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왕회(周書王會)
*숙신, 낙랑, 예(穢), 고이(高夷, 고구려) 및 옛날의 많은 겨레 이름과 그 특산물이 간략히 소개된 책이라 번역을 해 보았다. 한편으로 번역을 해 놓고도 자신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러 군데가 있어서 찜찜하기도 하다. 번역해야 할 거리들이 많은 데다가 각 자료마다 확인해야 할 건수들이 많다 보니 미처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점이 있다.
주일서(逸周書) 7권 왕회해(王㑹解) 제59 공조(孔晁)의 주(注) :
주나라 왕조의 수도(成周, 곧 낙양)에서의 모임으로 정갈하게 치운 땅(墠) 위에 학의 깃털로 꾸민 붉은 장막(赤弈)이 펼쳐져 있다. 〈왕성(王城)에서 이미 제후(諸侯)와 사이(四夷)에 큰 모임을 이룬 것이다. 음(陰)은 ‘학(鶴)’이다. 깃(羽)으로 장막을 꾸민 것이다. 땅을 깨끗이 치운 것을 ‘선(墠)’이라 하며 혁(弈)은 ‘장막(帳)’이다.〉
천자(天子)가 남쪽을 향해 서 있으니 면류관(絻)에 매달린 구슬꿰미(繁露)가 없고 조복(朝服)에 여든 가지 물건이 걸쳐 있으며 홀(挺)을 꽂고 있다. 〈번로(繁露), 곧 구슬꿰미는 면류관(冕)에 늘어뜨린 장식이다. 존경(尊敬)받는 대상이라면 면류관에 구슬꿰미(繁露)를 달았다. 여든 가지 물건(八十物)은 몸에 걸치고 있던 크고 작은 물건들이다. 진(搢)은 ‘꽂을 삽(挿)’이다. 정(挺)은 ‘홀(笏)’이다.〉 당숙(唐叔)과 순숙(荀叔)과 주공(周公)이 왼쪽에 있고 태공망(太公望)이 오른쪽에 있으니 모두 면류관을 쓰고 역시 구슬꿰미(繁露)가 없다. 조복(朝服)에 일흔 가지 물건을 걸치고 있으며 홀(笏)을 꽂고 있다. 당상(堂上)에서 천자(天子)보다 조금 뒤에 서 있다. 〈당(唐)과 순(荀)은 나라 이름이고 모두 성왕(成王)의 아우이기 때문에 ‘숙(叔)’이라 한 것이다. 방(旁)은 조금 뒤에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와 가까운 곳, 그 뒤에 이들이 있는데 그들 면류관에 대해 역시 ‘주옥(珠玉)을 꿴 술(旒)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당 아래(堂下) 오른쪽에 당공(唐公)과 우공(虞公)이 남쪽을 향해 서 있다. 〈당(唐)과 우(虞) 두 공(公)은 요(堯)와 순(舜)임금의 후손이다.〉
당 아래 왼쪽에 은공(殷公)과 하공(夏公)이 서 있으니 모두 남쪽을 향해 있다. 면류관(絻)에 구슬꿰미(繁露)가 달려 있고 조복(朝服)에 쉰 가지 물건을 차고 있으며 모두 홀(笏)을 꽂고 있다. 〈기(杞)와 송(宋), 두 공(公)은 면류관(冕)에 번로(繁露)가 달려 있고 홀(笏)을 꽂고 있으니 당공(唐公)과 우공(虞公)에게는 빠진 물건들이다.〉
제후(諸侯)들 가운데 질병이 있는 사람을 위해 동쪽 섬돌(阼階) 남쪽에 자리를 마련하였고 축관(祝) 회씨(淮氏)와 영씨(榮氏)가 그 다음에 있으니 모두 서남(西南)쪽이며 미종(彌宗)이 그 옆에 있다. 〈회(淮)와 영(榮)은 두 축관(祝)의 성씨(姓氏)이다. 미종(彌宗, 재해를 막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겸하여 담당)은 관직 이름이다. 그 다음에 울금주를 담은 옥 그릇 규찬(珪瓚)이 남쪽으로 조금 뒤에 있다.〉〔주우증(朱右曾) 교석(校釋) : “찬(瓚)은 울금술(鬯酒)을 담는 그릇이니 규(珪)로써 손잡이(柄)를 만든다.” 朱右曾 校釋:“瓚,盛鬯酒之器,以珪爲柄。”〕
이곳은 제후(諸侯)들에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의원과 약이 있는 곳이다. 〈使謂左右也 居則至也〉
도우미인 태사(太史) 어(魚)와 태항인(太行人)이 모두 조복(朝服)에 구슬꿰미(繁露)가 달린 면류관을 갖추었다. 〈어(魚)는 태사(太史, 역사 기록자)의 이름이니 태항인(太行人)과 모두 손님맞이(賔客)에 대한 예(禮)를 도와 거드는 것이다.〉
당 아래(堂下) 동쪽에 곽숙(郭叔)이 천자(天子)에 들인 예물(菉幣)을 담당하고 있으니 면류관(絻)에 구슬뀀이 달려 있다. 〈곽숙괵(郭叔虢)은 문왕(文王)의 아우이다. 녹록(菉錄)은 제후(諸侯)가 바치는 예물(幣)이다.〉 〔어정강희자전(御定康熙字典) : 주(註) 녹록(菉錄)은 제후(諸侯)의 예물(幣)이다. 御定康熙字典 : 註) 菉錄諸侯之幣也〕
내대(内臺) 서쪽에 정북방(正北方)으로 응후(應侯)와 조숙(曹叔)과 백구(伯舅)와 중구(中舅)가 있다. 〈내대(内臺)란 천자가 제후를 만날 때 제후를 위해 마련한 중대(中臺)를 말한다. 응후(應侯)는 성왕(成王)의 아우이다.〉
비복(比服)에 사는 겨레들이 그 다음에 있고 요복(要服)에 사는 겨레들이 그 다음이며 황복(荒服)에 사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있다. 서방(西方)의 동쪽에 정북방(正北方)에 백부(伯父)의 가운데 아들(中子)이 그 다음에 있다. 〈이 요복(要服)은 비복(比服, 임금이 사는 왕성 둘레 천여 리)보다 더욱 멀어서 자연과 사람 살이가 많이 다른 곳이라서 그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동북방민족(夷狄)이 사는 먼 사황(四荒)이 아니다. 백부(伯父)는 희성(姬姓) 나라이고 중자(中子)는 왕의 아들 중에서 가운데 항렬인 사람이다.〉
사방 천 리(里) 안은 비복(比服)이 되고 사방 천 리 안은 요복(要服)이 된다. 삼천 리 안은 황복(荒服)이 된다. 이 모두 왕성 안에서 알현(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복(服)이란 이름은 은(殷)나라에서 썼던 것을 따른 것이지 주(周)나라의 제도는 아니다.〉 〔* 원서에는 ‘비복(比服)’을 ‘方千里之外’이라고 쓰고 있다. 뒷글과 연결해 보자면 ‘外’을 ‘내(內)’라고 해야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일단 의문만 남겨놓고 넘어가기로 한다.〕
당(堂) 위 동북(東北)에 붉은 장막(赤弈)을 베풀어 놓았으니 목욕통이 그 안에 있다. 〈비록 실제 운용하지는 않았음에도 이를 마련하였으니 제후(諸侯)를 공경한 것이다.〉그 서쪽에 천자(天子)의 수레에 네 마리 말이 서 있으니 역시 푸른 학(陰)과 오리의 깃털을 장식한 깃발이 있다. 〈학(鶴)과 오리(鳬)의 깃으로 깃발을 만든다.〉
중대(中臺) 밖 그 오른쪽에서 태(㤗)가 일(士)을 하고 대(臺) 오른쪽에서 미(彌)가 일(士)을 한다. 〈밖(外)은 대(臺)의 동서(東西)를 말하는 것이다. 외대(外臺) 그 오른쪽에 태(太)가 일(士)을 하며 오른쪽에 미(彌)가 일(士)을 한다. 사(士)는 왕을 받들어 태(太)와 미(彌)가 서로 의례(儀)를 돕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예물을 받는 사람이 여덟이니 동쪽을 향해 있는 사람이 넷이다. 〈손님이 가지고 온 예물(幣)을 받는 일(士)이다. 네 사람이 얼굴을 동쪽을 향하였다면(東面) 얼굴이 서쪽을 향한 것은 네 사람이다.〉
