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특합(布特哈)은 숙신(肅愼)의 땅이자 부여(夫餘) 동명왕과 연관된 색리(索離)의 땅이라 한다. 색리(索離)는 ‘탁리(橐離)’, ‘고리(櫜/槀離)’로도 알려졌다.
〇 포특합지략(布特哈志略)
포특합(布特哈) 지방에 이고(伊古)는 끄트머리 변방 땅이다. 이 땅에 사람들은 각각 유목(游牧)하며 사는 곳을 따라 마을을 이룬다. 그 우두머리를 ‘추장(酋長)’, ‘부장(部長)’이라 하는데 마을마다 각각 따로 정치 행위를 한다. 중원 땅의 정치가 잘 돌아가면 교류를 하여 와서 손님 노릇을 하고, 정치가 잘 돌아가지 못하면 배반하고서 서로를 삼켜 아우르고 웅장(雄長)이 되기 위해 다투다가 군대가 날로 강해지고 국토가 날로 넓어지면 늘 중원(中國)과 대적하였다.
이곳은 바로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숙신(肅慎)이며 한(漢)나라의 색리(索離)이며 위(魏)나라의 물길(勿吉)이며 수(隋)나라의 말갈(靺鞨)이며 당(唐)나라의 실위(室韋)이며 오대(五代) 때의 여진(女真)이니 시대마다 흥성하거나 수그러들기를 하여 그 명칭이 일정하지 못하다. 요(遼) 금(金) 원(元)이 세상에서 갈마들며 흥하고 망한 데에 이르러서는 다투어 군대 진(陳)을 익히고 무공(武功)을 숭상하여 문치(文治)가 빠졌다. 그러나 시절이 맑을 때 비록 흑룡강(黑龍江) 밖 오성(五城) 한곳에 대대로 살았다 하더라도 군사적 대비라는 무게 아래에 있었던 탓에 미처 문(文)을 익힐 겨를이 없었지만, 얼추 여러 가지 각종 자료와 문서(檔案)들을 마련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경자(庚子) 제정 아라사(러시아)의 난에 남김없이 불타고 훼손되어 옛 서적(典籍)을 살필 수가 없게 됨에 어찌 안타까운 마음을 다 이길 수 있겠는가!
지금은 다섯의 다른 겨레들이 한 집안처럼 함께 어울려 살던(五族一家) 부락이 현(縣)의 소재지(治)로 바뀌었고 가축을 치던 땅이 좋은 밭으로 탈바꿈하여 강산이 더는 예전과는 알아보지 못하고 인류(人類) 또한 복잡함을 뽐내고 있다. 이에 그 오랜 것이 장차 오리무중에 빠져 알 수 없게 될 것이 걱정이라 산천 마을의 옛날 및 지금의 이름과 학식 있는 어르신들이 남긴 옛이야기를 수소문하여 찾아내고서 말소리(語音) 중에 여러 역사책에 보여 부합한 것을 역대 연혁(歷代沿革)으로 기록하였다.
① 포특합(布特哈)은 잘란투시(紮蘭屯市)이다. 내몽고 자치구(內蒙古自治區)에 현급(縣級) 시(市)이니 호륜패이시(呼倫貝爾市)를 통해 대신 관할한다. 내몽고자치구 동북부, 대흥안령(大興安嶺) 동남 산기슭에 위치한다. 경내의 자연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만리장성 밖 소항(塞外蘇杭)”이라는 이름이 있다.
