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진(女真) 말갈(靺鞨)

○금 시조 함보(函普)와 후손들, 그리고 완안부

by 쥐눈이 2023. 9. 15.

완안부(完顔部) : 완안부는 아륵초객(阿勒楚喀 : 지금 흑룡강성 아성(阿城)) 경계에 있으니 이곳은 성경통지 회령부(會寜府) 안출호(按出虎 : 지금 흑룡강 합이빈)에 대한 풀이 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살펴보면 금사본기(金史本紀)에 금()의 선조가 숙신(肅慎) 땅에 살았는데 그 땅에 혼동강(混同江), 장백산(長白山)이 있다. 혼동강(混同江)은 또한 흑룡강(黒龍江)이라고도 부르니 백산흑수(白山黒水)라 일컫는 것이 이것이다. 시조(始祖) 함보(函普)가 완안부(完顔部) 포이갈수(布爾噶水 : 영고탑에서 흑룡강성 동남의 무단강) 가에서 살았고 아우 박화리(博和哩)는 찰란(扎蘭)에서 살았다.

完顔部 : 在阿勒楚喀境 詳會寜府按出虎注 金史本紀 金之先居肅慎地 有混同江長白山 混同江亦號黒龍江 所稱白山黒水 是也 始祖居完顔部布爾噶水之涯 弟博和哩居扎蘭

시조(始祖) 함보(函普)4대 헌조(獻祖 : 수가(綏可) 또는 수혁(綏赫))에 이르러 해고륵수(海古勒水 : 지금 흑룡강성 아성시(阿城市) 동쪽, 하얼빈시 아래)로 옮겨 살았다. 이 사람이 처음으로 마룻대와 지붕을 들여 집 짓는 법을 마련하고 드디어 아륵초객(阿勒楚喀 지금 흑룡강성 하얼빈시) 경계에서 살았다.

至獻祖 徙居海古勒水 始有楝宇之制 遂定居于阿勒楚喀之境

시조(始祖) 함보(函普)5대 소조(昭祖)가 눈부신 무력으로 청령(青嶺)과 백산(白山)에 이르러 (그리고서 지금의 흑룡강 동쪽 영현 일대인 소빈(蘇濱)과 야라(耶懶) 땅으로 들어갔다) 순응하는 자들은 어루만지고 따르지 않는 자들은 쳐냈다.

昭祖耀武 至于青嶺白山 順者撫之 不從者討之

시조(始祖) 함보(函普)6대 경조(景祖)가 점차 여러 부족을 자기에게 붙게 하여 그들을 부렸다. 백산(白山) 부족, 섭혁(葉赫) 부족, 도문(圖們) 부족, 찰란(扎蘭) 부족, 탁복고륜(托卜古倫) 부족 따위로부터 오국(五國)의 우두머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명을 들었다. 이때 요(遼)나라 변방의 백성들이 도망와 귀의한 자가 있었다. 철리(鐵驪)와 오사(烏舍)의 백성들도 요나라에서 도망치고서 아직 스스로 와서 복종하지 않았지만, 앞뒤로 완안부에 붙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았다. 악민수(鄂敏水)의 부찰부(冨察部)와 특극신특포수(特克伸()特布水)의 완안부(完顔部)와 도문수(圖們水)의 온특혁부(温特赫部)와 사음수(舍音水)의 완안부(完顔部)가 모두 줄줄이 와서 경조(景祖)의 완안부에 붙었다.

景祖稍役屬諸部 自白山葉赫圖們扎蘭托卜古倫之屬 以至五國之長 皆聴命 是時 遼之邊民有逃而歸者 鐵驪烏舍之民亦逃而未歸 前後願附者衆 鄂敏水冨察部 特克伸特布水完顔部 圖們水温特赫部 舍音水完顔部 皆相繼來附

금사(金史)에 태조가 진군하여 요회성(寥晦城 : 지금 쌍성시(雙城市) 대면성향(對面城鄉) 삼성촌(三姓村) 일대)에 주둔하고서 여러 지역의 군대들이 모두 랍림수(拉林水)에서 모이게 하였다. 금 태조가 요()나라 군대를 만나 이를 패퇴시키고 영강주(寧江州 : 지금 길림 송원시 북부)에 진군하여 여러 군대가 참호를 메우고서 성()을 공격하였다. 10월 초하루에 그 성을 뽑아냈다. 철리부(鐵驪部)가 오니 태조가 애정 어린 뜻으로 그들을 배웅하였다. 랍림성(拉林城)에 주둔하고서 포로와 전리품들을 장령과 병사들에게 하사하였다. 이 때문에 배격(拜格)의 추장 화색리(和索哩)가 그 성()과 함께 항복하였다. (성경통지 102)