예물을 외대(外臺)에 진열하였으니 천현(天𤣥)과 모직물(毼)과 종마(宗馬) 열둘이다. 〈외대(外臺)에 비단 꾸러미며 예물용 말을 진열하였다. 천현(天𤣥)은 검빛(黑) 모직물(𡽙/毼)이요 종(宗)은 ‘높을, 소중할 존(尊)’이다.〉
옥(王)의 현료벽(𤣥繚碧)의 기(基)가 열둘이다. 〈이 아래에 세 벽(碧)은 모두 옥(玉)이다. 따라서 아래부터 ‘옥(王과 玉은 통용)의 현료(𤣥繚)’에 이르기까지 이를 검은 매듭끈(黑組紐)의 기(基)라고 하니 옥(王) 이름에 열두 기(基)가 있는 것이다.〉
세 군데(參方)에다 검은 매듭 끈에 달린 벽(璧)과 표범, 범 가죽을 진열하니 열둘이다. 〈삼방(參方)은 예물(幣)을 세 곳(三所)에다 진열하니 가운데 구멍이 있는 둥글고 넓적한 옥(璧)과 가죽(皮)도 함께 진열하는 것이다. 〉
사방에 검은 매듭 끈에 달린 벽(璧)과 염(琰) 열둘이 진열되었다. 〈염(琰)은 규(珪)이니 위쪽이 칼끝처럼 뾰족하여 빠른 모양(鋒疾)을 가지고 있다. 이 물건들을 사방의 장소에 진열하였으니 줄지어 벌려 놓은 것이다.〉 〔옛날에 옥 둘(雙玉)을 합하여 각(玨/珏)이라는 글자를 만들었고 둥근 옥(玉)을 벽(璧)이라 하며 위쪽이 날카로운 것을 규(圭/珪)라 하였다. 이런 규(圭)의 종류 중에서도 담(琰)은 칼끝처럼 가시(鋒芒)가 있으며 완(琬)은 그런 가시가 없다. 큰 옥(大玉)은 화산(華山)에서 나는 옥이며 이옥(夷玉)은 동이(東夷)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옥(美玉)이다. 〈大全〉陳氏大猷曰:「古雙玉為玨,圓玉曰璧,銳上曰圭,琰有鋒芒,琬無鋒芒。大玉,華山之玉;夷玉,東夷之美玉。」〕
외대(外臺)의 네 귀퉁이마다 붉은 장막(赤弈)을 펼쳐놓아 제후(諸侯)들 안에 쉬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 모두 그곳에서 쉬게 하였다. 이곳을 ‘효려(爻閭)’라 이름(命)하였다. 〈매 귀퉁이(角)에 쉼터를 마련한 것은 가까운 곳을 따랐기 때문이다. 제후(諸侯)의 후(侯)는 ‘효(爻)’를 가리키는 것이다.〉 〔청나라 역사학자 주우증(朱右曾)의 교감 주석에 “여(閭)란 모으다(聚)라는 뜻이다. 대(臺)의 네 모퉁이에 설치한 것이 괘효(卦爻) 모양 같아서 효려(爻閭)라고 한다.” 하였다. 朱右曾 校釋:“閭者聚也。設於臺之四隅如卦爻,故曰爻閭。”〕
주공(周公) 단(旦)이 동방(東方)의 주(主)이다. 이곳에서 나온 푸른 말(青馬)과 검은 모직물(黑𡽙)을 모아(母兒)라고 말한다. 〈주공(周公)이 동방(東方)에 주(主)이니 그렇다면 태공(太公)은 서방(西方)에 주(主)이다. 동쪽이 푸른말(青馬)이면 서쪽은 흰말(白馬)이 된다. 그러나 그 말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엔담(營牆)을 지키는 자들은 푸른 옷을 입고 활을 지니고 창(矛)을 잡고 있다. 〈창(矛)은 끝이 두셋으로 갈라진 미늘창(㦸)이다. 각각 방위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정북방(正北方)의 직신(稷慎)이니 큰사슴(大麈)을 공물로 들였다. 〈직신(稷慎)은 숙신(肅慎)이다. 큰사슴(麈)을 공물로 들였으니 사슴과 비슷하다. 정북(正北)는 내대(内臺)의 북쪽이다.〉
예인(穢人)은 전아(前兒)를 공물로 들였으니 전아(前鬼/兒)는 미후(彌猴)와 비슷하고 서서 다니며 그 내는 소리가 어린아이의 우는 소리와 같다. 〈예(穢)는 한예(韓穢)니 동이(東夷)의 한 갈래(别種)이다.〉 〔미후(彌猴) : 미후(獮猴) 또는 미후(獼猴)라고도 쓰는데 학명(學名)은 ‘Macaca mulatta’라고 한다.〕
낭이(良夷)는 재자(在子)를 공물로 들였으니 재자(在子)는 자라闕/鼈) 몸에 사람 머리를 하고 있다. 그 배에 기름을 발라 콩잎(霍)에 구우면 울음을 우는데 이때 ‘재자(在子)’라는 소리는 낸다. 〈양이(良夷)는 낙랑(樂狼)의 이(夷)이다. 기이한 들짐승(竒獸)을 공물로 들이었다.〉
양주(揚州)는 우우(禺禺)를 공물로 들이니 이는 물고기 이름으로 유구(隃冦 또는 隃冠)라고도 설명한다. 〈역시 기이한 물고기이다.〉
발인(發人)은 녹록(鹿鹿)이란 것을 공물로 들였으니 사슴(鹿)처럼 재게 달린다. 〈발(發) 역시 동이(東夷) 겨레이니 재고 빠르다. 〉
유인(俞人)은 수마(雖馬)를 공물로 들였다. 〈유(俞)는 동북(東北)의 이(夷)이니 외뿔 단 수말(雖馬)은 옛날(舊駕) 외뿔(一角)에 큰 놈으로, 사슴과 비슷하나 온몸에 비늘을 덮은 외뿔 달린 ‘인(驎)’이라 한다.〉
청구(青丘)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를 공물로 들였다. 〈청구(青丘)는 해동(海東)의 땅 이름이다.〉
주두(周頭)는 훈저(煇𦍫)를 공물로 들였다. 훈저(煇𦍫)란 양(羊)이다. 〈주두(周頭) 역시 해동(海東)의 이름이다.〉
흑치(黑齒)는 흰 사슴(白鹿)과 흰말(白馬)을 공물로 들였다. 〈흑치(黑齒)는 서쪽 멀리에 있는 이(夷)이다. 흰사슴(白鹿)과 흰말(白馬)을 공물로 들였다.〉
백민(白民)은 승황(乗黄)을 공물로 들였으니 승황(乗黄)이란 털총이(騏, 검푸른말)와 비슷하며 등에 뿔이 둘이나 있다. 〈백민(白民) 역시 남이(南夷)이다.〉
동월(東越)은 해합(海蛤)을 공물로 들였다. 〈동월(東越)은 바닷가(海際)에 산다. 합(蛤)은 바지락(文蛤)이다.〉
구인(歐人)은 선사(蟬蛇)를 공물로 들였으니 선사(蟬蛇)는 훌륭한 부드러운 먹거리이다. 〈동월(東越)이 구인(歐人)이다. 북교주(北交州)의 뱀은 유독 대부분 최고의 진미 거리이다.〉
고(姑)는 월(越)에 공물을 들였으니 고매진(姑妹珍)이라는 것이다. 〈고매국(姑妹國)은 뒤에 월(越)에 소속되었다.〉
차구(且甌)는 문신(文蜃)을 공물로 들였다. 〈차구(且歐)는 월(越) 땅에 있다. 문신(文蜃)은 대합(大蛤)이다.〉
약인(若人)은 검빛 조가비(𤣥貝)를 공물로 들였다. 〈약인(若人)은 오월(吴越) 남방 겨레(蠻)이다. 검빛 조가비(𤣥貝)는 화폐에 견주는 것(照貝)이다.〉〔현패(𤣥貝) : 가) 검빛 조가비나 이패(貽貝, 학명 Mytilus edulis)로 홍합과의 진주담치. 나) 고대의 화폐. 염철론(鹽鐵論)에 “정권(政權)의 교화(教) 방법은 민간의 풍속(俗)과 더불어 바뀌고 정권의 폐단(弊)은 세상의 흐름과 더불어 변혁되어가니 하후(夏后)는 현패(玄貝)를 썼고 주(周)나라는 자주빛, 가지빛 돌(紫石)을 썼다. 《鹽鐵論·錯幣》:“教與俗改,弊與世易, 夏後以玄貝, 周人以紫石。”〕
해양(海陽)은 큰 게(大蠏)를 공물로 들였다. 〈바닷물(海水)의 북쪽(陽)에 한 마리 게(蟹)가 수레를 채웠다.〉
자심(自深)은 계(桂)를 공물로 들였다. 〈자심(自深) 역시 남방 겨레(南蠻)이다.〉