포특합(布特哈, Butha)는 “물고기 잡고 사냥하다(漁獵)”는 뜻이다. (출처 : 유기백과)
② 경자아란(庚子俄亂) : 1900년(청(淸) 광서(光緖) 26년) 7월 17일에서 21일까지 제정 러시아 침략자들이 흑룡강 기슭, 해란포(海蘭泡, 블라고베셴스크)에서 벌인 일련의 대량 학살. 당시 러시아 군인들이 흑룡강 오른쪽으로 진격하더니 마구 불 지르면서 칼과 도끼로 주민들을 죽이고 떠밀어 강에 빠뜨려 죽였는데 죽은 자만 7천여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布特哈地方伊古為窮荒之域土人隨各游牧處所而成部落其首領曰酋長部長每部各自為政中國治則通而來賓不治則叛而互相吞併爭為雄長至士馬日強土宇日廣恆與中國為敵此即三代之肅慎漢之索離魏之勿吉隋之靺鞨唐之室韋五代之女真代有興替名稱不一以至遼金元遞世興亡而以陳習爭尚武功文治缺然季清雖經居於黑龍江外五城之一因在武備之下未遑講文至於略有備具之檔案庚子俄亂焚毀一空典籍莫稽曷勝遺憾今則五族一家部落化為縣治牧地變成良田江山不可復識而人類又呈複雜於是恐其久將入於五里霧也爰徵求山川部落之古今名稱與士老遺傳之舊聞語音見諸史冊而符合者志歷代沿革*잘란투시
*잘란투시
* 호륜패이시(呼倫貝爾市)
*흑룡강(아무르) 유역 1
*흑룡강(아무르) 유역 2
포특합(布特哈)은 옛 숙신씨(古息慎氏) 땅이다.
〈 산해경(山海經)에 “대황(大荒) 중에 산이 있으니 이름이 ‘불함(不咸)’이라고 하는데 그 산에 숙신(肅慎) 나라가 있다.” 하였다. 정씨(鄭氏) 강성(康成)이 “식신(息慎)이 바로 숙신(肅慎)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곽박(郭璞)의 산해경주(山海經註)에 “숙신국(肅慎國)은 요동(遼東)과 거리가 3천여 리이다.” 하였다. 살펴보면 불함산(不咸山) 바로 장백산(長白山)이요 숙신(肅慎)은 영고탑(寧古塔), 흑룡강(黑龍江)의 여러 땅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특합(布特哈)은 그(숙신국) 땅에 있던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주무왕(周武王) 때 숙신씨(肅慎氏)가 호시(楛矢)를 공물로 들였고 당요(唐堯, 요임금)와 우순(虞舜, 순임금) 때는 ‘식신(息慎)’이라 하여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제요(帝舜) 25년에 식신(息慎)이 와서 제(帝)를 뵙고 활과 화살을 공물로 바쳤다. 이 숙신(肅慎)은 동쪽 먼 끄트머리 지역의 나라인데도 중원(中國) 역사의 처음 시작에 보인다.”라고 말하였다.〉
布特哈古息慎氏地 〈 山海經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之國鄭氏康成說息慎即肅慎郭璞山海經註肅慎國去遼東三千餘里按不咸山即長白山肅慎指寧古塔黑龍江諸境而言則布特哈在其地矣孔子家語周武王時肅慎氏貢楛矢唐虞曰息慎竹書紀年帝舜二十五年息慎來朝貢弓矢是為東荒絕域國見於中國歷史之始云〉
포특합(布特哈)은 한(漢)나라 때에는 북이(北夷)인 색리국(索離國)에 속했다.