又金史太祖進軍 次寥晦城 諸路兵皆㑹于拉林水 遇遼軍敗之 進軍寧江州 諸軍填塹攻城 十月朔 克其城 鐵驪部來 送款 次拉林城 以俘獲賜將士 拜格酋長和索哩以降城 (欽定盛京通志 卷102)

몽고어에 포이갈(布爾噶)빽빽한 버드나무(叢栁)’를 뜻한다. 원래 복간(㒒斡)이라고 썼다. 섭혁(葉赫)은 부족 이름이니 원래는 야회(耶悔 : 지금 길림성 사평시의 섭혁하(葉赫河) 유역에 거주)라고 썼다. 만주어로 악민(鄂敏)마시다()’를 뜻한다. 원래는 간민부찰(幹冺冨察: 간민수는 지금 길림시 이통현. 액이민하(額爾敏河)라고도 함)이라고 썼다. 팔기성(八旂姓)에는 원래 포찰(蒲察)이라고 썼다. 특극신특포(特克伸()特補())는 만주어로 특극신(特克伸())가지런하다()’를 뜻하고 특포(特布)바라보게 하다(令其望)’를 뜻한다. 원래는 태신특보(泰神忒保)라고 썼다. 온특혁(温特赫)은 팔기성(八旂姓)이니 원래는 온적흔(温迪痕)이라고도 쓴다. 사음(舍音)은 국어해(國語解) 인물(人物) 3권에 보인다. 원래는 신은(神𨼆)이라고 썼다. 배격(拜格)은 원래 별고(鼈古)라고 썼다. 만주어에 화색리(和索哩)밀기울(麩皮)’을 뜻한다. 원래는 호소(胡蘇)라고 썼다. (성경통지 102)

蒙古語 布爾噶 叢栁也 原作㒒斡 葉赫 部名 原作耶悔 國語 鄂敏 飲也 原作幹冺冨察 八旂姓 原作蒲察 特克伸()特補() 國語 特克伸() 齊也 特布 令其望也 原作泰神忒保 温特赫 八旂姓 原作温迪痕 舍音 國語解見人物卷三 原作神𨼆 拜格原作鼈古 國語 和索哩 麩皮也 原作胡蘇

*철리(鐵驪) : 철리(鐵離), 철전(鐵甸)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선조는 당나라 초기에 흑수말갈 철리부(鐵利部)이고 발해 때에 발해로 스스로 와서 복종하여 발해는 철리부(鐵利部)를 두었다고 한다.

*악민(鄂敏) ‘주리다()’를 뜻한다. 간민(斡泯)이라고도 쓰니 물이름이다.

鄂敏饑也 卷一作斡泯 水名

*신특포 : 특극신은 가지런하다(齊整)’를 뜻한다. 특포(特布)물건을 꾸려 싣다(裝載)’를 뜻한다. 태신특보(泰神忒保)라고도 하니 물 이름이다.

新特布 特克新齊整也特布裝載也卷一作泰神忒保水名

*도문(圖們) : ‘숫자 만()’을 뜻한다. 통문(統門), 타문(駞門), 도문(徒門)이라고도 한다. 땅이름이기도 하고 촌락이름이기도 하며 물이름이기도 하다.

圖們萬數也 卷一 作統門 卷二 作駞門 卷三 作徒門 並改 地名 又村名 又水名

*사음(舎音) : ‘흰색(白色)’을 뜻한다. 신은(神隠)이라고도 한다. 물 이름이다.

舎音白色也 卷一 作神隠 水名

*배격(拜格) : 몽고어이니 이제 멈추어 그치다(今其停止)’를 뜻한다. 옛날에는 별고(龞古)라도고 썼다.

拜格 : 䝉古語 今其停止也 舊作龞古 今改正

*화색리(和索哩) : ‘귓밥 또는 귀에 낀 때(耳穢)’를 뜻한다. 호소로(胡蘇魯), 호집뢰(胡什賚), 호실랄(胡失剌)이라고도 하고 호속로(胡速魯), 호실(胡失)이라고도 한다.