회계(會稽)는 공물로 악어(𪓽)를 들였으니 모두 서쪽을 향하였다. 〈그 거죽은 북을 만들 수가 있다. 바친 공물의 대가리들은 큰사슴(麈)부터 아래로 이 악어에 이르기까지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북방(正北方)에 의거(義渠)는 자백(茲白)을 공물로 들였으니 자백(茲白)이란 흰말(白馬)과 같고 톱니 이빨(鋸牙)로 범과 표범을 잡아먹는다. 〈이 공물들 역시 대(臺) 북쪽에 있으니 큰 사슴과 더불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의거(義渠)는 서융국(西戎國)이니 자백(茲白)은 일명 박(駁)이라는 맹수이다.〉
사림(史林)은 존이(尊耳)를 공물로 들였으니 존이(尊耳)란 몸이 범, 표범과 같고 꼬리 길이가 3척(尺)이다. 그 몸은 범과 표범을 잡아먹는다. 〈사림(史林)은 융(戎) 중에서 서남(西南)에 사는 겨레이다.〉
북당융(北唐戎)은 여(閭)를 공물로 들였으니 민간(閻)에서는 범이나 표범과 비슷한 맹수 유관(隃冠, 또는 隃冦)이라 한다. 〈북당융(北唐戎)은 서북(西北)에 사는 겨레이다. 사례(射禮)에 여의 모양(閭象)으로 활쏘는 기구들을 만든다.〉 〔어정패문운부(御定佩文韻府)에 “일주서(逸周書)에서 북당융(北唐戎)은 여(閭)를 공물로 들였으니 여(閭)는 유관(隃冠, 또는 隃冦)과 비슷하다.” 하였다. 御定佩文韻府卷二十二之十 : 逸周書 : 北唐戎以閭 閭似隃冠 孔晁注...〕
거수(渠叟)는 표견(䶂犬)을 공물로 들였으니 표견(䶂犬)이란 노견(露犬)이다. 능히 날아다니며 범과 표범을 잡아먹을 수 있다. 〈거수(渠叟)는 서융(西戎)의 다른 이름이다.〉
누번(樓煩)은 성시(星施)를 공물로 들였으니 성시(星施)란 이모(珥旄)이다. 〈누번(樓煩)은 북적(北狄)이다. 이모(珥旄)는 깃대 장식으로 쓰이는 소꼬리 털과 꿩깃 같은 재료로 만든 깃발이다.〉 〔설문에 “시(施)는 깃발이 흩날리는 모습(旗貌)이다. 귀걸이 이(珥)는 귀 장식 전(瑱)이다.” 하였다. 아마도 소꼬리 털(旄)을 깃발에 드리우니, 마치 귀걸이인 듯한 것이다. 朱右曾 校釋:“愚案:《說文》云:‘施,旗貌。珥,瑱也。’盖垂旄于旗若珥然。”〕
십로(十盧)는 소(牛)를 공물로 들였으니 소(牛)란 소(牛) 가운데 작은 놈인 것이다. 〈십로(十盧)는 노인(盧人)이니 서북(西北)의 융(戎)이다. 지금 노수(盧水)가 이것이다.〉 〔행수금감(行水金鑑)에 “노(瀘)는 본래 노(盧)라고 쓰니 예컨대 노궁(盧弓), 노시(盧矢), 노귤(盧橘) 따위로 모두 ‘검다(黒)’라고 풀이한다. 유희(劉熙)가 지은 석명(釋名)에 ‘흙이 검은(土黒) 것을 노(盧)라 한다.’ 하였고 심괄필담(沈括筆談)에서는 ‘이인(夷人)들은 검은(黒) 것을 일러 노(盧)라 하는데 한(漢)나라 때 중산(中山) 노노현(盧奴縣)에 노수(盧水)가 있다.’ 하였다. 역도원(酈道元)은 ‘물이 검은(水黒) 것을 노(盧)라 하고 웅숭깊어(淵) 흐르지 않는(不流) 것을 노(奴)라 한다.’ 하니 노수(盧水)가 흑수(黒水)라는 매우 친절한 증거이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나오는, 주 무왕(武王)을 따라 주(紂)를 쳤던 동맹국 여덟 나라에 로인(盧人)이 있으니 아마도 바로 노수(盧水) 주위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 글자에 물 수(水)를 덧붙여 ‘노(瀘)’라고 하였던 듯하다.(그 여덟나라는 용국(庸國), 촉국(蜀國), 강국(羌國), 무국(髳國), 미국(微國), 노국(盧國), 팽국(彭國), 복국(濮國)이다.) 行水金鑑 (四庫全書本)/卷090 瀘本作盧 如盧弓盧矢盧橘之𩔖 皆訓黒 劉熙釋名 土黒曰盧 沈括筆談云 夷人謂黒為盧 漢中山盧奴縣有盧水 酈道元云 水黒曰盧 不流曰奴 尤盧水為黒水之切證也 牧誓八國有盧人 疑即居盧水上者 其字後加水作瀘〕
구양(區陽)은 별봉(鼈封)이라는 것을 공물로 들였으니 이것은 돼지(彘)와 같고 앞뒤로 이어진 두 개의 머리가 있다. 〈구양(區陽) 역시 융(戎)의 이름이다.〉
규거(規矩)는 인(麟)이라는 것을 공물로 들였으니 들짐승(獸)이다. 〈규거(規矩) 역시 융(戎)이다. 인(麟)은 사슴(鹿)과 비슷하되 소의 꼬리와 외뿔, 말의 발굽을 가진 동물이다.〉
서갑(西申)은 봉조(鳳鳥)를 공물로 들였다. 봉조(鳳鳥)란 어짊(仁)을 이고 의(義)를 품으며 신(信)을 끼고 있어서 덕(徳)이 있는 자들이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 모양은 닭(雞)과 비슷하되 뱀 대가리에 물고기 꼬리를 가졌다. 대인(戴仁)은 어진 나라를 숭상하는 것이고 포의(抱義)는 의(義)가 있는 사람을 마음속에서 그리워함이니 믿음(信)을 끼고서 덕(德) 있는 군주(君主)를 따르는 것이다.〉
구강(丘羌)은 난조(鸞鳥)를 공물로 들였다. 〈구지(丘地)의 강(羌)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구강(丘羌)이라 하니 지금은 이를 구려(丘戾)라고 한다. 난(鸞)은 봉(鳳)새보다 크다. 이들 역시 인의(仁義)를 따르는 것이다.〉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에 “곽박(郭璞)이 ‘백이(伯夷)의 아버지는 전욱(顓頊)의 스승으로 지금 저(氐)와 강(羌)이 그의 먼 후손들이다.’ 하였다....대개 기(岐)와 농(隴) 땅 이남과 한천(漢川) 이서가 모두 저(氐) 겨레의 땅이었다. ‘상나라를 세운 탕(湯)은 말기의 하(夏)나라를 개혁하여 저(氐)를 쳤고 저(氐) 겨레 사람들이 와서 조공하였다. 그 갈라진 겨레들에는 청(青)과 백(白)과 염(蚺) 세 저(氐) 겨레가 있다. 저강(氐羌) 겨레에는 수십 갈래가 있으니 백마(白馬, 白馬氐國)가 가장 크다.’고들 한다. 지금 문(文)과 봉(鳳) 두 주(州) 경계에서 백마씨(白馬氏)가 구지(仇池, 감숙성(甘肅省) 성현(成縣))에 살고 있으니 저후(氐侯)라고 부른다. 상송(商頌)에서 읊은 ‘저 저강으로부터(自彼氐羌)’이다. 전한(前漢) 지리지(地里志)에 ‘농서(隴西)에 저도(氐道)와 강도(羌道)가 나와 있으니 저(氐) 겨레붙이의 이름이다. 왕회편(王㑹篇)에 강(羌)이 ‘난조(鸞鳥)를 공물로 들였다.’ 하니 그 주(注)에 강(羌) 겨레와는 같지 않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일러 저강(氐羌)이라고 하였으니 가연지(賈捐之)가 ‘성왕(成王)이 점유한 땅은 서쪽으로 저강(氐羌) 땅을 지나지 않았다.’ 하였다. 또 황씨(黄氏)가 ‘강(羌)은 옛날 강성(姜姓)으로 삼묘(三苗)의 후손이다.’ 하니 이들은 강성(姜姓)에 뿌리를 둔 걸성(乞姓)을 말하니 분명히 같은 겨레붙이가 아닌 것이다. 此云乞姓明非一種也 山海經廣注 (四庫全書本)/卷18 郭曰 伯夷父 顓頊師 今氐羌其苗裔也...盖岐隴而南 漢川以西 皆氐云 湯革夏伐氐 氐人来朝 其别為青白蚺之三氐 氐羌數十 白馬最大 今文鳳二竟 白馬氏者居仇池 曰氐侯 商頌云 自彼氐羌 地里志 隴西有氐道羌道 氏𩔖種名 王㑹篇 □羌以鸞鳥 注羌不同 故謂之氐羌 賈捐之 曰成王地 西不過氐羌 又黄氏 曰羌古姜姓 三苗之後 此云乞姓 明非一種也〕