〈 색리(索離)는 위략(魏略)에 ‘고(櫜 : 櫜는 槀)리(離)’라고 적었다. 양서(梁書)에 ‘고리(櫜離)’라고 적었고 요사(遼史)에는 ‘탁리(橐離)’라고 적었다. 후한서(後漢書)에 “색리왕(索離王)이 나들이 갔는데 그 시녀 아이(侍兒)가 뒷날에 임신하더니 남자 아기를 낳았다. 아기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였다. 왕이 그 아이가 화가 될까 근심하고는 이를 죽이려 하였다. 동명(東明)이 남쪽으로 달아나 엄제수(掩?虒水 ‘虒’는 ‘淲(펴/호)’로도 적혀있음)에 이르렀다.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魚鼈) 모두들 정갈하게(淨, 또는 ‘浮’, 떠올라서) 다리를 만드니 물을 걸어서 건너 부여(扶餘) 땅에 이르러 임금이 되었다. 이것이 부여(扶餘) 건국의 처음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살펴보면 부여(扶餘)는 길림(吉林) 서북쪽에 있고 색리(索離)는 다시 부여(扶餘)의 북쪽에 있다. 엄제수(淹?虒水)는 난수(難水)가 되니 바로 지금에 눈강(嫩江)이다. 포특합(布特哈) 사람들이 눈강(嫩江) 유역을 따라 마을을 이루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색리(索離)의 후손이고 색륜인(索倫人)은 그대로 해당 곳에서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전해지는 말이 먼 옛날 왕이 아들이 태어난 것을 꺼리었고 그 아들이 도망쳐 달아나 난수(難水)를 건널 때 물고기와 자라(魚鼈)가 다리를 만든 것에 도움을 받은 일이 여전히 동명의 일과 서로 징표처럼 맞아떨어지니 그렇다면 현재 포특합(布特哈) 지방이 바로 옛날에 색리(索離)의 경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漢屬北夷索離國 〈 索離魏略作櫜 〈 櫜:槀〉 離梁書作櫜離遼史作橐離後漢書云索離王出行其侍兒於後姙身而生男名曰東明王患其為禍也欲殺之東明遁南至掩??虒水以弓擊水魚鼈皆淨為橋行渡至扶餘地而王是為扶餘建國之始云按扶餘在吉林西北索離又在扶餘之北淹??虒水為難水即今之嫩江布特哈人隨嫩江流域落居者為多索離之後索倫人仍在該處不少且斯地土傳上古王與子生忌其子逃遁渡難水賴其魚鼈為橋事尚相符則現在之布特哈地方即古之索離境無疑矣〉
③ 난수(難水) : 옛 물 이름. 난하(難河), 또는 나하(那河)라고도 한다. 지금 흑룡강성의 눈강(嫩江), 또는 눈강이 송화강과 만나서 흐르는 그 송화강 물의 알려진 이름이라 한다.
④ 색륜부(索倫部, 만어(滿語):ᠰᠣᠯᠣᠨ,묄렌도르프의 음역(穆麟德轉寫):solon(솔론)) : 청나라 때 달아리족(達斡爾族), 악온극족(鄂溫克族), 악윤춘족(鄂倫春族)들의 통칭이고 때때로 특별히 악온극족(鄂溫克族)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샤머니즘(薩滿教)을 신봉하고 모두 서로 혼인으로 연결된 가까운 관계를 이루고 있다. 색륜(索倫)은 달아리(達斡爾) 사람들이 악륜춘(鄂倫春) 사람에 대해 호칭으로 ‘산 숲속에서 사는 사람들(生活在山林的人)’이라는 뜻이니 악온극(鄂溫克) 사람들이 영웅적으로 용맹하며 전투에 뛰어난 까닭에 그 주변의 부족들도 함께 색륜부(索倫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색륜부(索倫部)는 아울러 어떤 한 구체적인 민족이 아니고, 이들은 동시베리아(東西伯利亞), 외흥안령(外興安嶺)에서 생활하는, 중국 동북 주변에 각 퉁구스(通古斯) 계 민족의 통칭이니 매우 많은 색륜인(索倫人)이 청조(清朝) 때 만주 팔기(滿洲八旗)로 들어와 만족(滿族)을 형성하였다. 그 나머지 색륜인(索倫人)은 포특합인 팔기(布特哈八旗)와 색륜 팔기(索倫八旗)로 들어갔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건륭(乾隆) 때 해란찰(海蘭察)이 있다.
색륜부(索倫部)는 흑이근 주방팔기(墨爾根駐防八旗, 흑이근은 지금 눈강시(嫩江市) 눈강진 일대)와 포특합 팔기(布特哈八旗)를 나누어 편입시킨 것 외에, 옹정(雍正) 연간에 1636명의 색륜(索倫) 병사를 따로 양익 팔기 이십사 좌령(兩翼八旗二十四佐領)을 따로 편제하여 호륜패이(呼倫貝爾)에 귀속시켰다 한다.
