉
*아리한(阿里罕) : 아리합만(阿离合懣)이라고도 쓴다. 경조(景祖)의 아들이다. ‘옷에 격문을 바싹 붙이다(衣貼檄)’라는 뜻이다.
阿里罕 〈衣貼檄也 卷一 作阿离合懣 景祖子〉
*문도혼(們圖琿) : ‘우직하다(愚)’는 뜻이다. 만도가(謾都訶)라고도 쓴다. 경조(景祖)의 아들이다.
們圖琿 〈愚也 卷一作謾都訶 景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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