파인(巴人)은 비익조(比翼鳥)를 공물로 들였다. 〈파인(巴人)은 남쪽에 사는 사람이다. 날개를 나란히 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새들, 그 이름은 겸겸(鶼鶼)이라 한다.〉
방양(方揚)은 황조(皇鳥)를 공물로 들였다. 〈방양(方揚) 역시 융(戎)의 다른 이름이다. 황조(皇鳥)는 봉(鳳)의 짝이 되는 새이다.〉
촉인(蜀人)은 문한(文翰)을 공물로 들였으니 문한(文翰)이란 고계(臯雞)와 같다. 〈새 중에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이 있는 것이 고계(臯雞)이니 오리(鳬)와 비슷하다. 익주(翼州)에서는 이를 택특(澤特)이라 한다.〉
방인(方人)은 공조(孔鳥)를 공물로 들였다. 〈역시 융(戎)의 다른 이름이다. 공(孔)은 난(鸞)새와 서로 짝이다.〉
복인(卜人)은 단사(丹沙)를 공물로 들였다. 〈복인(卜人)은 서남(西南)의 만(蠻)이다. 단사(丹沙)가 나오는 곳이다.〉
이(夷)는 린채(閵采)를 공물로 들였다. 〈이(夷)는 동북(東北)의 이(夷)이다. 린채(閵采)라는 돌의 무늬(采)는 타는 불 속에서 생겨나는데 빛이 검고 표면에 빛이 나니 그 견고함은 쇠(鐡)와 같다.〉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방여휘편(方輿彙編) 7권 석부휘고(石部彙考) 1 : “노(砮)란 화살촉(矢鏃)의 쓰임에 들어맞으니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숙신씨(肅慎氏)가 석노(石砮)를 공물로 들였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 소문(素問)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에 “동방(東方)이라는 지역은 하늘땅이 처음 생겨난 곳이다. 물고기와 소금이 나는 땅으로 바다가 가까이 있어 물 곁이라 그 백성들은 물고기를 먹고 짠맛을 좋아하니 모두 그곳을 편안하게 여기며 그 먹거리를 아름답게 여긴다. 물고기란 사람 속을 뜨겁게 만들고 소금이란 사람의 피를 손상(勝血, 勝은 傷의 뜻) 시킨다. 그래서 그 지역 백성들은 모두 검은 낯빛에 피부 결이 거칠(疏理)기 마련인데 이런 풍토에 따른 그 문제점들은 모두 심한 부스럼, 종기로 나타난다. 그 치료 방법으로 폄석(砭石)이 맞고 결국 폄석(砭石)이란 것 역시 동방에서 온다. 폄석(砭石)이란 돌침(石鍼)이다. 산해경(山海經)에서 ‘고씨산(高氏山)에 옥(玉) 같은 돌이 있으니 이것으로 침(針)을 만들 수 있다.’ 하니 바로 이런 유이다. 동방(東方)의 땅은 사람의 기질이 밖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여러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폄석(砭石)이 알맞은 것이다. 저 봄이 만든 기운은 동방에서부터 와서 우주 안으로 널리 퍼진다. 따라서 폄석의 방법도 동방으로부터 와서 구주(九州)에 베풀어져 퍼진 것이다.” 하였다. 급총주서(汲冢周書) 왕회해(王會解)에 “이(夷)가 린채(閵采)라는 돌을 공물로 들였다.” 하였다. 欽定古今圖書集成 方輿彙編 第七卷 石部彙考一 : 《書經》 《禹貢》 : 砮者,中矢鏃之用,《肅慎氏貢石砮》者是也。... 《素問》 《異法方宜論》 : 「東方之域,天地之所始生也。魚鹽之地,海濱傍水,其 民食魚而嗜鹹,皆安其處,美其食。魚者使人熱中,鹽 者勝血,故其民皆黑色疏理」,其病皆為癰瘍,其治宜砭石,故砭石者,亦從東方來. 砭石,石鍼也。《山海經》曰:「高氏之山,有石如玉,可以為針」 ,即此類也。東方之地,人氣發生於外,故其治諸病,宜於砭石也。夫春生之氣,從東方而普及於宇內,故砭石之法,亦從東方而來,以施及於九州也。...《汲冢周書》 《王會解》 : 《夷用》閵采。〈注〉夷...〕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서(東彝傳序)에 “왕제(王制)에서 말하기를 ‘동방(東方)을 ‘이(彝)’라고 한다. 이(彝)란 ‘뿌리 저(柢)’이니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땅에 뿌리를 두고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성(天性)이 부드럽고 순하여 도의(道義)로써 이끌기에 쉬워 군자(君子)가 사라지지 않고 생겨나는 나라가 되는 데에 이르렀다. (*至有君子不死之國焉 : 이 부분을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과 달라서 설명을 부친다. ‘不死’는 ‘君子’를 꾸며주는 말로 보아서 ‘사라지지 않고’로 번역하였다. ‘유(有)’는 ‘이런 결과로 저런 상황이 발생한다(happen).’는 뜻도 있다.)
이(彝)에는 아홉 겨레가 있으니 견이(畎彝), 우이(于彝), 방이(方彝), 황이(黃彝), 백이(白彝), 적이(赤彝), 원이(元彝), 풍이(風彝), 양이(陽彝)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구이(九彝)에서 살고 싶어 한 것이다.’ 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해에 성주(成周, 지금에 낙양시)에서 제후들이 크게 모였고 이때 이(彝)와 양이(良彝)가 공물을 들였다. 급총주서(汲冢周書) 왕회해(王會解)에 “이(彝)가 린채(閵采)라는 돌(石)을 공물로 들였다. 양이(良彝) 겨레는 재자(在子)를 공물로 들였다.” 하고 “재자(在子)는 자라 몸에 사람 머리를 하여 그 배에 기름을 바르고 콩잎에 구우면 ‘재자(在子)’라는 소리를 내며 운다.” 하였다. 주(註) : 이(彝)는 동북(東北)의 이(夷)이다. 무늬(采)가 불 속에서 태울 때 생겨나는데 빛깔이 검고 표면에 빛이 나니 그 단단함은 쇠와 같다. 양이(良彝)는 낙랑(樂浪)의 이(彝)이니 기이한 짐승(奇獸)을 들였다. 欽定古今圖書集成 方輿彙編 第十二卷 : 《後漢書》。《東彝傳序》 : 《王制》云:「東方曰彝。」彝者,柢也,言仁而好生,萬物柢地 而出,故天性柔順,易以道御,至有君子不死之國焉。 彝有九種,曰畎彝、于彝、方彝、黃彝、白彝、赤彝、元彝、風 彝、陽彝,故孔子欲居九彝也。...周 成王 年大會諸侯於成周彝及良彝入貢 按:《汲冢周書王會解》:「彝用閵采,良彝在子。」在子口身人首,脂其腹,炙之霍,則鳴曰「在子。」 〈註〉彝,「東北夷采,生火中,色黑面光,其堅若鐵。良彝,《樂浪》之彝也。貢奇獸。」〕 *우리가 볼 수 있는 후한서들에서는 ‘이(彝)’가 ‘이(夷)’로 쓰여 있으니 두 글자가 통용되었다는 뜻이다. ‘이(彝)’라는 글자는 상(商)나라 갑골문에서 여러 꼴로 나타나고 ‘이(夷)’라는 글자는 주(周)나라 갑골에서 처음 나타난다.