*달알이족(達斡爾族) 여인
*악온극족( 鄂温克族 ) 사진
* 악온극족( 鄂温克族 ) 러시아 내에 분포도
* 아래 사진은 맹금복(孟金福, 1927년 ~ 2000년) 악륜춘족(鄂倫春族) 최후의 샤먼(薩滿) 〈산신인 백나흡(白那恰)을 몸에 지녀 거느리고 있다.(산신이 내렸음을 말하는 듯) 携领山神白那恰〉
“백나흡(白那恰)”은 악륜춘족(鄂伦春族), 악옥극족(鄂温克族), 달알이족(达斡尔族)에 공통으로 쓰던 사냥에 관계된 용어라고 한다. 악륜춘(鄂伦春) 말에 “백나흡(白那恰)”은 “산신(山神)”이라는 뜻으로 만물을 주재하는 신으로 받아들인다. 좁게는 수렵을 관장하는 신이다. 달알이어(达斡尔语)로는 “백나사(白那查)”가 되니 뜻은 “부유한 어버지”이라 한다.
⑤ 동시베리아(東西伯利亚)는 시베리아의 한 부분이다. 서쪽으로 아시아주 아라사(亞洲俄羅斯)의 예니세이강(叶尼塞河)에서부터 동으로 태평양 연안의 분수령까지 이른다.
면적은 720만 평방 킬로미터이고 대부분은 중앙 시베리아 고원(북부에 낮은 툰트라부터 남부와 동부에 서사얀령(西薩彥嶺)과 동사얀령(東薩彥嶺), 외바이칼산맥(外貝加爾山脈, 또는 달오리아 산맥(達烏里亞山脈, Dauria)), 양나-콜림국경(楊娜-科累姆)까지)의 원시 밀림으로 덮여 있다. 해당 구역에 아라사의 가장 큰 두 강물 예니세이강(叶尼塞河)과 레나강(勒拿河)이 흐르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 위의 사진들과 지도들은 위키백과에서 내려받았고 보충자료들은 위키백과에 중국어 간체로 된 글을 번역한 것이다.
포특합(布特哈)은 수(隋)나라 때는 흑수말갈(黑水靺鞨)에 속하였다.
〈 말갈(靺鞨) 7부(部)는 원래 물길(勿吉)에 속하였었는데 가장 남쪽 지역에 겨레는 백산부(白山部)이고 가장 북쪽에 있던 겨레는 흑수부(黑水部)였다. 그렇다면 포특합(布特哈)이 흑수부(黑水部) 땅에 속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隋屬黑水靺鞨 〈 靺鞨七部原屬勿吉最南者為白山部最北者為黑水部則布特哈屬黑水部境無疑也〉
위(魏)나라 때는 물길국(勿吉國)의 흑수부(黑水部)가 된다.
〈 물길(勿吉)은 곧 옛날 옥저(沃沮)이고 또한 와집(窩集), 오계(烏稽), 아집(阿集)이라고도 일컬으니 모두 소리가 구르다가 변한 결과이다. 옥저(沃沮)는 만어(滿語) 계통으로 한자로 바꾸면 ‘삼림(森林)’이라는 뜻이다. 위서(魏書)에 물길(勿吉)은 고구려(高句麗) 북쪽에 옛날 숙신국(肅慎國)이다. 북사(北史)에서 물길(勿吉)을 어떤 경우에는 ‘말갈(靺鞨)’이라고도 하였다. 그 부락은 모두 일곱 갈래가 있으니 속말(粟末) 〈미(未):말(末)〉, 백굴(伯咄), 안거골(安車骨), 불열(拂涅), 호실(號室), 흑수(黑水), 백산(白山)이 그것이다. 위(魏) 연흥(延興, 471년 – 476년) 중에 물길(勿吉)이 사신 을력지(乙力支)를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난하수(難河水) 길을 따라 갔다가 돌아왔다. 을력지(乙力支)를 그 나라로 돌려보내면서 위(魏)나라는 더는 동쪽을 공략하거나 남쪽을 침탈하지 않아 부여(扶餘)의 옛 영토에 대해 자신의 강토로 다스리지 않을 것을 알렸다. 수서(隋書)에서 일컬은 바 ‘그 말갈(靺鞨) 7부(部)’란 이 일에 바탕을 두었다 하겠다. 살펴보면 난하(難河)란 바로 지금의 눈강(嫩江)이니 토박이들은 지금까지도 난수(難水)라고 일컬으니 포특합(布特哈)이 그 땅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