和索哩 耳穢也 卷二 作胡蘇魯 卷七 作胡什賚 卷十四 作胡失剌 又作胡速魯 卷六十三 作胡失

*살펴보면 송막기문(松漠紀聞)에 상경(上京)은 랍림(拉林) 150()에 이르고 랍림(拉林)은 혼동강(混同江) 110()에 이른다. 금나라 태조(太祖)가 군대들을 랍림하(拉林河)에 모이게 하고 영강주(寧江州)를 뽑아내고 진군하여 랍림성(拉林城)에 주둔하였다 하니, 그렇다면 영강성(寧江城)은 바로 람림하(拉林河)와 서로 가깝다. (만주원류고 12)

按松漠紀聞 上京至拉林一百五十里 拉林至混同江一百十里 太祖㑹兵拉林河 克寧江州 進次拉林城 則寧江城正與拉林河相近 (欽定滿洲源流考卷十二)

*친관명안(親管明安) : 친관(親管)친하여 가깝다(親近)’라는 합찰(合扎)이고 명안(明安)은 맹안(猛安)이다. 곧 합찰맹안(合扎猛安)으로, 이는 금나라 황실과 귀족이 맹안군(猛安軍)을 장악하여서 초기에 아골타(阿骨打 : 금 태조)와 오걸매(吳乞買), 종간(宗幹), 종한(宗翰) 등 이 네 사람에게만 예속시켰다가 아골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 시위친군(侍衛親軍)을 키워 맹안군(猛安軍)을 시위친군사(侍衛親軍司)로 예속시켰다고 한다.

*야라(耶懶)

폐솔빈로(廢率璸路)은 성() 동남쪽에 있다. 금사 지리지(金史地理志)에 솔빈로(率璸路)는 요()나라 때 솔빈부(率賓府)였으니 본래 솔빈(率賓)의 옛 땅이다. 금 태종의 천회(天㑹) 2(1124년 또는 958)에 해란로(海蘭路) 도패륵(都貝勒)이 지내는 땅이 척박하다는 이유로 마침내 이곳으로 옮겨 와서 해릉(海陵 4대 황제)이 절도사(節度使)를 두고 인하여 색녕(索寧)이라고 이름하였다. 대정(大定) 11(1171), 해란(海蘭)과 솔빈(率賓)이 서로 거리가 천 리()이고 이미 색녕(索寧)에서 지내고 있지만,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되어 마침내 친관명안(親管明安)에게 명하여 이곳을 아란명안(雅蘭明安)이라고 이름하게 하였다. 폐솔빈로(廢率璸路)는 서북쪽으로 상경(上京)까지 1570()에 이르고 동북쪽으로 화라갈(和囉噶)까지 11백 리()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해란로(海蘭路)까지 12백 리()에 이르고 북쪽으로 변방의 경계인 알한아림 천호(斡罕阿林千户)까지 2천 리()에 이른다. 원나라가 폐하였다. 살펴보면 솔빈(率璸)은 원래 휼품(恤品 : 의 한자 음은 xù())이라 되어있고 색녕(索寧)은 원래 속빈(速頻)이라고 되어있으며 해란(海蘭)은 원래 합라(合懶)라고 되어있고 또한 야라(耶懶), 그리고 압라(押懶)라고도 되어있다. 패륵(貝勒)은 원래 패근(孛堇)이라고 되어있고 간한아림(斡罕阿林)은 원래 간가아린(斡可阿憐)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들을 지금 다 고쳐서 엮었다. (대청일통지 46)

廢率璸路在城東南 金史地理志 率璸路 遼時 為率賓府 本率賓故地 天㑹二年 以海蘭路都貝勒所居地瘠 遂遷於此 海陵置節度使 因名索寧 大定十一年 以海蘭率賓相去千里 既居索寧 然不可忘本 遂令親管明安 名曰雅蘭明安 西北至上京一千五百七十里 東北至和囉噶一千一百里 西南至海蘭路一千二百里 北至邊界斡罕阿林千户二千里 元廢 按率璸原作恤品 索寧原作速頻 海蘭原作合懶 又作耶懶 又作押懶 貝勒原作孛堇 斡罕阿林原作斡可阿憐 今并改繹(大清一統志 卷046)

*간한아림(斡罕阿林) 간한(斡罕)말굽(馬蹄)’을 뜻한다. 아림(阿林)()’을 뜻한다. 간가아린(斡可阿憐)이라고도 쓰니 땅 이름이다.

斡罕阿林 斡罕 馬蹄也 阿林 山也 卷二十四 作斡可阿憐 地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