〔격치경원(格致鏡原)에 주서(周書) 왕회(王㑹)를 인용하여 “양이(良夷) 재자(在子)에 대해 ‘재자(在子)는 자라 몸(鼈身)에 사람 머리(人首)를 하고 있다. 그 배에 기름을 발라서 콩잎으로 구우면 이 짐승이 “재자(在子)”라는 소리를 내며 운다.’라 풀이(注)하였다.”라고 나와 있다. 格致鏡原 (四庫全書本)/卷094 鼈異 周書王㑹 良夷在子 注在子鼈身人首 脂其腹 炙之以藿 則鳴曰在子〕
강(康) 백성들이 부이(桴苡)를 공물로 들였다는 것은, 그 열매는 오얏(李)과 같고 먹으면 자식을 갖기에 좋다. 〈강(康) 역시 서융(西戎)의 다른 이름이다. 부이(桴苡, 질경이)를 먹으면 바로 몸에 태기가 있다.〉
주미(州靡) 나라는 비비(費費)를 공물로 들였다. 이 짐승은 그 모양이 사람 몸 비슷하고 발뒤꿈치를 놀리는 재간이 있다. 스스로 웃기도 하는데 웃으면 윗입술이 그 눈을 가려 덮는다. 사람을 먹는데 북방에서는 이를 토루(吐嘍)라고 이른다. 〈주미(州靡)는 북적(北狄)이다. 비비(費費, 狒狒)는 요양(裊羊)을 말하니 다니기를 좋아하되 사람처럼 서서 다니며 털이 몸을 덮고 앞발이 조금 긴 것이다.〉
도곽(都郭)은 생생(生生)을 공물로 들였다. 이 짐승은 누런 개(黄狗)와 같고 사람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말을 할 수 있다. 〈도곽(都郭)은 북적(北狄)이다. 생생(生生)은 이름이 둘이다. *이 글은 일주서(逸周書)의 원문이 매끄럽지 못하여 대신 급총주서(汲塚周書)에 ‘都郭北狄 生生二名也’라는 대목을 가져와 해석한 것이다. ‘일주서(逸周書)’라고 하여 ‘都郭生生,欺羽生生,若黄狗人面能言。(도곽(都郭)은 생생(生生)을 공물로 들였고 기우(欺羽)도 생생(生生)을 공물로 들였다. ...’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기간(奇幹)은 선방(善芳)을 공물로 들였으니 선방(善芳)이란 대가리가 수탉(雄雞)과 같고 이를 몸에 차면 사람이 깜빡깜빡 어두워지지 않는다. 모두 동쪽으로 향해 있다. 〈기간(奇幹) 역시 북적(北狄)이다. 선방(善芳)은 새의 이름이다. (어둡지 않고 잊지 않는 것이다. 不昧不忘)모두 동쪽에 동쪽을 향하여 벌려 차례 짓는 것이다.東東向列次也〉 북방(北方)의 대(臺) 정동(正東)에 고이(髙夷)의 겸양(嗛羊) 공물을 두었다. 겸양(嗛羊)이란 양(羊)이면서 뿔이 넷이다. 〈고이(高夷)는 동북(東北)의 이(夷)이니 고려구(髙麗句)이다.〉
〔겸양(嗛羊) 〈어정연감류함(御定淵鑑𩔖函) : 왕회도(王㑹圖)에 “공물로 들인 여러 물품에 기이한 것이 있으니 주두(周頭)의 휘저(煇羝)와 고이(髙𡗝)의 겸양(嗛羊)이다. 주두(周頭)와 과이(髙𡗝)는 모두 나라 이름이다. 겸양(嗛羊)은 뿔이 넷이다.〉〕 〔御定淵鑑𩔖函 (四庫全書本)/卷436 : 王㑹圖 所貢諸物其有異者 周頭之煇羊+𤣥(𦍞, 羝) 髙𡗝之嗛羊 周頭髙𡗝皆國名嗛羊四角〉〕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박물휘편(博物彙編) : 급총주서(汲冢周書) 왕회해(王會解)에 “주두(周頭)는 휘저(煇𦍞)를 공물로 들였다. 휘저(煇𦍞)란 양(羊)이다라 하고 그 주(注)에 주두(周頭) 역시 해동(海東)의 이름이다 라고 하였다. 북방(北方)의 대(臺) 정동(正東)에 고이(高夷)의 겸양(嗛羊)이 놓여있다 라고 하고 겸양(嗛羊)이란 양이니 뿔이 넷이다 하고 그 주(注)에 고이(高夷)는 동북(東北)의 이(夷) 고구려(高句麗)이다고 하였다.” 하였다. 술이기(述異記)에 “주(周) 성왕(成王) 때에 동이(東夷)가 여섯 양(羊)을 올렸다.” 하였다. 欽定古今圖書集成 博物彙編 第一百十三卷 禽蟲典 羊部藝文一 : 《汲冢周書》「王會解,周頭煇。」 ?《煇》。?者羊也。〈注〉《周頭》亦 海東名也。「《北方臺》正東,高夷嗛羊。」《嗛羊》者,羊而四角。〈注〉高夷東 北夷《高句麗》。《述異記》:「周成王時,東夷進六角羊。」〕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은 그 원문을 실은 책을 찾을 수가 없어 비교 수정할 수 없다. 또 이 한문 문장들은 AI로 표점을 하였다 하는데, 상당히 거칠다. 감안 해 주시길 바란다.
독록(獨鹿)은 공공거허(卭卭距虛)를 공물로 들였다. 이 짐승은 달리기를 잘한다. 〈독록(獨鹿)은 서방(西方)의 융(戎)이다. 공공(卭卭)은 들짐승이니 거허(距虚)이다. 이 짐승은 장구벌레(厥, 蟨)를 등에 지고서 달린다.〉
고죽(孤竹)은 거허(距虚)를 공물로 들였다. 〈고죽(孤竹)은 동북(東北)의 적(狄)이다. 거허(距虚)는 버새(驢騾, 수말과 암나귀 교배종) 종류이다.〉
불령지(不令支)는 현모(𤣥模)를 공물로 들였다. 〈불령지(不令支)는 모두 동북(東北)의 이(夷)이다. 현모(𤣥模)는 검은 여우(黒狐)이다.〉
〔영평(營平) 두 주(州) 지명기(地名記) : 영지(令支, 離枝) : 국어(國語)에 “환공(桓公)이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치고 영지(令支)를 때렸으며 고죽(孤竹)을 부서뜨리고 돌아가니 바닷가(海濵)의 여러 이(諸夷)들이 따라 복종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하였다. 사기(史記) 제 세가(齊世家)에 “북쪽으로 산융(山戎)과 이지(離枝)와 고죽(孤竹)을 쳤다.” 하였다. 〈사기 집해(集解) : “지리지(地理志)에서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孤竹城)이 있으니 아마도 이지(離枝)가 바로 영지(令支)이다. 영/령(令)과 이/리(離)는 소리가 서로 가깝다.’ 하였고 응소(應劭)가 ‘영(令)은 소리가 령/영(鈴)이고 영(鈴)과 이(離)는 소리가 또한 서로 가깝다. 관자(管子) 역시 ‘이(離)’자로 적었다.’ 하였다. 색은(索隱)이 ‘이지(離枝)와 고죽(孤竹)은 모두 옛 나라 이름이다. 진(秦)나라 때는 이지(離支,離枝)를 현(縣)으로 만들었다. 한편 주서(周書) 왕회(王會)에 “불령지(不令支)”를 살펴보면 이는 영지(令支)이다.’ 하였다.”〉〕 〔營平二州地名記 : 周 : 令支 : 國語 桓公北伐山戎 刜令支 斬孤竹而來歸 海濵諸夷莫不率服 史記 齊世家 北伐山戎離枝孤竹 〈集解曰 地理志曰令支縣有孤竹城 疑離枝即令支也 令離聲相近 應劭曰 令音鈴 鈴離聲亦相近 管子亦作離字 索隱曰 離枝孤竹皆古國名 秦以離支為縣 又案周書王會曰不令支者 令支也〉〕
〔관자(管子) 경중갑(輕重甲):제(齊) 환공(桓公)이 “하늘 아래 나라들이 월(越)보다 강하지 못한데 지금 과인(寡人)이 북쪽으로 고죽(孤竹), 이지(離枝)에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데, 월나라 군대가 이르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에 대해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恐越人之至,爲此有道乎?” 하였다. 하여장(何如璋)이 주(注)에 “이지(離枝)는 바로 영지(令支)이니 고죽성(孤竹城)에 있다.” 하였다. 《管子·輕重甲》:“天下之國,莫強於 越,今寡人欲北舉事 孤竹、離枝,恐越人之至,爲此有道乎?” 何如璋 注:“離枝,即令支,有孤竹城。” 〕