魏為勿吉國黑水部 〈 勿吉即古之沃沮又稱窩集烏稽阿集皆音轉所致沃沮係滿語譯漢森林也魏書勿吉在高句麗北舊肅慎國也北史云勿吉一曰靺鞨其部落凡有七種曰粟末 〈 未:末〉 伯咄安車骨拂涅號室黑水白山魏延興中勿吉遣使乙力支朝貢從難河水道往返乙力支返國知魏不復東略南奪扶餘舊壤而疆理之隋書所稱靺鞨七部其基於是役云按難河者即今之嫩江土人至今以難水稱之則布特哈為其地無疑矣〉
당(唐)나라 때 눈강(嫩江)은 동쪽에 흑수부(黑水府)의 땅이었고 눈강(嫩江) 서쪽은 실위(室韋)의 땅이었다.
〈 말갈흑수부(靺鞨黑水部)가 당(唐) 고종(高宗) 말년에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당나라 장수 이다조(李多祚)가 쳐 깨뜨렸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0년(722년) 다시 부(府)를 만들어 추장(酋長) 이헌성(李獻誠)을 흑수부(黑水府) 도독(都督)에 제수하였다. 이때 실위국(室韋國)이 서쪽에 있어 동쪽으로 흑수말갈(黑水靺鞨)과 이웃하며 당조(唐朝)에 복종하여 공물을 들이고 있었으니 당(唐)은 이들을 농락하며 규제하였다. 거란(契丹)이 일어나고 마침내 거란에 소유가 되었다. 저오가칸(阻午可汗)이 돌려포부(突呂布部)를 설치하고 장춘주(長春州) 서쪽에서 수자리를 서게 하였다. 아보기(阿保機, 요나라의 태조)는 돌려부실위부(突呂不室韋部)를 설치하고 태주(泰州) 동북쪽에서 수(戍)자리를 서게 하였으며 열랄라고부(涅剌拏古部)는 태주(泰州) 동쪽에서 수자리를 서게 하였다. 눈강(嫩江) 서쪽, 색악이길산(索岳你吉山) 동쪽에서부터 요나라에 모두 부림을 받았다. 그러니 포특합(布特哈)이 그 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살펴보면 실위(室韋)는 석와(錫窩)가 사람들 사이에서 구르다 바뀐 소리와 연결되는데 바로 몽고말을 한자로 바꾸면 ‘떼 지어 난 나무(樹叢)’이니 대체로 먼 옛날 이곳은 산이 깊고 숲이 빼곡하여 토박이들이 그 산과 숲 사이에서 묻혀 살며 그 출몰이 일정하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아서) 처음부터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 〉
⑥ 돌려불부(突呂不部) : 거란이 요(遼)를 건국하기 전, 마지막 부락 연맹인 요련씨부락련맹(遙輦氏部落聯盟) 초기에 거란 겨레는 8부(部)를 가지고 있었다. 735년에 칸(汗)으로 추대된 조오가칸(阻午可汗)이 8부(部)를 정리하여 20부(部)로 만들었는데 돌려불부(突呂不部)가 그 중에 하나이다. 또는 돌려부부(突呂不部)는 거란 마을의 하나인 집해부(集解部)에서 커 나왔다고 한다.
련씨부락연맹(遙輦氏部落聯盟) 8부(部)는 질랄(迭剌), 을실(乙室), 품(品), 저특(楮特), 오외(烏隗), 돌려부(突呂不), 열반(涅槃), 돌거(突舉)이다.
唐時嫩江以東為黑水府境嫩江以西為室韋地 〈 靺鞨黑水部於唐高宗季年犯邊為李多祚擊破玄宗開元十年更為府拜其酋長李獻誠為黑水府都督時有室韋國在西東與黑水靺鞨為鄰服唐朝貢唐羈縻之契丹興遂為所有阻午可汗置突呂布部戍長春州西阿保機置突呂不室韋部戍泰州東北涅剌拏古部戍泰州東自嫩江以西索岳你 〈 你:爾〉 吉山以東俱役服之則布特哈其地無疑矣按室韋係錫窩之轉音即蒙語譯漢樹叢蓋因上古此處山深林密土人藏居其間出沒無常始爾得其名也〉
오대(五代) 때 거란(契丹)이 (포특합 땅을) 생여진(生女真) 땅에 붙였다.
〈 오대(五代)에 이르러 흑수말갈(黑水靺鞨)과 발해(渤海) 땅이 모두 거란(契丹)에 소속되었다. (여진 겨레가) 송화(松花)와 압록(鴨綠) 사이에서 매우 번성하여 송화강(松花江) 서남에 사는 여진들은 ‘숙여진(熟女真)’이 되었고 송화강(松花江) 동북쪽에 사는 여진들을 ‘생여진(生女真)’이라 하였으니 포특합(布特哈)이 그 땅에 있다. 〉
五代時契丹屬生女真地 〈 至五代時黑水靺鞨及渤海地皆附屬契丹蔓延於松花鴨綠間在松花江西南為熟女真松花江東北者曰生女真則布特哈在其地矣〉
요(遼)나라에서는 포특합 지역을 ‘상경로 동변(上京路東邊) 돌려부 실위부(突呂不室韋部)’라 하였다.
〈 요(遼)의 상경(上京) 임황부(臨潢府)는 바로 지금 내몽 파림 (內蒙巴林) 동북쪽 140리에 파라성(坡羅城)이다. 거란(契丹)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실위(室韋)를 꺾어 패하게 하고서 돌려부 실위부(突呂不室韋部)를 설치하여 태주(泰州) 동북에서 수(戍)자리 서게 하였다. 그 땅은 눈강(嫩江) 서쪽 색악이길산(索岳爾吉山) 동쪽부터는 포특합(布特哈)에 속하였었다. 살펴보면 야율(耶律)은 몽고어 계통으로 ‘엄청나고 눈부시다’, 또는 언행이 눈부시도록 떳떳하고 바르다(磊落光明)’라는 뜻이다. 아보(阿保)는 악박(鄂博)이 바뀐 소리와 관계되니 곧 ‘흙더미(土堆)’를 일러 말한다. 기(機)는 액제(額齊)의 평음(平音) 병간(併簡)과 연계되니 바로 ‘머리(頭)’이다. 대체로 그 사람이 뾰족한 정수리(尖頂)에 성정(性情)이 떳떳하고 똑발라서(磊落) 성(姓)과 이름을 얻은 것이다. 〉
遼曰上京路東邊突呂不室韋部 〈 遼上京臨潢府即今內蒙巴林東北一百四十里之坡羅城契丹耶律阿保機挫敗室韋而置突呂不室韋部戍泰州東北其地自嫩江以西索岳爾吉山以東則屬布特哈矣按耶律係蒙語磊落光明之意阿保係鄂博之轉音即土堆之謂機係額齊之平音併簡即頭也蓋因其人尖頂性情磊落而得姓名者也〉
금(金)나라 때는 포흥로(蒲興路) 태주(泰州) 땅에 속하였다.