〔영평(營平) 두 주(州) 지명기(地名記) : 주(周)나라 때 산융(山戎) : 춘추(春秋) 장공(莊公) 30년 겨울에 제(齊) 나라 사람이 산융(山戎)을 쳤다. 〈주(註) : 산융(山戎)은 북적(北狄)이다.〉 사기(史記) 제 세가(齊世家)에 “산융(山戎)이 연(燕) 땅을 치니 연(燕)이 재빨리 제(齊)나라에 알렸고 제(齊) 환공(桓公)이 연(燕)나라를 도와 마침내 산융(山戎)을 치고서 고죽(孤竹)에 이른 뒤에 돌아왔다. 흉노전(匈奴傳)에 산융(山戎)이 연(燕) 땅을 넘어서 제(齊)나라를 쳤다. 제(齊) 이공(釐公)이 그들과 더불어 제나라 외곽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 뒤 44년에 산융(山戎)이 연(燕)나라를 쳤고 연(燕)이 재빨리 제(齊)나라에 알리니 제(齊) 환공(桓公)이 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쳤고, 산융(山戎)이 달아났다. 〈호삼성 통감 주(胡三省通鑑註)에 “한(漢) 북평(北平), 무종(無終), 백랑(白狼)부터 북쪽은 모두 산들이 크고 골짝이가 겹쳐 있어 여러 융(戎)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춘추(春秋) 때에는 이들을 일러 산융(山戎)이라 하였다.” 하였다. 곽조경(郭造卿)이 “산융(山戎)과 북융(北戎)은 하나가 아닌 두 종족이다. 연(燕) 땅 동북에서 바깥쪽을 ‘요(遼)라 하였고 연 땅 서북(西北)에서 바깥쪽을 대(代)라 하였다. 이 요(遼) 땅은 뒤에 나뉘어 동서(東西)로 되었는데 북융(北戎) 땅이 아닌 곳이 없었고 대(代) 땅은 뒤에 갈라서 상곡(上谷)으로 되었는데 이 역시 산융(山戎) 땅이 아닌 곳이 없었으니 북융(北戎)이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반드시 산융(山戎)을 평정해야 했고 그래서 허남(許男)과 함께 이들을 쳤다.(기원전 650년)” 하였다.〉 營平二州地名記 : 周 : 山戎 春秋莊公三十年冬 齊人伐山戎 〈註曰山戎北狄〉 史記 齊世家 山戎伐燕 燕告急於齊 齊桓公救燕 遂伐山戎 至于孤竹而還 匈奴傳 山戎越燕而伐齊 齊釐公與戰於齊郊 其後四十四年而山戎伐燕 燕告急于齊 齊桓公北伐山戎 山戎走 〈胡三省通鑑註曰 自漢北平無終白狼以北 皆大山重谷 諸戎居之 春秋謂之山戎 郭造卿曰 山戎北戎是二種 自燕東北以外為遼 西北以外為代 遼後分為東西 無非北戎地 代後截為上谷 無非山戎地而北戎為尤大 故必平山戎 而同許男以伐之〉〕
부도하(不屠何)가 청능(青能, 청웅(青熊), 검은빛 곰)을 공물로 들였다. 〈불도하(不屠何)는 동북(東北)의 이(夷)이다.〉
동호(東胡)는 누런 큰곰(黄羆)을 공물로 들였고 산융(山戎)은 콩(菽)을 공물로 들였다. 〈산융(山戎)은 동북(東北)의 이(夷)이다. 융(戎)의 콩(菽)은 두약(荳藥)을 말한다.〉〔융(戎)의 콩(菽)은, 가) 대두(大豆)이거나 나) 누에콩(胡豆)이거나 다) 호두(胡豆)나 융숙(戎菽)이 모두 완두콩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들이 있다. 〕
그 서쪽에 반오(般吾)가 공물로 들인 흰 범(白虎)이 있다. 〈동쪽 다음은 서쪽이다. 반오(般吾)는 북적(北狄)이니 서쪽에 가까이에 산다.〉
도주(屠州)가 공물로 들인 검빛 표범(黑豹)이 있다. 〈도주(屠州)는 적(狄)의 갈래이다.〉
우씨(禺氏)가 공물로 들인 도도(騊駼)가 있다. 〈우씨(禺氏)는 서북(西北)의 융이(戎夷)이다. 도도(騊駼)는 말 종류이다.〉
대하(大夏)가 공물로 들인 자백우(兹白牛)가 있다. 〈대하(大夏)는 서북(西北)의 융(戎)이다. 자백우(兹白牛)는 들짐승(野獸)이다.〉
견융(犬戎)이 공물로 들인 무늬 진 말(文馬)이 있으니 이 말은 붉은 갈기(赤鬛)에 몸에 고운 빛이 감돌며(縞身) 눈은 마치 황금(黄金)과 같다. 이는 고황(古黄)이라는 이름의 탈 것이다. 〈견융(犬戎)은 서융(西戎)의 먼 후손이다.〉
수초(數楚)가 공물로 들인 매우(毎牛)가 있다. 매우(毎牛)란 소(牛)의 작은 것이다. 〈수초(數楚)는 북융(北戎)이다. 〉
흉융(匈戎)이 공물로 들인 교견(狡犬)이 있다. 교견(狡犬)은 몸이 커서 네 척(尺)이나 되는데 과연 모두 북쪽을 향해 있다. 〈흉노(匈戎)는 북융(北戎)이다.〉
권부(權扶)가 공물로 들인 삼목(三目)이 있다. 〈권부(權扶)는 남만(南蠻)이니 꼴이 조금 작다.〉
백주(白州)가 공물로 들인 북려(北閭)이 있다. 북려(北閭)란 그 혁(革)이 우(于)와 비슷하다. 그 나무를 베어서 수레를 만들면 종일토록 굴려도 손상되지 않는다. 〈백주(白州)는 동남(東南)의 만(蠻)이다. 백민(白民)이 사는 곳과 더불어 닿아 있다.〉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경제휘편(經濟彙編) 고공기(考工典) : 급총주서(汲冢周書) 왕회(王會)편에 “주나라 성왕(成王) 때 백주(白州)가 비려(比閭)라는 것을 바쳤는데 그 잎사귀가 마치 새깃(羽)과 같다. 그 나무를 베어 수레를 만들면 하루 종일토록 굴러간다.” 하였다. 欽定古今圖書集成/經濟彙編/考工典/第175卷 : 《汲冢周書王會》:「成王時,白州獻比閭者,其葉若羽。伐其木以為車,終日行。」〕
〔우(于) :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격(格), 구(韭), 저(菹), 우(于)’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현(李賢) 주(注)에 “우(于)는 헌우(軒于)이다. 일명 누린내 풀(蕕)인데 물 안에서 산다.” 하였다. 《後漢書·馬融傳》:“...格、韭、菹、于。”李賢注:“于,軒于也,一名蕕,生於水中。”〕
금인(禽人)이 공물로 들인 관(管)이 있다. 〈역시 동(東)에 동(東)의 만(蠻)이다. 관(菅)은 풀이니 단단하고 질기다.〉
노인(路人)이 공물로 들인 대죽(大竹)이 있다. 〈노인(路人)은 동방(東方)의 만(蠻)이니 대죽(大竹)을 공물로 들이었다.〉
장사(長沙)가 공물로 자라(鼈)를 들였다. 〈특히나 크고 아름다워서 공물로 바친 것이다.〉
그 서쪽에 어복(魚復)이 공물로 바친 북과 종이 있으니 종은 소의 꼴을 하였다(鐘牛). 〈어복(魚復)은 남만(南蠻)의 나라이다. 북과 종을 공물로 바쳤는데 소 모양과 비슷한 것이다.〉
양주(揚州) 땅 만(蠻)의 꿩(翟)이 있다. 〈揚州之蠻貢翟鳥〉
창오(倉吾)가 공물로 들인 비취(翡翠)가 있다. 비취는 새 깃(羽)에서 챙겨온 것이다. 〈창오(倉吾)는 역시 만(蠻)이다. 푸른 깃(翠羽)은 그 빛이 푸르고도 노르스름한 기가 있다.〉
기타 모두 예부터 내려온 정치가 어떠했는지 알 수가 있다. 〈나머지(餘)란 뭇 여러 공물을 말한 것이니 정치가 이룬 교화의 파급이 어디까지,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남쪽 사람들이 이르렀으니 무리 모두들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남쪽 사람이란 남월(南越)이다.〉
이윤(伊尹)은 조정에서 상서(商書)를 바쳤다. 〈따로 이런 상서(商書)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많은 겨레들이) 주서(周書)에 기록되지 않은 일의 종류로써 와서 따랐다. 〈왕회(王㑹, 왕이 각 제후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조공(朝貢)을 받기로 약속한 일이라서 공물 내용을 약속과 부합되게 하는 것이다.〉
탕(湯)이 이윤(伊尹)에게 물어 말하기를 “제후(諸侯)들이 와서 바치는데 어떤 제후들은 자기 땅에서 말이나 소가 태어나는 일이 없는데도 먼 땅의 토산물을 바치고 있어서 공물을 바치는 일이 실제와 반대가 되니, 이롭지 못하다. 〈그 땅이 가지고 있는 물품이 아닌데도 공물을 먼 땅 가서 백성들에게 구해야 하기에 이롭지 못한 것이다.〉
내가 그들 땅의 형세(地勢)에서 나온 물품을 바치기를 바랐었는데, 그 제후들은 분명히 쉽사리 구하는 공물이라서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사방에 공물을 들이는 규정에 대한 영(獻令)을 만들라! 〈그 봉헌하는 품목에 대한 호령(號令)을 만들게 하였다.〉 〔품복(品服)은 가) 보통 관복을 뜻한다. 나) 문맥상, 여기서는 품(品)은 물품으로, 복(服)은 ‘실은 짐’과 ‘제도’라는 뜻이 있으니 이 두 가지 뜻이 알맞지 않을까 싶다. 묵자(墨子):“수레는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가기 위한 것이니 이 수레를 타면 편안하고 이를 끌면 수월하다. 《墨子·節用中》:車爲服重致遠,乘之則安,引之則利。좌전(左傳) : “자산(子產)이 수도와 시골에 수레와 의복을 존비귀천에 따라 저마다 규정을 두게 하고 위아래 품급에 따른 복장의 엄격한 구별하게(服) 하였다.”《左傳·襄公三十年》:“子產使都鄙有章,上下有服。”〕
이윤(伊尹)이 명을 받들고 이에 사방(四方)에 내릴 영(令)을 만들었으니 다음과 같다.