〈 금(金)나라의 포흥로(蒲興路) 남쪽은 상경(上京)까지 6백 70리이고 동남쪽은 호리개(胡里改)까지 1천 4백 리(里)이다. 지금 흑룡강(黑龍江) 서쪽, 송화강(松花江) 북쪽, 눈강(嫩江) 좌우가 부여(扶餘)와 끈을 맺어서 이름을 얻었으니 바로 명(明)나라에 이름한 복여위(福餘衛) 땅이다. 오직 강토의 경계가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상대적으로 달리할 뿐이다. 당시 금(金)의 종실 사람 파로화(婆盧火)가 태조(太祖)를 따라 황룡부(黃龍府)를 공격하고 동방의 여러 부(部)를 평정하여 그 공로로써 모극(謀克 : 군정(軍政) 합일 사회에서 기층 조직 편제 단위이면서 그 조직 우두머리를 이름. 모극은 대략 300호를 갈라 받는다)에 제수되었다. 천보(天輔) 5년(1121년) 태조(太祖)께서 금나라의 옛 부락들 땅이 나쁘고 짠기가 있어 태주(泰州)의 씨 뿌리기 좋은 걸진 땅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여러 맹안(猛安 : 7 ~ 10 모극이 1 맹안이 된다), 모극(謀克)의 민가 중에 만여(萬餘) 집을 골라서 파로화(婆盧火)로 하여 이들을 이끌면서 태주(泰州) 땅에 주둔하도록 한 것이니, 옛날에 거란(契丹) 20 부족(部族)이 가축을 치던 땅으로 요(遼)나라 때의 장춘주(長春州)가 이것이다. 금(金)의 군사들이 이미 서쪽을 공략하고 나서 여러 부족이 죄다 서북쪽으로 옮겨 가 변경의 걱정거리가 되었을 때 파로화(婆盧火) 안으로 농업을 닦고 밖으로 변경대비를 단단히 하여 달리(達里)에 띠처럼 돌을 쌓아(帶石) 보루를 세웠다. 달리(達里)의 대석(帶石)이란 병풍처럼 가리는 것이다. 서남쪽으로 곧장 임황(臨潢)에 이르러 해자 바닥을 깊이 치고 경계를 세워 보루로 삼았다. 24사(史)에서 일컬은바, 장춘변보(長春邊堡)가 이것이다. 그의 발자취는 지금 서포특합 총관서(西布特哈總管署) 북쪽 3리(里)라는 먼 곳에서 그친다. 눈강(嫩江) 오른쪽 기슭(岸) 서남쪽에서 시작하여 곧장 직예위장(直隸圍場)에 이르니 그 우뚝 솟은 모습은 마치 장성(長城)을 생각하게 할만하다. 이것으로 보자면 포특합(布特哈)은 태주(泰州) 땅임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金屬蒲輿路泰州地 〈 金蒲興路南至上京六百七十里東南至胡里改一千四百里今黑龍江以西松花江以北嫩江左右係以扶餘得名即明之福餘衛地惟疆界贏縮互殊耳時金宗室婆盧火從太祖攻黃龍府及平東方諸部以功授謀克天輔五年太祖以舊部瘠鹵不如泰州腴可種遂擇諸猛安謀克中民戶萬餘使婆盧火統之屯於泰州地泰州者故契丹二十部族牧地遼之長春州是也金兵既西略諸部族咸西北徙為邊患婆盧火內修農業外飭邊備起達里帶石堡子達里帶石者屏蔽也西南直抵臨潢浚壕立界為堡二十有四史所稱長春邊堡是也其跡迄今在西布特哈總菅 〈 菅:管〉 署北三里之遙起自嫩江右岸西南直抵直隸圍場屹屹若長城可稽則布特哈為泰州地無疑矣〉
'숙신(肅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북쪽 숙신(肅愼) 땅 흑룡강 포특합지략(布特哈志略) 3 (2) | 2024.08.08 |
---|---|
동북쪽 숙신(肅愼) 땅 흑룡강 포특합지략(布特哈志略) 2 (0) | 2024.08.01 |
동북쪽 숙신(肅慎)의 남쪽 경계에 나오는 불내성과 단단대령 2 (0) | 2024.07.11 |
동북쪽 숙신(肅慎)의 남쪽 경계에 나오는 불내성과 단단대령 1 (1) | 2024.07.04 |
산해경에 나타난 서방 나라 숙신(肅愼)과 그 이웃 백민(白民) (1) | 2024.06.20 |