“신(臣)은 청컨대 정동(正東)쪽에 부루(符屢(婁)), 구주(仇州), 이려(伊慮), 구심(漚深), 구이(九夷), 십만(十蠻), 월구(越漚), 전발(鬋髪), 문신(文身)들은, 〈이 열 가지 이름은 동이(東夷)와 만월(蠻越) 겨레의 갈래들이다. 전발(鬋髮), 즉 머리를 깎고 문신(文身), 즉 몸에 문신한 것을 일컬었으니, 그런 일로 인하여서 이름한 것이다.〉 바라노니 어지(魚支, 물고기 껍질인 어피(魚皮)라고도 함)로 만든 칼집(鞞)과 오징어(烏鰂)로 만든 젓갈과 날카로운 검을 막을 교(鮫)로 껍질로 만든 방패를 공물로 들이기를 명하소서. 〈병(鞞)은 칼집(刀削)이다. 즉(鰂)은 오징어라는 물고기 이름이다. 벌(瞂)은 방패(盾)이니 교(鮫) 껍질로 이것을 만든다. 교(鮫)는 문어(文魚, 잉어나 금붕어)이다.〉
〔부루(符屢) : 일주서(逸周書) 왕회(王會)에 대한 주우증(朱右曾) 교석(校釋)에서 “부(符)는 부여(夫餘)이며 루(婁)는 읍루(挹婁)이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국(夫餘國)은 현토(玄菟) 북쪽에 있고 읍루(挹婁)는 옛 숙신국(古肅慎國)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逸周書·王會》:“伊尹受命,於是爲四方令曰:臣請正東符婁、仇州...鬋發文身。”朱右曾校釋:“符,夫餘;婁,挹婁。《後漢·東夷傳》:夫餘國在玄菟之北,挹婁,古肅慎之國。〕
〔어정패문운부(御定佩文韻府) : 부루(扶婁) : 습유기(拾遺記)에 “성왕(成王) 7년 부루(扶婁) 나라는 그 사람들이 기교와 변화에 뛰어나 형태를 바꾸고 입는 것을 고치며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거나 안개를 불러오고 작아지면 가느다란 터럭 안으로도 들어가 금과 옥, 털과 깃털을 이어서 웃옷과 아랫도리옷을 만들며 구름을 토하고 불을 뿜는다. 배를 두드리면 마치 우레와 천둥소리인 듯하다. 더러는 코뿔소나 코끼리나 사자나 용사(龍蛇)나 불새(火鳥)의 꼴로 바뀌고 더러는 범(虎)이나 암외뿔소(兕)로 달라지고 입안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온갖 오락의 즐거움을 갖추어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에서 이리저리 구비 돈다. 사람 모습일 때 더러 키가 두어 푼(分)이고 더러는 다시 두어 촌(寸)이 된다. 후대 악부(樂府, 민요, 민요를 수집하고 그 풍을 따라 하는 관청)가 모두 이 솜씨를 전수 받았다. 세속에서는 이를 일러 파후기(婆猴伎)라 한다. 그러니 바로 부루(扶婁)라고 이름이 잘못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御定佩文韻府卷二十六之七 : 扶婁 : 拾遺記 成王七年 扶婁之國 其人善能機巧變化 易形改服 大則興雲起霧 小則入於纖毫之中 綴金玉毛羽為衣裳 吐雲噴火 鼓腹則如雷霆之聲 或化為犀𧰼獅子龍蛇火鳥之狀 或變為虎兕 口中生人 備百戲之樂 宛轉屈曲於指掌間 人形或長數分 或復數寸 樂府皆傳此伎 俗謂之婆猴伎 則扶婁之名訛替至今〕
〔고음병자속편(古音駢字續編)에 “이려(伊慮)은 주서(周書)에 나오는데 의려(醫閭)로 안사고(顏師古)가 주(注)를 내었다.”는 말이 나온다. 古音駢字續編卷四 伊慮〈周書〉醫閭〈師古注〉〕 *의려(醫閭)는 요녕성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라 하고 ‘이려(伊慮)’는 그 산에서 산 오랜 토착 겨레의 이름이라 하는데 차차 알아볼 일이다.
정남(正南) 쪽 나라인 구등(甌鄧)과 계국(桂國)과 손자(損子)와 산리(産里)와 백업(百濮)과 구균(九菌)들은, 〈이 여섯 나라는 남만(南蠻)의 다른 이름들이다.〉 청컨대 주기(珠璣)와 모모(珻瑁, 바다거북이 대모(瑇瑁)라고도 함)와 상아(象齒)와 무늬 진 코뿔소의 뿔(文犀)과 푸른빛 깃털(翠羽)과 균학(菌鸖)과 단구(短狗)를 공물로 바치기를 명하소서. 〈기(璣)는 구슬(珠)과 비슷하지만 작다. 균학(菌鸖)은 정예(旌翳, 깃대의 양산)를 만들어 쓸 수 있다. 단구(短狗)는 개 중에도 훌륭한 놈인 것이다.〉
정서(正西) 쪽 나라인 곤륜(崑崙)과 구국(狗國)과 귀친(鬼親)과 지이(枳已)와 흡이(闟耳)와 관흉(貫胸)과 조제(雕題)와 이구(離丘)와 칠치(漆齒)들은, 〈이 아홉 나라는 서융(西戎)의 다른 이름들이다. 아주 작은 소리도 잘 듣는 흡이(闟耳)와 가슴에 구멍이 있는 관흉(貫胸)과 이마에 꽃무늬를 새긴 조제(雕題)와 이빨에 옻칠을 한 칠치(漆齒)들 또한 그런 사실로 인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 청컨대 단청(丹青)과 백모(白旄)와 비계(紕𦋺)와 강력(江厯)과 용각(龍角)과 신구(神龜)를 공물로 바치도록 명하게 하소서. 〈강력(江厯)은 구슬(珠) 이름이고 용(龍)이 뿔을 벗어 그 뿔을 얻는 것이다.〉
정북(正北) 쪽 나라들 공공(空同)과 대하(大夏)와 사차(莎車)와 고타(姑他)와 단략(旦畧)과 모호(貎胡)와 융적(戎翟)과 흉노(匈奴)와 누번(樓煩)과 월씨(月氏)와 섬리(𡣳/孅犁)와 기룡(其龍)과 동호(東胡)들은, 〈이 열두 겨레는 북적(北狄)의 다른 이름들이다. 융적(戎狄)이 서북(西北) 경계 융적(戎翟) 사이에 있으니 나라 이름이다.〉 청컨대 탁타(槖駞)와 백옥(白玉)과 들말(野馬)과 도도(騊駼)와 결제(駃騠)와 좋은 궁(良弓)을 공물로 들이도록 명하소서.” 하였다.
탕(湯)임금이 “훌륭하다.” 하였다.
逸周書卷七 王㑹解第五十九
成周之會墠上張赤弈陰羽〈王城既成大㑹諸侯及四夷也陰鶴也以羽飾帳也除地曰墠弈帳也〉天子南面立絻無繁露朝服八十物搢挺〈繁露冕之所垂也所尊敬則有焉八十物大小所服搢挿也挺笏也〉唐叔荀叔周公在左太公望在右皆絻亦無繁露朝服七十物搢笏旁天子而立於堂上〈唐荀國名皆成王弟故曰叔旁差在後也近天子後故其冕謂亦無旒也〉堂下之右唐公虞公南面立焉〈唐虞二公堯舜後也〉堂下之左殷公夏公立焉皆南面絻有繁露朝服五十物皆搢笏〈杞宋二公冕有繁露搢笏則唐虞闕也〉為諸侯之有疾病者阼階之南祝淮氏榮氏次之皆西南彌宗旁之〈淮榮二祝之氏也彌宗官名次珪瓚南差在後〉為諸侯有疾病者之醫藥所居〈使謂左右也居則至也〉相者太史魚太行人皆朝服有繁露〈魚太史名及太行人皆贊相賔客之禮也〉堂下之東面郭叔掌為天子菉幣焉絻有繁露〈郭叔虢文王弟菉錄諸侯之幣也〉内臺西面者正北方應侯曹叔伯舅中舅〈内臺中臺也應侯成王弟〉比服次之要服次之荒服次之西方東面正北方伯父中子次之〈此要服於比服轉逺殊故殊其名非夷狄之四荒也伯父姬姓之國中子於王子中行者也〉方千里之外為比服方千里之内為要服三千里之内為荒服是皆朝於内者〈此服名因於殷非周制也〉堂後東北為赤弈焉浴盆在其中〈雖不用而設之敬諸侯也〉其西天子車立馬乗亦青陰羽鳬旌〈鶴鳬羽為旌旄〉中臺之外其右㤗士臺右彌士〈外謂臺之東西也外臺右太士右彌士士言尊王太彌相儀之事也〉受贄者八人東面者四人〈受賔幣士也四人東面則西面四人也〉陳幣當外臺天𤣥𡽙(毼)宗馬十二〈陳束帛幣馬於外臺天𤣥黑𡽙(毼)宗尊也〉王𤣥繚碧基十二〈此下三碧皆玉故自下以至王之𤣥繚謂之黑組紐之基王名有十二基也〉參方𤣥繚璧豹虎皮十二〈參方陳幣三所也璧皮兼陳也〉四方𤣥繚璧琰十二〈琰珪也有鋒疾陳之四方所列之也〉外臺之四隅張赤弈為諸侯欲息者皆息焉命之曰爻閭〈毎角張息者隨所近也侯稱爻也〉周公旦主東方所之青馬黑𡽙(毼)謂之母兒〈周公主東方則太公主西方東青馬則西白馬矣馬名未聞〉其守營牆者衣青操弓執矛〈㦸也各異方〉西面者正北方稷慎大麈〈稷慎肅慎也貢麈似鹿正北内臺北也〉穢人前兒前鬼若彌猴立行聲似小兒〈穢韓穢東夷别種〉良夷在子在子〈闕〉身人首脂其腹炙之霍則鳴曰在子〈良夷樂狼之夷也貢竒獸〉揚州禺禺魚名解隃冦〈亦竒魚也〉發人鹿鹿者若鹿迅走〈發亦東夷迅疾〉俞人雖馬〈俞東北夷雖馬舊駕闕角大者曰驎也〉青丘狐九尾〈青丘海東地名〉周頭煇𦍫煇𦍫者羊也〈周頭亦海東名也〉黑齒白鹿白馬〈黑齒西逺之夷也貢白鹿白馬〉白民乗黄乗黄者似騏背有兩角〈白民亦南夷〉東越海蛤〈東越則海際蛤文蛤〉歐人蟬蛇蟬蛇順食之美〈東越歐人也北交州蛇特多為上珍也〉姑於越納〈闕〉姑妹珎〈姑妹國後屬越〉且甌文蜃〈且歐在越文蜃大蛤也〉若人𤣥貝〈若人吴越之蠻𤣥貝照貝也〉海陽大蠏〈海水之陽一蟹盈車〉自深桂〈自深亦南蠻也〉會稽以𪓽皆西嚮〈其皮可以為皷首自麈以下至此向西也〉正北方義渠以茲白茲白者若白馬鋸牙食虎豹〈亦在臺北與大塵相對義渠西戎國茲白一名駁者也〉史林以尊耳尊耳者身若虎豹尾長三尺其身食虎豹〈史林戎之在西南者〉北唐戎以閭閻以隃冠〈北唐戎在西北者也射禮以閭象為射器〉渠叟以䶂犬䶂犬者露犬也能飛食虎豹〈渠叟西戎之别名也〉樓煩以星施星施者珥旄〈樓煩北狄珥旄所以為旄羽耳〉十盧以牛牛者牛之小者也〈十盧盧人西北戎也今盧水是〉區陽以鼈封者若彘前後有首〈區陽亦戎之名也〉規矩以麟者獸也〈規矩亦戎也麟似鹿牛尾一角馬蹄也〉西申以鳳鳥鳳鳥者戴仁抱義掖信歸有徳〈其形似雞蛇首魚尾戴仁向仁國抱義懐有義掖信歸有徳之君也〉丘羌鸞鳥〈丘地之羌不同故謂之丘羌今謂之丘戾鸞大於鳳亦歸仁義也〉巴人以比翼鳥〈巴人在南者不比不飛其名曰鶼鶼〉方揚以皇鳥〈方揚亦戎别名也皇鳥配於鳳者也〉蜀人以文翰文翰者若臯雞〈鳥有文彩者臯雞似鳬翼州謂之澤特也〉方人以孔鳥〈亦戎别名孔與鸞相匹也〉卜人以丹沙〈卜人西南之蠻丹沙所出〉夷用閵采〈夷東北夷采生火中色黑面光其堅若鐡〉康民以桴苡者其實如李食之宜子〈康亦西戎之别名也食桴苡即有身〉州靡費費其形人身技踵自笑笑則上唇翕其目食人北方謂之吐嘍〈州靡北狄也 費費曰裊羊好行立行如人被髮前足稍長者也〉都郭生生若黄狗人面能言〈都郭生生北狄二名〉奇幹善芳善芳者頭若雄雞佩之令人不昧皆東嚮〈奇幹亦北狄善芳鳥名皆東東向列次也〉北方臺正東髙夷嗛羊嗛羊者羊而四角〈高夷東北夷髙麗句〉獨鹿卭卭距虛善走也〈獨鹿西方戎卭卭獸似距虚負厥而走也〉孤竹距虚〈孤竹東北狄距虚驢騾屬〉不令支𤣥模〈不令支皆東北夷𤣥模黒狐也〉不屠何青能〈不屠何東北夷〉東胡黄羆山戎菽〈山戎東北夷戎菽荳藥也〉其西般吾白虎〈次西般吾北狄近西〉屠州黑豹〈屠州狄之别也〉禺氏騊駼〈禺氏西北戎夷騊駼馬屬〉大夏兹白牛〈大夏西北戎兹白牛野獸〉犬戎文馬而赤鬛縞身目若黄金名古黄之乘〈犬戎西戎逺者〉數楚毎牛毎牛者牛之小者也〈數楚北戎〉匈戎狡犬狡犬者巨身四尺果皆北嚮〈匈戎北戎〉權扶三目〈權扶南蠻形甚小〉白州北閭北閭者其革若于伐其木以為車終行不敗〈白州東南蠻與白民接也〉禽人管〈亦東東蠻菅草堅忍〉路人大竹〈路人東方蠻貢大竹〉長沙鼈〈特大而美故貢也〉其西魚復鼓鐘鐘牛〈魚復南蠻國也貢鼓及鐘而似牛形者〉蠻揚之翟〈揚 州之蠻貢翟鳥〉倉吾翡翠翡翠者所以取羽〈倉吾亦蠻也翠羽其色青而有黄也〉其餘皆可知自古之政〈餘謂衆諸貢物也言政化之所至也〉南人至衆皆北嚮〈南人南越〉伊尹朝獻商書〈言别有此書也〉不周書録中以事類來附〈王㑹期朝貢事故令附合〉湯問伊尹曰諸侯來獻或無馬牛之所生而獻逺方之物事實相反不利〈非其所有而當逺求於民故不利也〉今吾欲因其地勢所有獻之必易得而不貴其為四方獻令〈制其品服之令〉伊尹受命於是為四方令曰臣請正東符屢仇州伊慮漚深九夷十蠻越漚鬋髪文身〈十者東夷蠻越之别稱鬋髮文身因其事以名也〉請令以魚支之鞞〈闕/*이 빠진 글자는 옥해(玉海)에는 길(鮚)로, 설략(說畧)들에는 오(烏)로, 시경세본고의(詩經世本古義)에는 결(魝)로 되어 있다.〉鰂之醬鮫盾+支(瞂)利劒為獻〈鞞刀削鰂魚名瞂盾也以鮫皮作之鮫文魚也〉正南甌鄧桂國損子産里濮九菌〈六者南蠻之别名〉請令以珠璣珻瑁象齒文犀翠羽菌鸖短狗為獻〈璣似珠而小薗鸖可用為旌翳短狗狗之善者也〉正西崑崙狗國鬼親枳已闟耳貫胸雕題離丘漆齒〈九者西戎之别名也闟耳貫胸雕題漆齒等亦因其事以名之也〉請令以丹青白旄紕𦋺江厯龍角神龜為獻〈江厯珠名龍解角得也〉正北空同大夏莎車姑他旦畧貎胡戎翟匈奴樓煩月氏𡣳犁其龍東胡〈十二者北狄之别名也戎狄在西北界戎翟之間國名也〉請令以槖駞白玉野馬騊駼駃騠良弓為獻湯曰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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